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23일은 ‘세계 책의 날’이다. 오래 됐다. 그 기원이 셰익스피어(1564~1616)와 세르반테스(1547~1616)까지 거슬러 올라가니까. 영국과 스페인의 대 문호가 공교롭게도 같은 해 같은 날 세상을 떠났고, 스페인 축제 전통 중에는 이날 즈음 남자는 꽃 한 송이를, 여자는 책 한 권을 서로에게 선물했던 풍습이 있다. 말 그대로 소박한 선물이었다. 우리나라에서도 한국출판인회의나 교보문고 등이 책을 사는 독자들에게 장미 꽃 한 송이를 선물하는 작은 축제를 열곤 한다.
아마도 그래서였을 것이다. ‘세계 책의 수도(World Book Capital)’라는 거창한 캐치프레이즈가 더 당혹스러웠던 것은. 지난 주 인천시가 ‘2015 세계 책의 수도’로 선정됐다며 간담회를 열었을 때 칼럼으로 정색한 이유가 있다.
대부분의 독자들은 생소할 ‘세계 책의 수도’는 유네스코가 선정한다. 원래는 독서 진흥과 저작권 진흥이 목적이다. 2001년 스페인 마드리드가 첫 번째 책의 수도였고, 매년 한 도시를 선정해왔다. 2013년에는 태국 방콕, 2014년에는 나이지리아 포트하코트가 책의 수도였다.
나이지리아의 포트하코트건 한국의 인천이건, 좋은 책은 많이 읽을수록 좋을 것이다. 하지만 왜 ‘세계 책의 수도’가 인천일까. 유정복 인천시장은 강화도의 외규장각과 정족산 사고의 존재, 그리고 팔만대장경 인천 조판설 등 역사적 명분을 들었다. 하지만 경남 합천 해인사와 최근 대장경 조판지로서 학계의 지지를 얻고 있는 경남 남해군은 과연 이 주장에 동의할까. 유네스코는 인천의 주장을 받아들였다지만 이런 사안들이 ‘세계 책의 수도’라는 장대한 캐치프레이즈에 어울리는 인천의 명분이 될 수 있을까. 현재 인천의 독서 문화와 독서력은 또 어느 정도 고려됐을까.
사실 큰 예산만 들이지 않았다면 이렇게 정색할 이유도 없을 것이다. 문제는 인천이 수십 억원을 쓰려 했다는 점이다. 그것도 일회성 행사가 대부분인데도 불구하고. 처음에는 국비 20억원, 시비 20억원을 합쳐 총 40억원이 올해 행사의 예산이었다고 했다. 다행스럽게도 국가예산은 통과되지 않았고, 인천 시비 14억4100만원만 인천시의회를 통과했다. 이 14억원 중 6억원이 개막식 예산이었다.
유네스코 관계자와 지난해 나이지리아 책의 수도 관계자 등 해외 인사 50여명의 항공비와 체재비, 그리고 2번의 만찬에 들어가는 비용이 대부분이었다. 인천시 측은 외주 업체와 협상 끝에 3억2000만원으로 비용을 줄일 수 있었다며 “이 정도면 많이 아낀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대답도 당황스러웠지만 나머지 숫자도 요령부득이기는 마찬가지였다. ‘책의 수도 교류 사업’에 7000만원, ‘책의 수도 운영 활성화’에 6600만원, ‘책의 수도 추진단 운영’에 3500만원이다.
인천시는 예전 ‘책의 수도’가 어느 정도의 예산으로 어떻게 치렀는지에 대한 자료도 전혀 없는 상태에서 이번 개막식과 연중 행사를 치른다고 했다. 과거 자료를 찾아보려 했지만 이미 각국 준비위가 해체되어 필요한 자료를 구할 수 없었다는 변명이었다. 당연하다. 다른 나라에서는 정부나 지자체가 직접 나서서 치르는 행사가 아니니까. 저작권 진흥이라는 목적에서 알 수 있듯 다른 나라에서는 그 도시의 서점연합회나 출판인이 주로 치른다.
14억원이면 1만원짜리 책 14만권을 살 수 있는 돈. 차라리 인천시 공공도서관협의회 산하 49개 도서관에 선물했다면 훨씬 칭찬받는 행정이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