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미 여성 대통령들의 위기

[글로벌 리포트 | 남미] 김재순 연합뉴스 상파울루 특파원

남미에서 ‘여성시대’가 빛을 잃고 있다. 브라질과 칠레의 여성 대통령은 부패·비리 문제로 발목을 잡혀 휘청대고 있고, 아르헨티나 여성 대통령은 마땅한 후계 구도를 찾지 못한 채 퇴임을 앞두고 있다. 


지우마 호세프 브라질 대통령은 국영에너지회사 비리 스캔들 때문에 탄핵 위기로까지 몰렸다. 시민·사회단체가 주도한 대규모 반정부 시위가 거듭되면서 야권에서 대통령 탄핵 문제가 거론되는 상황이다.


대형 건설업체들이 국영에너지회사에 장비를 납품하거나 정유소 건설 사업 등을 수주하는 과정에서 막대한 뇌물이 오갔고, 뇌물 가운데 일부가 돈세탁을 거쳐 주요 정당에 흘러들어 갔다는 것이 비리 스캔들의 핵심이다. 이 사건으로 연방상원의원 13명과 연방하원의원 22명, 주지사 2명, 집권 노동자당(PT) 관계자들이 조사 대상에 올랐다.


호세프 대통령이 비리 스캔들에 직접적으로 관련됐다는 증거가 없는 상태에서 탄핵을 추진하는 것은 무리라는 주장이 우세하지만, 여론은 그리 여유롭지 못하다. 여론조사에서 호세프 대통령 탄핵에 찬성한다는 의견은 63%에 달했다. 반대는 33%였다.


브라질 헌법은 연방 상·하원이 재적의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으로 대통령을 탄핵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1992년에는 실제로 대통령 탄핵이 이루어졌다. 측근의 비리에 연루된 의혹을 받은 페르난두 콜로르 지 멜루 대통령(1990∼1992년 집권)이 의회의 탄핵으로 쫓겨났다.


브라질 언론은 호세프 대통령이 경제정책은 재무장관, 정치 현안은 부통령에게 일임했다는 기사를 내보내고 있다. 국정 주도권을 제대로 행사하지 못하는 상태라는 의미로 읽힌다.


정부와 집권당은 “현재의 국정 혼란은 일시적인 현상이며 대통령의 지지율 회복은 시간문제”라고 자신감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여론의 흐름을 바꿀 기회를 찾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미첼 바첼레트 칠레 대통령도 비리 스캔들 때문에 정치 인생 최대의 고비를 맞았다.
지난 2006∼2010년 한 차례 대통령을 지낸 바첼레트는 84%의 지지율로 퇴임했다. 대중적 인기를 바탕으로 바첼레트는 2013년 말 대선에 다시 출마해 압승을 거두며 재집권에 성공했다.


두 번째 정부에서도 출발은 그런대로 괜찮았다. 바첼레트의 지지율은 지난해 3월 취임 당시 54%에서 시작해 58%까지 올라갔다.


그러나 아들 부부가 연루된 비리 스캔들과 기업의 정치인 후원금 불법제공이 동시에 문제로 떠오르면서 바첼레트의 지지율은 40%를 밑도는 수준까지 떨어졌다.


아들 부부는 민영은행에 부당하게 압력을 행사해 편법대출이 이뤄지도록 한 의혹을 받고 있다. 며느리가 언론 인터뷰를 통해 시어머니의 결백을 주장했지만, 여론의 비난을 잠재우지는 못했다.


남미의 모범국가라는 이미지도 큰 상처를 입었다. 지난해 공공부문 부패 정도를 측정하는 국제투명성기구(TI)의 부패인식지수 조사에서 칠레는 평가대상 175개국 가운데 21위를 기록했다. 중남미 국가 중 가장 높다. 브라질은 69위였다. 그러나 지금은 칠레의 ‘청정 이미지’가 빛이 바랬다. 아우구스토 피노체트 군사독재정권(1973∼1990년) 이래 최악이라는 평가까지 나온다.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 아르헨티나 대통령은 올해 말 대선을 어떻게 치를지 고심하고 있다. 올해 대선으로 네스토르 키르치네르 전 대통령(2003∼2007년 집권)에서 페르난데스로 이어지는 부부 대통령 시대는 마감한다.


아르헨티나 선거법은 4년 임기의 대통령직 연임만 허용하고 있다. 2007년과 2011년 대선에서 승리한 페르난데스는 이 규정에 묶여 올해 대선에 출마할 수 없다.


여론조사는 경제난과 빈곤·실업 문제 악화, 페르난데스 대통령 지지율 추락 등이 좌파 여권 후보에 악재로 작용할 것으로 내다봤다. 중도우파로의 정권교체 가능성이 있다는 의미다.


각자 사상 첫 선출직 여성 대통령이라는 화려한 수식어 속에 등장한 세 사람이 공교롭게도 동시에 위기에 놓이면서 2000년대 중반부터 남미대륙을 강타한 여풍(女風)이 서서히 힘을 잃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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