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영방송 KBS에 마침내 일베 기자가 탄생한 모양이다. KBS 기자협회와 PD협회, 여성협회 등 11개 내부 단체의 한결같은 반대를 무릅쓰고 KBS 조대현 사장과 경영진은 문제의 수습기자의 정규사원 임용을 강행했다. 물론 회사측의 고민을 모르는 바는 아니다. 일베 회원으로 활동하며 지면에 옮기기조차 힘든 반인륜적 게시글 6000여건으로 인터넷 공간을 어지럽혔다고는 하나 입사 전의 일이라 법리적으로 책임을 묻기 어려웠다는 말도 들린다.
그러나 우리는 KBS 내부 구성원들의 절박한 목소리에 주목하고자 한다. 일베 수습사원의 임용이 결정된 직후 KBS 기자협회는 KBS 뉴스는 이제 죽었다는 사뭇 비장한 제목의 성명을 발표했다. 기자들은 사회 갈등을 통합하고 민주적 가치를 수호하며 건전한 여론을 조성해야 한다는 공영방송으로서 제 역할을 할 수 없을지 모른다는 위기의식과 더불어 뉴스의 불편부당성과 공정성이 의심 받을 상황을 크게 우려하고 있다. 지금 해당 일베 기자의 KBS기자협회 제명이 추진되고 대토론회와 사장 및 간부와의 면담 요구가 이어지는 등 여전히 이 사안은 진행형이다. 이제 정식기자로 임용된 그가 과거에 올린 인터넷 글 도처에 드러난 여성 비하의식, 비뚤어지고 저속한 성윤리, 특정지역에 대한 비아냥, 인권 감수성의 실종 등은 그가 앞으로 제대로 된 언론인이 될 수 없다며 반발하는 KBS 내부 구성원들의 문제의식을 정당화하고도 남음이 있다.
공영방송이라는 우리 사회의 소중한 공적기관 종사자에게 요구되는 윤리의식은 최근 인터넷에 올린 부적절한 글들이 드러나 그간 모든 판결의 공정성까지 의심을 받자 결국 사직하고만 어느 부장판사의 그것과 견주어도 결코 가볍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일베 수습사원이 올린 글들이 입사 전의 일이라고는 하나 과연 한 사람의 가치관과 태도가 입사 전과 후라는 편의적 잣대로 정확히 나뉠 수 있기나 한 것인지 우리는 되묻고자 한다.
일베가 어떤 곳인가. 세월호 희생자를 비하하는 등 상식인의 기준으로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반인륜을 넘어 패륜의 언어를 앞 다퉈 뽐내는 군상들이 모여드는 곳이 아니던가. 그런 점에서 그간 일베는 우리사회 극심한 이념적 편 가르기 속에서도 양식 있는 보수 세력 역시 우군으로서 도저히 가까이 할 수 없었던 부류로 자리매김되어 왔다. 그런 일베에서 수년간 열성적으로 활동해온 자가 공영방송 기자가 될 수도 있는 초현실적 위기상황을 협소한 논리 다툼과 진영논리를 뛰어넘는 결연함으로 타개해 나가는 의지야말로 조대현 KBS 사장이 공영방송 수장으로서 보여줄 수 있는 진정한 덕목이 아니었을까 아쉬움을 지울 수 없다.
KBS 일베 기자 임용 파문은 지금의 한국사회에도 뼈아픈 성찰의 지점을 마련해 준다. 일베로 대변되는 패륜적 사고, 비상식의 세계관조차 진영 간 대립을 이용해 물타기 하면 교묘히 숨 쉴 공간을 마련할 수 있는 서글픈 현실이다. 우리는 세월호 유족들에게 큰 상처를 준 일련의 몰상식에서도 비슷한 기시감을 이미 맛보았다. 일베 기자 임용을 둘러싸고 공영방송 내부에서 노노 갈등이 불거졌고 또 일부 간부들이 일베 수습을 정식기자로 임용하는데 직·간접적으로 일조하는 과정에서 사안의 본질은 실종되었다고 하니 부조리도 이런 부조리가 없다. 그나마 사내외 여론을 의식해 일베 기자는 일단 뉴스를 직접 담당하지 않는 곳, 남북간 방송교류와 협력을 추진하는 부서로 인사 발령 났다고 한다. 통일 대박이라는 근거 없는 낙관의 시대를 살며 수신료를 내는 대다수 국민은 이같은 허탈한 결말을 보고 웃고만 있을 수도 또 슬퍼할 수도 없는 복잡한 심정이라는 것만은 KBS 구성원들이 잊지 말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