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찬광고에 내몰리는 젊은 기자들

낮은 연차까지 '돈벌이' 종용
수백만원짜리 티켓 판매 할당
"비판 기사 어떻게 쓰나" 토로
기자생활 회의감에 잇단 퇴사

“발품 팔아 좋은 기사를 쓰고 싶은데, 본업보다 잔업이 넘치다보니 기자생활 하면서 남는 게 없더군요.”
A기자는 지난해 말 다니던 경제지에서 퇴사했다. 기자로서의 어려움 때문이 아니었다. 회사의 각종 사업과 포럼에 치여서다. 섭외부터 협찬까지 모든 걸 도맡다보니 ‘기자’보다는 ‘회사원’으로 지낼 때가 더 많았다. 그는 “일하는 구조가 지나치게 비즈니스 중심적으로 바뀌었다”며 “이에 대한 문제제기도 없고, 당연히 해야 한다고 체화된 분위기”라고 말했다.


특정 경제지에만 국한된 현상이 아니다. 악화되는 언론 환경, 기업들의 광고비 축소에 언론사는 젊은 기자들을 광고·협찬 등 ‘생활 전선’으로 내몰고 있다. 지금까지 이른바 ‘돈벌이’는 광고국이나 편집국 부·차장 등 일부 데스크의 역할로 여겨졌지만 이제 연차를 가리지 않고 조직 전체의 책임으로 번지고 있는 것이다. 


한 경제지의 B기자는 “매체에 따라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제한된 광고비를 가지고 수많은 매체들이 경쟁을 하다 보니 낮은 연차 기자들까지도 출입처에서 ‘당겨오라’는 요구를 받는다”며 “데스크가 할 일을 자기한테까지 떠넘긴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평기자들의 경우 직접적으로 광고를 따오기보다 행사와 그에 따른 섭외 및 협찬에 동원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최근 언론사들이 광고 축소로 매출액이 줄어든 반면 영업이익이 증가한 현상은 우후죽순 생기고 있는 포럼, 콘퍼런스, 시상식 등 때문. 이로 인한 가욋일이 일선 기자들의 부담을 가중시키고 있는 것이다.


기업들도 난처하긴 마찬가지다. 언론사 포럼 티켓은 장당 평균 50만~100만원 정도. 매일경제의 세계지식포럼의 경우 장당 300만원을 호가한다. 한 금융회사 홍보팀 관계자는 “현재 전체 언론사에서 하는 포럼이 한해 100개가 넘는다”며 “언론사당 하나만 후원하는데, 후원하지 않는 포럼이 열릴 때마다 연차 상관없이 출입기자가 와서 티켓을 사달라고 한다”고 말했다.


또한 기자들은 기업의 협찬을 받아 진행되는 각종 사업을 위해 ‘협찬금 마와리’를 도는가 하면, 출입처에 직접 공문을 보내거나 때로 압박을 주기도 한다. 매체별로 광고비가 고정돼 있는 대기업과 달리 중소기업은 협상의 여지가 있어 경쟁이 더욱 치열하다. 아예 외부 사무실을 마련해 행사 기획부터 마무리까지 일선 기자가 전담하는 경우도 있다. 경제 관련 부서가 아니더라도 예외는 없다는 게 기자들의 설명. 정·관계 인사들과 접촉하는 부서의 기자들은 초청 인사를 섭외하는 책임을 맡아 행사 때마다 취재원들에게 아쉬운 소리를 해야 한다. 얼마나 ‘급’이 있는 정치인이 와서 축사를 하느냐에 따라 협찬 단가가 결정되기 때문이다.


경제지 C기자는 “데스크마다 다르지만 (광고·협찬을) 시키는 논리는 ‘얼굴 생판 못 본 데스크보다는 출입기자가 낫다’는 것”이라며 “1~5년차 기자는 현실보다 이상이 더 큰 친구들이다보니 그런 압박을 받게 되면 기자로서 회의감이 들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기사를 쓰는 데도 제약이 따른다. 그는 “비판 기사를 써야 하는데 행사가 맞물려있으면 못 쓰는 건 당연하다. 반대로 행사에 오지 않은 사람이 있거나 협찬이 잘 안 되면 ‘조지는’ 것”이라며 “출입기자 입장에서는 누가 봐도 속이 뻔하다”고 자조했다.


경제지에서 일했던 D기자도 지난해 회사를 떠났다. 언론에서 더 이상 미래를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입사 초반에는 비즈니스를 당연시하는 조직 문화에 충격을 받기도 했지만, 이제는 피할 수 없는 현실이라는 게 그의 생각이다. D기자는 “기자로서의 역할과 함께 또 다른 측면을 함께 신경 써야 하는 시대가 된 것”이라며 “세상을 비판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걸로는 더 이상 비즈니스 모델이 돌아가지 않는다”고 말했다.


경제지 E기자는 “막연히 돈을 당겨오는 저급한 수준의 미션이 부과되는 게 문제고, 이렇게 된다면 뉴스룸의 황폐화로 이어질 것”이라며 “이를 마냥 ‘힘들다’는 차원으로 해석하면 답이 없다. 매체 환경을 적극적으로 수렴해서 미래 비전을 찾고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찾는 기자상도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이어 “젊은 기자들의 고충이나 부담감을 해소시켜줄 소통 프로그램, 선후배간 유연하고 투명한 관계를 만들어가려는 내부 노력이 필수”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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