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헨 대선정국 중심에 선 특별검사 의문사

[글로벌 리포트 | 남미] 김재순 연합뉴스 상파울루 특파원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 시내 이스라엘-아르헨티나 친선협회(AMIA)에서 1994년 7월18일 폭탄테러 사건이 일어났다. 중남미 최악의 테러로 기록돼 있는 이 사건으로 85명이 사망하고 300여 명이 다쳤다. 이란이 레바논 무장세력인 헤즈볼라를 이용해 테러를 저질렀다는 의혹이 제기됐지만, 이란 당국은 부인했고 용의자로 거론된 인사들에 대한 조사도 이뤄지지 않았다.


2004년부터 폭탄테러 사건을 조사해온 아르헨티나의 알베르토 니스만 특별검사는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 대통령과 엑토르 티메르만 외교장관 등이 이란으로부터 석유를 확보하려고 조사를 방해했다고 주장했다. 니스만 검사는 이란 당국자와 아르헨티나 정보기관 요원, 협상 중개인 간에 이루어진 전화통화 기록을 증거로 확보했다며 대통령과 외교장관 등을 증인으로 채택했다. 그러나 니스만 검사는 의회 비공개 청문회 출석을 하루 앞둔 1월18일 밤 자택에서 머리에 총상을 입고 숨진 채 발견됐다. 시신 옆에는 22구경 권총과 탄피 한 개가 있었다.


부검 결과 니스만 검사의 사망에 제3자가 개입한 정황은 발견되지 않았다. 수사 당국은 니스만 검사의 시신에서 반항한 흔적이 나타나지 않았고 매우 가까운 거리에서 머리에 총격이 가해진 것으로 판단되는 점을 들어 사실상 자살로 결론을 내린 것으로 전해졌다. 미국 중앙정보국(CIA) 관계자들은 아르헨티나 언론과 인터뷰에서 자살을 단정하지는 않았지만, 아르헨티나 정보기관 내부의 권력암투가 니스만 검사를 죽음에 이르게 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그러나 여론은 들끓고 있다. 여론조사에서 니스만 검사가 살해됐을 것으로 생각한다는 응답이 70%에 달했다. 특히 니스만 검사의 죽음에 정부가 개입됐을 것으로 본다는 의견이 60%에 육박해 정부에 대한 극도의 불신을 반영했다.


니스만 검사 사망은 자살이냐 타살이냐를 둘러싼 논란과 함께 대통령 선거를 앞둔 정국에서 이미 ‘태풍의 핵’으로 떠올랐다.


페르난데스 대통령의 지지율은 추락하고 있다. 페르난데스 대통령에 대한 긍정평가는 29.1%, 부정평가는 50%로 나왔다. 한창 잘 나가던 2012년 초 지지율 59.1%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여당은 “페르난데스 대통령이 폭탄테러 사건 조사를 방해했다는 니스만 검사의 주장은 야권과 보수 언론 등의 합작품”이라며 음모론을 제기했으나 여론을 뒤집기는 어려워 보인다.


야권은 이런 민심을 등에 업고 정부와 여당에 대한 공세를 강화하고 있다. 야권 지도부는 1994년 폭탄테러 사건과 니스만 검사 사망 원인을 밝히기 위한 조사가 계속돼야 한다는 내용의 연방검찰에 보내는 청원서에 서명하며 고삐를 바짝 조였다.


야권의 공세는 대선을 겨냥하고 있다. 대선은 10월25일 1차 투표가 치러지고, 여기서 당선자를 내지 못하면 상위 득표자 2명이 11월22일 결선투표에서 승부를 가리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새 대통령의 취임식은 12월10일이다.


야권의 유력 대선 주자로는 공화주의제안당(PRO) 소속 마우리시오 마크리 부에노스아이레스 시장과 혁신전선(FR) 대표 세르히오 마사 연방하원의원이 꼽힌다. 여당인 ‘승리를 위한 전선(FPV)’에서는 다니엘 시올리 부에노스아이레스 주지사가 가장 유력한 주자로 거론되고 있다. 적어도 현재까지 여론조사 지지율은 야권 후보들이 앞선다. 선거 전문가들은 큰 이변이 없는 한 이번 대선은 이들 세 후보가 각축을 벌이는 3파전 양상으로 전개될 것으로 내다봤다.


야권은 올해 대선을 정권교체를 위한 절호의 기회로 여기는 듯하다. 페르난데스 대통령 정부는 경제성장 둔화와 재정 악화, 외국인 투자 감소, 외화보유액 부족 등으로 사면초가에 빠졌다. 니스만 검사 사망으로 여론도 우호적이다. 여론조사에서도 응답자의 66%가 정권 교체를 바라는 것으로 나왔다.


그러나 페르난데스 대통령이 대선에 적극적으로 개입할 경우 판도 변화가 전혀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페르난데스 대통령의 지지율이 추락한 상태지만, 남편인 네스토르 키르치네르 전 대통령 정부(2003~2007년) 때부터 이어지는 ‘부부 대통령’의 정치적 영향력을 완전히 무시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부부 대통령 집권 기간 정치세력화한 친정부 청년조직들의 움직임도 대선 결과를 좌우할 변수다.


21년 전에 발생한 폭탄테러 사건과 니스만 검사 사망이 야권이 기대하는 정권 교체의 동력으로 작용할지 지켜볼 일이다.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