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리널리스트', 언론계를 떠나라

[우리의 주장] 편집위원회

자고 일어나면 오늘은 또 어떤 해괴한 일을 마주치게 될지 마음이 심란하다 못해 편치 않은 것이 요즘 이 나라 국민들의 심사이다. 결국 근거 없는 것으로 검찰이 결론 내린 청와대 ‘십상시 국정 농단’ 파문으로부터 시작해 불통의 이미지만 재확인시킨 대통령의 연두 기자 회견, 그리고 연말 정산 파동으로 이어지는 국정의 어지러운 난맥상 때문인지 박근혜 대통령의 견고한 지지율에도 심각한 균열이 갔다. 이 정부의 갈팡질팡 국정 운영은 지켜보기조차 위태로울 정도다.


그런데 유독 이 정권이 들어서면서 진화에 진화를 거듭하며 새로운 경지를 개척하고 있는 것이 하나 있으니 그것은 바로 폴리널리스트라고 불리는 무리들이 권력과 돈, 대중의 인기를 좇으며 연출하는 볼썽사나운 난무(亂舞)들이다. 그 결정판은 김성우 전 SBS 기자의 청와대 행이다. 그는 청와대 사회문화특보로 발표가 난 뒤에도 SBS 기획본부장 직책을 유지하고 있다가 ‘겸임’ 논란이 일자 뒤늦게 사표를 냈다. 현직 언론인이 청와대 수석비서관 회의에 참석하는 진풍경을 보는 일만은 피할 수 있게 된 것을 다행으로 여겨야 할까?


앞서 문화부장으로 아침 편집회의까지 참석했다가 당일 오후 청와대 대변인으로 변신한 민경욱 전 KBS 9시뉴스 앵커의 뻔뻔스런 행보는 세상을 깜짝 놀라게 했다. 이쯤 되면 뉴스나 시사프로그램 진행자로 발탁하기 전에 당사자로부터 정계 진출이나 이직을 않겠다는 서약을 받아야 하는 것 아닌가 자조 섞인 소리도 나온다. 


그런가 하면 과거와는 차원이 다른 새로운 유형의 폴리널리스트 무리가 출현했다. 이들은 언론인에서 정치권 인사로 변신했다가 국회의원에 낙선했거나 청와대에서 나온 연후에는 종편 채널의 시사 프로그램 진행자로 맹활약 중이다. 


정치권에 몸담은 동안 현실 정치 논리를 따라 기민하고 능란한 처신을 보여 준 이들에게 언론인으로서의 공정성과 균형감각을 기대하는 것이 애초부터 무리임을 감안하더라도 요즘 일부 인사들이 방송에서 보여주는 발언의 편향성과 저속함은 자라나는 어린 세대의 교육에 미칠 악영향을 우려해야 할 지경이다. 이제 언론계에서 정권의 품으로 직행하고 그 덕에 권력의 곁불을 쬐며 주워들은 풍월을 갖고서 종편 시사 프로그램을 통해 다시 언론인으로 행세하는 악순환의 고리가 완성되었다. 


일신의 영달을 위해서라면 현란한 회전문 행보도 부끄러워하지 않는 이들 폴리널리스트의 존재가 언론계에 끼치는 해악은 실로 가늠하기 어려울 만큼 크다. 언론의 자기존립의 요체라고 할 ‘권력으로부터의 독립’ 명제를 뿌리부터 뒤흔들 뿐 아니라 스스로 삼감을 미덕으로 알아온 기자 윤리의 최소한을 형해화시키는 망조(亡兆)가 들고 있는 것이다. 


이제 우리 언론이 스스로는 이 같은 일탈자들을 자율로써 다스릴 힘을 상실했다는 부끄러운 고백을 하는 날이 오기 전에 기자 사회는 이 문제를 절체절명의 엄중함으로 마주 대할 것을 촉구한다. 성역 없는 비판을 생명으로 삼는 언론인을 권력의 품으로 포섭하려는 것은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역대 정권들의 생리다. 정권의 실력자들에게 어찌 부끄러움을 요구할까? 폴리널리스트가 드나드는 회전문을 멈춰 저 부끄러운 악순환의 고리를 끊는 결단은 단연코 언론 자신으로부터 나올 수밖에 없다는 점을 우리 기자들이 진지하게 성찰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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