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총선, BBC 수신료 제도에 영향 주나

[글로벌 리포트 | 영국] 김지현 골드스미스 런던대 문화연구 박사과정

내달 7일에 예정된 영국 총선을 앞두고 여당인 보수당과 박빙의 승부를 펼치고 있는 노동당의 에드 밀리밴드(Ed Miliband) 대표가 BBC 수신료 제도를 지지하는 발언을 해 눈길을 끌고 있다. 지난 7일 ‘라디오 타임즈(Radio Times)’와의 인터뷰에서 밀리밴드 노동당 대표는 “BBC를 보호하는 일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중요하다”며 총선에서 승리한다면 현행 수신료 제도를 유지할 계획임을 밝혔다.


세계에서 최초로 설립된 공영방송인 BBC는 정치적 독립성을 보장하기 위해 국민으로부터 연간 24만원(145.50 파운드)에 달하는 수신료를 징수해 그것을 주요 재원으로 삼아 운영되고 있다. 세계 여러 나라에서 공영방송의 모델로 각인되는 만큼 국내에서도 KBS와 EBS의 수신료 인상안이 논의될 때마다 그 제도의 현황이 주요하게 참고돼 왔다. 그런데 데이비드 캐머런(David Cameron) 현 영국 총리가 이끌고 있는 보수당 내각은 최근 몇 년간 ‘BBC 내부의 진보주의적 편견’을 공격하며 BBC의 수신료제와 조직운영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공개적으로 내비치며 BBC를 불안에 떨게 했다. 


지난 2월에 발표된 정부보고서 ‘BBC의 미래(Future of the BBC)’는 현재 캐머런 내각이 가진 수신료 제도에 대한 입장을 극명하게 드러낸 것이었다. 보고서는 BBC의 수신료 제도는 ‘단기적’으로 유지될 필요는 있지만 가까운 미래에 다른 형태로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다. BBC의 거버넌스에 대한 비판은 더 신랄해, 현재 BBC의 최고 의사 결정기구이자 감독기구인 BBC 트러스트를 아예 폐지하고 정부가 위촉한 비상임의장이 지휘하는 일원화된 거버넌스 기구로 대체하라는 주장이 보고서에서 등장하기도 했다. 


이러한 움직임과 관련, 지난 4월7일 영국의 일간지 ‘가디언(the Guardian)’은 지난해부터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 측이 연간 24만원(145.50 파운드)에 달하는 수신료를 회피하는 미납자를 기소 처벌 대상에서 제외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는 것 역시 수신료 폐지를 위한 수순이라는 일각의 의혹을 보도했다. 지난 2월 보수당 장관들의 제안으로 실제 영국 상원 의사당에서는 수신료 회피에 대한 처벌을 범칙금에서 벌금으로 대체하는 안건과 관련한 찬반 투표가 이뤄지기도 했다. 반대표가 178표로 나와 찬성표 175표를 근소하게 앞질러 현재의 제도를 유지하는 것으로 잠정적인 결론이 났지만, 연이은 보수당의 거센 압박에 BBC 입장에서는 좌불안석일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이러한 이유로 BBC는 수신료 징수와 미납 처리 방식이 변할 경우 연간 2억 파운드의 재원 손실이 예상된다며 TV나 라디오 채널들을 폐쇄하는 최악의 상황을 막기 위해서는 현행 제도의 유지가 필요하다고 현재까지도 대내외에 호소하고 있다. 


이러한 위기 상황에서 이번 밀리밴드 노동당 대표의 지지 발언은 BBC에게는 가뭄의 단비와도 같은 셈이다. 총선 이후 새롭게 구성될 내각과 수신료제의 운명이 갈릴 왕실 칙허장 협상을 벌어야 하기 때문이다. 


밀리밴드 노동당 대표는 2016년 말에 예정된 왕실 칙허장의 갱신과 그 과정에서 최대 현안이 될 현행 수신료제의 존속과 관련해서도 앞서 인터뷰를 통해 BBC 측에 긍정적인 입장을 밝혔다. 그는 “자신은 BBC의 지지자”라고 밝히며, “왕실 칙허장은 갱신되어야 한다”고 분명하게 말했다. 또 BBC와의 미래 수신료 협상은 “(보수당이 주장하는 수신료 폐지의) 그 단계까지 가지 않을 것이며 협상과 토론을 위한 문제가 될 것”이라고 일종의 소신을 드러내기도 했다. 이러한 발언들을 고려했을 때 노동당이 다음달 7일에 예정된 영국 총선에서 승리를 거둘 경우 BBC가 차기 정권과 벌일 수신료 협상에서 유리해질 가능성이 조심스럽게 점쳐지고 있다. 


물론 보수당과 노동당이 오차 범위 내에서 엎치락 뒤치락, 박빙의 승부를 벌이는 상황이라 어느 쪽이 승리해서 BBC와 수신료 협상을 벌일지는 예측하기 힘들다. 그 결과에 따라 BBC와 수신료 제도의 명암이 갈릴 것이라는 점만은 분명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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