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생태계는 단절의 패러다임 위에 서 있다. 도입기, 성장기, 성숙기, 쇠퇴기로 이어지는 제품의 라이프사이클은 파괴된 지 오래다. 완전히 새로운 산업 환경을 만드는 소위 ‘게임 체인저(game changer)’ 제품이 등장해 단숨에 시장 판도를 뒤집기 때문이다.
스마트폰의 등장은 난공불락으로 여겨졌던 휴대폰 제국 노키아를 한순간에 몰락시켰다. 워크맨 돌풍을 일으키며 ‘혁신’의 상징으로 통하던 소니도 MP3플레이어가 나오자 속절없이 무너져 내렸고, 131년 전통의 세계 1위 필름 기업이었던 이스트먼코닥도 디지털 카메라가 등장한 뒤 2012년 파산보호를 신청하는 수모를 겪었다.
자동차 업계도 게임 체인저의 등장이 예고돼 있다. 스스로 운전하는 스마트카가 그 주인공이다. 스마트카 혁명은 IT기업들이 주도하고 있다. IT 공룡 구글은 2009년부터 도요타 프리우스 등을 개조한 자율주행차(무인자동차)를 시험하고 있다. 구글 무인차에 장착된 ‘라이더(LiDAR)’는 레이저 반사광을 이용해 물체와의 거리를 측정하고 빅데이터를 기반으로 주변 환경을 지도로 만들며 주행한다. 첨단 기술을 장착한 구글 무인차는 지난 3월까지 완전 자율주행으로 130만㎞의 무사고 기록을 달성했다. 2009년 시험 주행에 나선 이후 단 한 차례의 사고 없이 미국 도로 위를 달리고 있는 것이다.
미국 지역매체인 디트로이트 프리 프레스(Detroit Free Press)에 따르면 구글은 디트로이트의 리보니아에 위치한 공장에 프로토타입 무인차 생산 라인을 갖췄다. 전기차 개발 프로젝트 ‘타이탄’을 추진하고 있는 애플도 2020년까지 자율주행 기능이 장착된 전기차를 생산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미국 컨설팅업체 보스턴컨설팅그룹은 2035년 전 세계에서 판매되는 자동차 가운데 자율주행차 비율이 약 25%에 달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국내 자동차 업체들에겐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현대·기아자동차는 최근 자율주행차 기술 개발 로드맵을 발표, 2020년 자율주행 기술 상용화를 목표로 내걸었다. 무인차 기술 등을 핵심으로 하는 차세대 스마트카 개발에 2018년까지 2조원을 쏟기로 했다.
반면 눈앞에 불똥이 떨어졌는데도 강건너 불구경 하듯 바라보는 곳이 있다. 바로 보험업계다. 자동차보험을 취급하는 손해보험사 전체 매출에서 자동차보험이 차지하는 비중은 19%. 2011년 3월 말 25.5%에 비해 가파르게 떨어졌다. 지난해 손보사들의 자동차보험 적자 규모가 1조원을 넘어서는 등 적자폭도 눈덩이처럼 불고 있는 상황이다.
더욱이 무인차가 상용화되면 자동차 사고율이 급전직하하고, 이는 자동차보험 시장의 고사로 이어질 수 있다. 무인차의 등장이 자동차보험 시장에 ‘단절’을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보험업계 어디에서도 스마트카 등장이 가져올 보험업계 패러다임 변화를 연구하거나 준비하고 있다는 소식은 들리지 않는다.
보안업계가 자동차보험 시장을 대체할 것이란 예상도 나온다. 자율주행차에는 첨단 IT기술이 탑재돼 있는 만큼 자동차 사고보다는 해킹이나 사이버테러 등 보안 사고에 취약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코닥은 디지털카메라를 세계 최초로 개발해 놓고도 ‘안락한’ 기존 필름 분야에 안주한 탓에 몰락을 자초했다. 반면 카메라 업체 캐논은 퍼스트무버(first mover·선도자)는 아니었지만 패스트팔로워(Fast-follower·빠른 추종자) 전략으로 디지털 카메라 시장을 주도하고 있다. 코닥의 전철을 밟느냐, 캐논의 길을 따르느냐, 스마트카 상용화를 앞두고 자동차보험 업계가 존폐의 기로에 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