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언론 자유도가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34개국 중 30위를 차지했다고 한다. 한국보다 하위 순위의 국가는 헝가리, 그리스, 멕시코, 터키 등 네 곳 정도로 OECD 국가라고 보기엔 어딘가 어색해 보이는 나라들이다.
‘국경 없는 기자회(Reporter Without Borders)’는 올해 한국의 언론자유지수를 180개 조사 대상 국가 중 60위로 평가했다. 2013년 50위, 2014년 57위였으니 박근혜 정부가 들어선 이후 매년 순위가 하락한 것이다.
언론의 자유, 표현의 자유는 한 나라 민주주의 정도를 파악하는 중요한 척도 중 하나라는 점에서 세계 10대 무역 강국을 자부하는 우리로선 부끄러운 순위가 아닐 수 없다. 이 와중에 유독 과도한 표현의 자유를 누리는 곳이 있다. 종편(종합편성채널)의 황당한 뉴스가 바로 그것이다.
며칠 전 한 종편 방송은 고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과 이완구 전 총리의 ‘이름 궁합’을 보도했다. ‘이름 궁합’은 두 사람의 이름 획수를 더해가며 합산한 최종 숫자를 통해 궁합을 본다는 것으로 전혀 근거가 없는 어린이들 장난이다. 이성교제가 쉽지 않던 시절 좋아하는 급우와 인연을 알아보던 놀이로 이제는 초등학생들도 하지 않는 고전 장난이 버젓이 뉴스에 나왔다. 성 전 회장과 이 총리의 숫자가 높게 나왔으니 부부의 연이라도 맺었어야 한다는 것인지 이른바 ‘비타 500’ 사건이 이름 때문에 나온 필연이라는 것인지 보도의 취지를 알 수가 없다. 하지만 방송이 나간 이후 인터넷 커뮤니티마다 ‘뉴스가 장난이냐’는 시청자들의 비난이 쏟아졌다고 한다.
또 다른 종편에선 ‘단독’ 보도라며 “성완종 설렁탕 김치찌개 좋아해” “성완종 회식 때 삼겹살 잘 먹어”라고 방송했다고 한다. 대한민국 직장인치고 회식 때 삼겹살 먹지 않는 직장인이 있겠는가.
뉴스뿐 아니라 종편의 시사 토크 프로그램에선 출연자가 여러 프로그램에 출연하면서 근거 없는 주장과 막말을 쏟아내고 있다. 세상 모든 일을 다 아는 시사평론가, 모든 분야의 전문가인 교수가 존재할 수 있단 말인가. 심지어 역술인이 출연해 한 해의 시사를 전망하기까지 했다.
언론자유의 후퇴와 특정언론의 과도한 자유. 얼핏 상반된 현상 같지만 결국 같은 얘기이다. 종편의 ‘황당뉴스’는 소속 기자들이 제대로 된 뉴스를 만들 기회를 억압한다. 어이없는 뉴스가 늘어날수록 무언가 중요한 뉴스가 빠진 것이다. 종편 기자들이라고 이 같은 황당한 뉴스를 방송하고 싶겠는가. 더구나 종편의 모회사는 하나같이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정통 신문사들 아닌가.
종편의 ‘황당뉴스’ ‘저질뉴스’는 저널리즘, 특히 방송저널리즘의 가치와 품위를 현저히 떨어뜨린다. 현안의 본질을 외면하고 현상을 희화화하고 개인화한다. 이를 통해 결국 자신들이 원하는 권력을 보호하게 된다. 정치가이기도한 기업가가 자신의 마지막 입김을 담아 폭로한 권력 핵심이 총망라된 비리도 ‘초등생 짝짓기 놀이’로 치부해 버린다.
종편발 저널리즘의 퇴행은 저널리즘 전체에 대한 신뢰와 지지를 하락시켜 기자사회 전체를 위태롭게 한다. 시청자 입장에서는 ‘성완종-이완구 궁합놀이’가 어느 채널에서 방송됐는지 중요치 않다. 방송뉴스 자체를 외면하게 만들 뿐이다.
황당한 뉴스를 만드는 종편의 자유는 소속 기자들의 언론자유를 빼앗아 나온 것이다. 언론 자유를 되찾는 1차적 책임은 해당 종편의 기자들에게 있다. 그들이 용기와 의지를 보인다면 전국의 기자들이 기꺼이 힘을 보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