그들 돈 참 쉽게 벌더라

[스페셜리스트 | 법조] 남상욱 한국일보 사회부 기자

서초동의 검찰청에 터를 잡고 여러 사건들을 취재하다 보면 간간이 기자인 나를 돌아볼 때가 있다. 검찰청에 불려 나와 조사를 받는 유명 인사들을 새벽녘까지 기다리면서 “내가 지금 여기서 뭘 하는 거지?”라고 자조할 때가 많은 게 사실이지만, 월급쟁이로서 나를 자각할 때는 역시나 ‘거액’의 뇌물을 ‘합법으로’ 받아 챙기는 ‘있는 분’들을 지켜봐야 할 때다.


검찰은 최근 임영록 전 KB금융지주 회장에 대한 수사를 무혐의로 결론 내렸다. 검찰의 핵심 수사 인력이라 할 수 있는 중앙지검 특수1부가 지난해 9월부터 꽤나 오랫동안 공을 들여온 사건이었는데 조금은 허망하게 마무리된 것이다.


KB사태로 알려진 이 사건을 투박하게 정리하자면, 시작은 “주 전산기 교체비용 문제와 잠재 위험을 축소했다”며 금융감독원에 특별검사를 요청한 이건호 전 국민은행장과 교체에 찬성한 임 전 회장 간 주도권 싸움이었다. 이후 금감원의 징계와 임 전 회장의 반발 등 금융당국과 임 전 회장 간의 갈등으로 이어졌다


이 과정에서 금감원과 금융위원회가 중징계-경징계-중징계를 번복하는 해프닝에 이어 금감원이 징계 결정에 사퇴한 이 전 행장과 달리 끝까지 버틴 임 전 회장을 검찰에 고발한 것이 사태의 요약이다.


사태를 두고 이런 저런 뒷말이 있었고, 검찰 수사 결과를 두고도 여러 해석이 있었다. 하지만 ‘월급쟁이’ 기자인 나에게 눈길을 끈 부분은 따로 있었다. 임 전 회장은 크게 두 가지 혐의를 받고 있었다. 특히 2008년 2월 재정경제부(현 기획재정부) 2차관에서 물러난 뒤부터 KB금융지주로 오기 전까지 지인인 윤의국 고려신용정보 회장 측으로부터 매달 350만원씩 총 8000만원 상당의 고문료를 받았다는 게 검찰 조사에서 드러났다. 임 전 회장이 KB금융지주로 간 것이 2010년 8월이었으니까 2년여 만에 8000만원을 받았다는 게 눈에 확 띈 것이다.


국세청이 최근 공개한 ‘2014년 국세통계연보’에 따르면 전체 근로자의 48%가 연봉 2000만원 이하를 받고, 전체 근로자 평균 연봉을 따져 보니 3040만원 정도였다고 한다. 고문이라는 게 어떤 일을 하는 건지 모르는 바 아니니, ‘참 돈 쉽게 번다’는 말이 절로 나온 것이 무리는 아닐 것이다.


물론 임 전 회장뿐이 아니다. 1조원대 수출 실적을 허위로 작성해 수조원의 사기 대출을 받았던 가전업체 모뉴엘로부터 매달 400만원 넘게, 1년5개월 만에 3000만원 가까운 고문료를 챙긴 조계륭 전 무역보험공사 사장이나 고위 공직자 출신으로 이런 저런 회사에 고문으로 이름을 올리고 매달 수백만원씩 꼬박꼬박 월급을 챙긴 사람들. 일각에서는 “현직 때보다 퇴직 후에 버는 돈이 훨씬 많더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니 솔직히 말해 죄가 되고 안 되고를 떠나 ‘배가 아픈 것’인지도 모르겠다.


최근 정치권에서는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을 두고 치열한 논쟁이 전개되고 있다. 소관 상임위인 정무위원회 전체회의를 통과했지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제동이 걸리면서 법안의 세부 내용의 수정이 이뤄질 분위기다. 결과를 예측할 수는 없겠지만, 그래서 또 어떤 식으로 결론이 나올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법으로 처벌 가능한 노골적인 뒷돈 뿐 아니라 접대나 스폰서 관계에 이르는 유착이라는 부정부패의 경로를 차단하겠다는 법의 취지는 제발 유지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기자로서, 그리고 월급쟁이 직장인으로서 ‘배가 아파’ 하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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