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일 대전일보 노동조합 개소식에 참석한 손님들은 입을 다물지 못했다. 대전일보 사측이 내준 노조사무실은 사방이 콘크리트 벽으로 꽉 막힌 지하실에 사무집기 하나 없는 텅 빈 공간이었다. 사무실이 비좁아 100여명의 참석자들은 사무실 앞 계단과 엘리베이터 앞 바닥에 쪼그려 앉아 개소식 행사에 참여했다고 한다. ‘고사상’에 절하면서 이렇게 참담한 적이 없었다고 한 참석자는 전했다.
창문 하나 없는 4평 규모의 지하 공간을 노조사무실로 내줄 정도로 사측은 노조에 적대적인 모습이 역력하다. 대화하고 소통하자는 노조의 요구에 눈 감고 귀 닫고 철저하게 무시한다. 그러면서 기자들에 대한 비제작국 발령 등 보복인사를 남발한다. 구성원과의 불통만이 문제는 아니다. 한 간부는 지난 2월말 취재차 방문한 기자협회보 기자에게 ‘뭐 하러 여기까지 왔느냐’며 문전박대했다.
올해 창간 65주년을 맞은 대전일보는 지난 2월12일 지령 2만호를 냈다. 지령 2만호를 기록한 신문은 대전과 세종, 충남에서 대전일보가 처음이다. 그만큼 충청권 시민, 독자들과 희로애락을 같이하며 지역 언론사에 큰 족적을 남겼다는 의미이다. 하지만 지난해 9월 노조위원장에 대한 무리한 대기발령에서 시작된 일련의 노조 탄압은 대전일보의 자랑스러운 역사에 오점을 남겼다.
대전일보 경영진의 보복인사는 경악할 만하다. 지난해 임금 및 단체협약 체결 교섭 와중에 장길문 노조위원장을 대기발령했던 대전일보는 충남지방노동위원회의 ‘부당노동행위’ 판결에 따라 편집국 사진담당으로 복귀했던 장 위원장을 지난 2월 비제작부서로 전출시켰다. 또 신입 조합원을 편집부에서 문화사업국이나 총무국, 문화사업국 직원은 자회사로 파견했다. 앞서 1월에는 노조 집행부 2명을 지역취재본부로, 30년 가까이 대전일보 기자로 일한 편집국 부국장을 노조에 협조했다며 제작국 윤전부로 발령내기도 했다.
보복인사도 모자라 조합원들에게 협박과 압력을 넣는 등 일탈 행위도 서슴지 않았다. 노조가 부당인사 조치를 바로잡기 위해 지난 2월 법원에 전보발령효력정지가처분 신청서를 접수하자, 사측은 여기에 참여한 한 조합원에게 미리 작성한 소송 취하 신청서에 서명하라고 강요했다. 이 조합원이 취하 신청서 제출을 망설이자 직접 법원까지 데려다줬다고 한다.
노조를 불온 단체로 여기고, 노조에 참여했다는 이유만으로 보복인사하고, 노조 탈퇴를 종용하고, 구성원들을 이간질하는 행태는 65년 명성의 언론사답지 않다. 특히 지령 2만호를 내면서 밝힌 ‘대전충남 지역 영향력·신뢰도 1위 최고 정론지’라는 자사 보도를 무색하게 한다. 올 들어 2명, 지난 2년 사이에 10여명이 대전일보를 떠났다고 한다. 기자들이 떠나는 언론사에 미래가 있을까.
대전일보의 비상식적인 노조 탄압에 지역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대전YMCA 등 11개 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대전시민사회단체연대회는 대전일보의 위상과 역할에 맞는 노사관계 정립을 주문하는 성명서를 냈다. 외부의 따끔한 충고에 귀 기울여야 하는 것은 언론사의 기본 책무이다.
지금 지역언론은 경영 혁신과 경쟁력 있는 콘텐츠 발굴에 너나없이 뛰어들고 있다. 지역 언론에 닥친 위기를 극복하고 신뢰 받는 신문으로 거듭나기 위한 몸부림이다. 노조는 대화와 타협으로 회사의 발전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경영진은 언제까지 불통만 고집할 셈인가. 이제라도 대화에 나서야 한다. 구성원과 불화하는 경영진이 지역민과 독자에게 정론직필을 말할 순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