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발 진실을, 있는 그대로만 보도해주십시오. 왜곡하지 마십시오. 제발 우리 아이들이 웃을 수 있도록 해주십시오. 부탁드립니다.”
지난 2일 오후 서울 광화문 광장.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위해 지난해 40일간 단식했던 고 유민양의 아버지 김영오씨가 기자들 앞에 섰다. 세월호 특별법 시행령 폐기와 세월호 선체 인양, 배·보상 절차 전면 중단을 요구하는 세월호 희생자·실종자·생존자 가족 등 52명의 눈물의 삭발식. 아빠엄마의 잘려진 머리카락은 바람에 흩날렸고, 목 놓아 부르는 아이들의 이름은 광장의 허공을 맴돌았다. 삭발을 마치고 ‘시행령 폐지’라고 써진 노란 머리띠를 동여맨 그는 떨리는 목소리로 “시행령은 2014년 4월16일로 시간을 되돌리고 있다. 지금 우리는 다시 침몰하고 있다”고 말했다.
고 예은양의 아버지 유경근씨도 언론에 “도와 달라”고 수차례 호소했다. “4.16 참사가 일어나고 언론이 우리에게 했던 일은 영원히 잊을 수 없습니다. 그 이후 많은 기자들이 찾아와 눈물로 사죄했고, 다짐했습니다. 1주기에는 꼭 다른 모습을 보여주겠다고. 저희는 기대하고, 기다리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의 언론이 살아있다는 것을 믿게 해주십시오.”
지난해 4월16일 304명의 목숨을 앗아가며 한국사회를 슬픔에 빠지게 한 세월호 사고가 1주기를 앞두고 있다. 차가운 바닷속으로 가라앉은 세월호와 함께 ‘단원고 학생 전원 구조’, ‘육해공 구조작업 총출동’ 등 잇따른 오보는 언론의 신뢰를 함께 침몰시켰다. 실종자 9명은 아직 가족 품에 돌아오지 못했고, 진실은 밝혀지지 않았다.
“세월호 사고가 발생한지 1년이 다 돼가지만 우리는 한걸음도 나아가지 못하면서 다시 잔인한 4월을 맞고 있다.” 지난 1일 진도 팽목항을 찾은 목포MBC 김양훈 기자는 방파제에 나부끼는 노란 깃발과 리본 앞에서 이렇게 말했다. 배가 오가며 일상적인 모습을 찾은 듯 하지만 삭막하고 싸늘한 느낌은 1년 전과 똑같다. 김 기자는 “가장 큰 문제는 세월호 사고가 잊혀지고 있다는 것”이라며 “세월호 실종자·희생자 가족들은 잊혀질까 두려워 지난해 11월 수색 중단을 반대했다. 그런데 아니나 다를까 그 후 중앙 언론에서는 관심이 없어졌다”고 말했다. 이어 “특별법 등 특별한 이슈가 있을 때만 반짝 보도되는데 지역에 있는 기자로서 안타깝다”며 “4월 한 달만큼은 좀 더 관심을 가져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지난달 30일 팽목항을 다녀온 국민일보 강창욱 기자도 “자신의 터전이 아닌 곳에 마을처럼 살아가는 모습이 서글펐다. 누군가 그곳에 남아있다는 것은 아직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4월이 되면서 관심은 높아졌지만, 이슈가 터질 때만 찾아오는 기자들에게 가족들은 서운함을 표했다. 안산에서 한 달 넘게 취재한 한 방송사 A기자는 “기자들을 거의 보지 못했다”면서 “가족들은 답답함에 언론이 관심을 가져주기를 바라고 있다”고 말했다.
1일 해양수산부가 발표한 세월호 피해자 배·보상금 관련 보도는 달라지지 않은 언론의 모습을 투영했다. 한겨레 김일우 기자는 “많은 언론들이 정부 입장을 그대로 따라 썼다. 따지고 보면 국가 세금은 4억인데 마치 8억을 주는 것처럼 보도했다”며 “기사의 시시비비를 떠나 희생자와 그 가족들에게 어떤 여파가 미칠지 고민한 흔적이 전혀 없다”고 했다.
지난달 31일 이석태 세월호 참사 특별조사위원회 위원장이 청와대 앞에 모인 유가족을 찾았을 때도 비슷한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통신사 B기자는 “가족협의회 유경근 대변인이 배·보상 이야기에 기자들의 확인 전화가 많이 오고 있다며 ‘돈은 중요하지 않다. 숫자 논리에 휘둘리지 말아 달라. 인양에 초점을 맞춰 달라’고 당부하는데 순간 부끄러웠다”고 말했다. “있는 그대로 보도해 달라”는 외침이 2015년에도 계속되고 있는 까닭이다.
김일우 기자는 “단독도 좋지만 어떤 영향을 미칠까 고려할 줄 아는 것이 좋은 기사라고 생각한다”며 “배·보상금 발표는 죽음에 대한 예의 자체가 부족했다. 부풀린 정부 입장을 앵무새처럼 받아쓴 것을 보면서 언론이 변하겠느냐는 물음에는 회의적”이라고 했다.
5일 안산-광화문 도보행진을 취재한 인터넷신문 C기자도 “당일 공중파 뉴스에 세월호 가족들의 삭발 장면은 있었지만 ‘왜’에 대한 내용은 없었다”며 “피상적으로 뉴스를 다루는 것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뉴스타파 김성수 기자는 “지난해 정부 입장만 받아쓰거나 이슈를 검증하지 않는 등의 보도 행태는 지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정부의 잘못이나 약속 불이행을 팩트체크하거나 본질을 밝히려는 노력이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지난해 취재경쟁이 과열되고 보도윤리가 경시되면서 기자들 스스로의 반성이 일었던 만큼, 자발적 자정 노력도 있다. 사건기자들은 인명구조 소식에 더 귀를 기울이고, 현장기자의 의견을 중시하는 분위기도 조성되고 있다. 종합일간지 사진부 D기자는 “당시 보고 체계가 현장 중심으로 돌아가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다”면서 “지금은 현장에서 두세 걸음 떨어져서 상황을 주시하고, 조심스러워한다. 무기가 될 수 있는 카메라로 상대방이 상처를 받는다면 잘못된 취재방식이라는 인식이 있다”고 말했다.
인터넷신문 E기자는 “1년 전 언론이 국민들의 총체적 비판에 직면했던 만큼 각성하고 성찰한 부분은 있다”며 “하지만 앞으로 달라지려는 노력을 계속해야한다. 지난해처럼 기본적인 매뉴얼이나 보도윤리가 무시되는 경우 기자에게 트라우마가 남고 취재원과 불신이 커질 수 있다. 생활과 밀접한 현장 기자들의 매뉴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실제 세월호 참사는 기자들에게 트라우마로 남았다. 당시 배를 타고 세월호 사고 지점에 다녀온 한 사진기자는 아이들이 문을 열어달라고 하는 듯한 환청에 시달렸고, 진도와 목포, 안산 등 현장 취재기자들은 유족들이 울부짖던 모습과 아이들의 영정을 떠올리며 불면증에 괴로워했다. 현장 기자뿐만 아니었다. 데스크에게도 상처는 내재됐다. 현장 소식을 취합했던 한 종합일간지 기자는 지난해 중고등학생을 대상으로 한 강연에서 눈물이 왈칵 쏟아져 말을 잇지 못했다. F기자는 “세월호 당일 아침 상황을 설명하다가 단원고 또래 아이들을 마주 보니 갑자기 복받쳤다”며 “현장에 가진 않았지만 간접적으로 접하며 잠재된 상처가 있었던 것 같다. 기자로서 죄책감도 있다”고 말했다.
세월호 문제는 현재진행형이다. 기자들은 지난 1년간 달라진 상황은 아무것도 없다고 입을 모았다. 정부는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유가족의 목소리를 외면하고, 특별조사위원회 예산과 인력을 축소하는 시행령 발표에 이어 배·보상금 안으로 오해만 쌓았다. 강창욱 기자는 “대통령 입에서 세월호라는 단어가 나온 것이 언제쯤인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며 “정부가 어떤 액션도 취하지 않고 방기하면서 사람들의 기억 속 수면 밑으로 세월호를 가라앉히려는 인상을 주고 있다. 잊히게 만드는 것이야말로 사고가 아닌 사건”이라고 지적했다. 침묵으로 일관하던 박근혜 대통령은 세월호 1주기를 열흘 앞둔 6일에야 “선체 인양이 기술적으로 가능하다면 의견과 여론을 수렴해 적극 검토할 것”이라고 밝혔다.
A기자는 “유족들의 고통이나 슬픔을 정부가 한번이라도 생각해봤을지 의문이 들 정도로 대응이 정치적이고 이해타산적”이라며 “유족들을 위로하지는 못할망정 줄다리기를 하고 있다. 진정성 있게 나서야한다”고 말했다. 종합일간지 G기자도 “대형 참사로 상처 입은 이들을 보듬는 사고 수습능력이 전무하다”며 “애초에 약속을 지키지 않아 불신이 쌓였다. 정부가 약속한 것을 잘 지키기만 하면 된다”고 말했다. F기자도 “진상규명을 해야 한다는 사회적 요구에 국가가 비겁한 태도를 취하고 있다”며 “특위가 정상 가동되는 것이 선결 과제”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