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상할 뻔했던 국무총리 인사청문회가 이완구 후보자의 어처구니없는 언론관으로 뜨겁게 달궈지고 있다. 청문회를 통해 드러나는 이완구 후보자의 언론관은 충격적이다. 그의 언론관은 우리 언론 환경의 현실을 그대로 담고 있으며 박근혜 정부 언론관의 또 다른 민낯이라는 점에서 심각하다.
이완구 후보자가 자신을 둘러싼 온갖 의혹이 쏟아지던 무렵 몇몇 기자들과 식사를 하던 중 언론사를 좌지우지하고 있음을 과시했다는 녹취록이 공개됐다. 진행 중인 방송사 토론 프로그램에 전화를 걸어 출연자를 빼라고 지시한 얘기, 기자 인사에 개입할 수 있다는 영향력이 있다고 자랑한 얘기가 녹취록에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다. 그러면서 자신에게 잘 보이면 대학 총장이든 교수든 이른바 좋은 자리로 보내줄 수 있는 것처럼 말했다고 한다.
“저 패널부터 막아 임마. 빨리 시간 없어” “기자가 어떻게 죽는 지도 몰라” 등 그 표현도 저열하기 그지없다. 언론에 대한 부탁이나 협조요청 수준이 아니라 무시하면서 명령하는 태도, 전형적인 5공 때 모습이 아닌가.
이완구 후보자는 이 같은 사실이 드러나자 “부덕의 소치”라고 사과했다. 언론사 인사에 개입하고, 출연자를 제멋대로 교체했다면 명백한 직권남용이자 업무방해이다. 기자들에게 “당신들 인사에 영향을 줄 수 있으니 내 잘못을 덮으라”고 했으니 협박죄이기도 하다. 언론자유를 최우선적으로 보장하는 신문법과 방송법 등 미디어법뿐 아니라 민법과 형법을 어긴 불법행위이다. 범죄행위를 해놓고 “덕이 부족한” 탓을 하면 되겠는가.
이완구 후보자의 비뚤어진 언론관이 드러난 대화 내용이 어째서 바로 보도 되지 않고, 그 자리에 참석하지 않은 언론사에 의해 보도됐는지 의문이다. 지난달 27일 한국일보를 비롯한 일간지 기자 4명과 식사자리에서 한 대화 내용은 열흘이 지나서야 KBS를 통해 보도됐다.
참석한 기자들도 나름대로 대화내용을 보고하긴 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자리에 참석한 언론사 4곳은 일제히 기사를 내지 않았다. 이는 역설적으로 이완구 후보자의 녹취록 내용이 사실임을 보여준다. 그가 언론사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위치에 있지 않다면 총리 후보자 검증 기간 치열한 특종 경쟁을 벌이는 모든 언론사가 그의 발언에 침묵할 수 있었겠는가.
한국일보는 10일 ‘알립니다’를 통해 이완구 총리후보의 언론통제 녹음 파일이 자사 지면에서 누락된 데 대한 입장을 밝혔다. 자사 기자가 대화 내용을 녹음했지만 비공식석상에서 나온 즉흥적 발언이어서 보도하지 않았고, 이 녹취록을 야당에 넘긴 행위에 대해 엄중 책임을 묻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한국일보가 이 정도 되는 내용의 대화를 녹음까지 해 놓고 왜 보도하지 않았는지, 한국일보는 공식석상에서 나온 얘기만 보도한다는 것인지 쉽게 이해가 가지 않는다. 한국일보의 ‘알립니다’가 하필 청문회 시작일에 나왔고, 여당 의원들이 일제히 한국일보를 인용해 취재 윤리를 들고 나온 점도 석연치 않다. “엄중 책임을 묻겠다”는 한국일보의 사고는 “기자가 자기 죽는 것도 모른다”는 이완구 후보자의 발언을 연상케 한다.
이완구 후보자는 이제라도 언론통제와 언론인에 대한 모욕적인 발언을 사과하고, 사퇴하기 바란다. 이완구 후보자로부터 압력을 받은 신문사와 방송사도 스스로 고백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