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 금지법)이 지난 3일 국회를 통과한 뒤 논란이 뜨겁다. 과잉입법, 형평성 상실 등을 이유로 비판이 쏟아지고, 일부에선 위헌소지 주장이 나온다. ‘공직자’범위에 언론 종사자까지 포함시킨 것에 대해 권력이 비판언론에 재갈을 물리는 수단으로 악용될 위험성이 있다며 언론자유 침해 우려까지 제기된다. 반대로 애초 김영란법의 핵심취지 중 하나였던 ‘이해충돌 방지’(공직자의 지위·권한을 이용한 자신이나 가족의 이익 도모 금지)가 통째로 빠진 것에 대한 비판도 적지 않다.
공직사회의 부정부패 척결이라는 시대적 과제를 이루기 위해 어렵사리 만들어진 김영란법이 국민 모두의 축하박수 속에서 출범하지 못한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앞으로 법 시행까지는 1년 반의 시간이 남아 있다. 그동안 지나치거나 부족한 부분을 수정·보완하는 게 한국사회의 과제다.
다만 이 과정에서 우리가 놓치면 안될 것은 김영란법이 제정된 근본 이유다. 한국의 부정부패는 선진국은 물론 경제발전 수준이 비슷한 나라 중에서도 가장 심한 편이다. 국제투명성기구(TI)가 발표한 2014년 국가별 부패인식지수를 보면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4개 회원국 중 27위로 꼴찌 수준이다. 같은 아시아권의 싱가포르(7위), 일본(15위), 홍콩(17위)에 비해서도 뒤처진다. 외국 기업인을 대상으로 한 일부 조사에서는 한국의 부정부패가 중국보다 심각한 것으로 평가됐을 정도다.
오래된 관행들을 법으로 일시에 바꾸는 것은 쉽지 않다. 하지만 당장은 부담이 되고, 경제적 주름살이 예상돼도 부정부패 척결이라는 시대적 과제를 거꾸로 되돌릴 수는 없다.
2012년 대선 이후 경제민주화 입법에 대한 반대가 적지 않았다. 재계는 ‘과도한 경영권 침해’라거나 ‘대기업 옥죄기’라며 강력 반발했다. 일부 보수언론은 위헌소지가 있다는 주장도 폈다. 하지만 극심한 양극화를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다는 국민적 공감대에 힘입어 법안들이 국회를 통과했다. 대기업들이 공정거래와 중소기업과의 동반성장에 좀더 신경을 썼다면 경제민주화는 불필요했을 것이다. 대기업이 탐욕을 자제하지 못하고 사회책임을 등한시하다가 규제를 자초했으니 자승자박이라고 할 수 있다.
언론의 사회책임도 기업에 못지 않다. 김영란법의 규제대상에 언론이 포함된 것을 비판하기 앞서 그 배경을 돌아봐야할 이유다. 언론의 역할은 흔히 ‘사회의 거울’에 비유된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사회적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다는 지적이 늘고 있다. 심지어 ‘펜의 힘’을 ‘밥벌이 수단’으로 악용한다는 따가운 비판까지 나온다.
한 중소기업의 하소연이다. “언론에서 대기업의 횡포를 자세히 취재한 뒤 1·2보를 인터넷에 실어 기대가 컸는데, 갑자기 예정됐던 후속기사가 보류되고, 기존 기사들마저 인터넷에서 사라졌다.” 한 대기업 임원도 최근 겪은 일을 털어놓는다. “1~2위를 다투는 한 유력신문의 광고 요구을 거절했더니 얼마 뒤 총수가족의 약점을 비판하는 보도가 잇달아 나왔다. 담당 임원을 경질하고, 부랴부랴 예산을 확보해 요구를 들어주자 바로 경영을 잘하는 회사라는 정반대 보도가 나오더라.”
‘언론의 자유’가 헌법의 기본가치 중 하나라는 점을 부인하는 사람은 없다. 다만 언론이 제 역할을 망각하고, 권력과 광고주와 유착하거나 예속된다면 사회적 규제를 자초하게 된다. 언론계는 김영란법을 탓하기에 앞서 자정의 깃발부터 올려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