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가지 않은 길…민심의 궤적 좇아 하루를 연다"

[기자 25시](21) 머니투데이 '더 300' 진상현 정치부 국회 총괄팀장

기자 30명 투입 ‘더 300’ 단일 매체 정치부 최대 규모
정쟁 위주 정치기사 탈피, 정책 중심 정치문화 유도해
남들과 ‘다른 길’ 택했지만 언론이 해야 할 역할이라 생각



4·29 재·보궐선거 결과에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4곳의 지역 일꾼을 뽑는 ‘초미니 선거’지만 선거 결과가 정국에 미칠 후폭풍 탓에 여야 모두 촌각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더구나 집권 3년차에 들어선 박근혜 정부의 중간평가 성격과 내년 총선 판도뿐 아니라 차기 대선구도를 가늠할 수 있는 바로미터가 되기 때문이다.


표심은 선거 막판까지 ‘오리무중’인 가운데 선거를 앞두고 여야 간 ‘설전’만 가열되고 있다.
야당은 친박계 인사들이 포함된 ‘성완종 리스트’의혹을 놓고 정권 심판론을 제기하며 야당에 힘을 실어 줄 것을 호소했다.
반면 박근혜 대통령은 선거 전날 ‘병상 메시지’를 통해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에 대한 두 차례 특별사면이 노무현 정부 시절에 이뤄졌다는 점을 강조하며 야당에 책임을 돌리는 ‘초강수 카드’를 꺼내들었다. 그러자 야당은 대통령의 발언을 야당에 대한 ‘십자포화’로 보고 선거 중립을 위반했다고 반발했다.


선거 전날까지도 새누리당과 새정치민주연합 모두 선거구 4곳 중 2곳 이상을 차지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동상이몽’인 셈이다.
정치권은 물론 국민들의 이목이 집중된 4·29재보선 당일인 지난달 29일, 머니투데이 ‘더 300’의 진상현 정치부 국회 총괄팀장 겸 1팀장의 하루 일과를 통해 바쁘게 돌아가는 정치부 기자들의 일상을 들여다봤다.


인력배치 등 꼼꼼한 취재계획 필수
진상현 팀장은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오전 8시 국회 기자실에서 하루 일과를 열었지만 선거 결과를 기다리는 정치인만큼 ‘마음의 시계’는 밤 10시를 가리키고 있다.
기자들 사이에선 재보선을 보통 ‘점쟁이 선거’로 빗댄다. 결과를 쉽게 속단할 수 없기 때문이다.
더구나 이번 재보선의 경우 초박빙 양상을 띤 데다 선거 결과가 정국에 가져올 여진 탓에 여야는 물론 국민들마저 숨죽이고 선거결과를 지켜봤다.


진상현 팀장은 “재보선은 결과를 예측하기 상당히 어렵고 단순히 투표율이 과거 재보선보다 높다고 해 한쪽이 우세하다고 판단하기 힘들다”며 “대략 밤 10시쯤 당선 윤곽이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평소처럼 후배 기자들의 취재 동선과 인력 배치 등을 촘촘히 챙겨야 하지만 이날만큼은 현장 배치에 신경을 더 쓸 수밖에 없다.
이를 위해선 후배들이 보낸 발제부터 꼼꼼히 챙겨야 하는 게 필수. ‘모바일 시대’에 걸맞게 대부분 보고와 발제는 카카오톡 등 SNS메시지를 통해 이뤄진다.


오전 8시~8시30분 보고와 발제 등이 취합되면 팀원들과 얼굴을 마주하는 자리가 마련된다. 국회 기자실 내 머투에 배정된 자리가 한정돼 있기 때문에 흩어져 있던 팀원이 팀 회의를 통해 다 함께 할 수 있는 기회다. 팀장들은 돌아가면서 당직을 서야하기 때문에 일주일에 4번 정도 팀 회의를 갖는다.


이날도 국회 본관 기자실과 같은 1층에 위치한 휴게실에서 진 팀장을 비롯해 지영호 기자, 김태은 기자, 구경민 기자, 김성휘 기자, 박소연 기자, 하세린 기자 등이 모였다.
팀원과의 간단한 인사말을 끝내자마자 아침 발제시간에 취합한 아이템을 가지고 본격적인 회의가 시작된다. 


“관악을 선거구는 가까우니깐 현장에 가서 선거 스케치 좀 하고, 여야 후보들 선거 사무실은 가깝지?” “오전 선거 분위기와 상황 좀 준비하고 당선자 인터뷰는 개별적으로 하는 것은 의미 없으니깐 먼저 받아서 쓰고….” “중간 중간 각 당의 반응이 나올 것이니깐 챙기고, 혹시 출구 조사하는 방송사는 없지?” “오후 상황이 중요하면 일단 오후부터 신경 쓰는 걸로 하지.”


총알같이 주문을 쏟아냈지만 후배들의 의견을 최대한 반영한다. 무엇보다 현장 기자들의 목소리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오전 9시부터 30분간 진행된 팀 회의가 끝나면 숨 돌릴 틈 없이 기획기사를 준비하고 후배들이 올린 기사를 하나하나 빠짐없이 체크해야 하는 것도 오전 일과 중 빼놓을 수 없는 업무다.
1팀에 소속된 기자는 총 8명(파견 2명 포함)이지만 진 팀장은 팀 내 제일 고참인 ‘수석기자’여서 김준형 정치부장(부국장)을 보좌해 나머지 기자들의 협업을 이끌어내는 것 역시 그의 몫이다.


‘더 300’은 기존 ‘정쟁’ 중심의 정치기사를 탈피, ‘정책’ 중심의 정치문화를 만들기 위해 지난해 5월15일 출범했다.
정부 입법 발의보다는 의원 발의 비중이 높다는 점을 감안, 주요 상임위에서 나오는 모든 법안을 발의 초기부터 국회를 통과하는 전 과정을 검증하고 있다. ‘말싸움’보다는 ‘열공’(열심히 공부)하는 국회 문화를 만들자는 취지에서다.


처음엔 별도의 사이트(www.the300.kr)를 운영하는 이유에 대해 일일이 설명하기 바빴지만 취지에 공감하는 취재원이 늘고 있다는 게 진 팀장의 설명이다.


“과거엔 경제지 기자들이 정치부에 배치되는 것을 꺼렸습니다. 정치면의 비중이 적다보니 발제한 기사가 지면에 좀처럼 나오기 힘들고 또 정치인들이 상대적으로 종합일간지에 비해 차별한다는 생각이 있었거든요. 하지만 지금은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1999년 머투 공채1기로 입사한 진 팀장 역시 MB정부 때 청와대를 출입한 것 외에는 대부분 산업부, 금융부 등에서 일해 왔다.
더 300에는 기자 30명이 투입됐다. 단일 매체 정치부로는 최대 인력 규모다. 국회 1팀은 당 지도부와 당 중심의 정책을 담당하고, 2팀과 3팀이 국회 16개 상임위를 나눠 책임지고 있다.


“정치인들마저 정쟁보다는 정책 위주의 기사가 필요하다는 점에 공감해 취재 협조도 잘 이뤄지고 있습니다. ‘정책 기사’, ‘속기록 기사’라는 새로운 영역을 만들었습니다.”


정책 기획기사가 유행처럼 퍼져 국민 실생활에 도움이 되는 정치기사가 쏟아지는 촉매제 역할도 하고 있다.
특히 당 지도부와 달리 언론에 얼굴 한번 내밀기 힘든 초선이나 재선 의원들이 일한 만큼 평가받을 수 있어 반기는 분위기라는 게 후문이다. 심지어 타 언론사에서도 정책기사를 많이 참고할 정도다.


“아무도 하지 않았던 시도이다 보니 새로운 것을 늘 고민해야 하는 게 가장 어렵습니다. 만약누군가 먼저 했다면 고민 없이 따라가기만 하면 되지만 정책 기사는 첫 시도이다 보니 선·후배 모두 고민을 많이 하게 됩니다.”


오전 11시 국회 인근에 자리 잡은 ‘더 300’ 사무실로 향한다. 코앞으로 다가온 창간 1주년 행사를 위해 부장·팀장 간 회의가 예정된 날이기 때문이다.
국회 기자실이 ‘전진 기지’라고 하면 국회 인근 대산빌딩에 마련된 사무실은 ‘베이스캠프’다. 국회에서 도보로 10분가량 떨어진 사무실은 각종 회의나 기사 송고 공간 등으로 활용되고 있다.


이날 회의에는 김준형 부장을 비롯해 진 팀장, 국회 2,3팀장이 모두 모였다. 창간 행사 일정 체크에다 행사 당일 자리 배치, 다음 주 기획시리즈 마감일정 체크까지 팀장으로서 고민하고 챙겨야 할 게 한둘이 아니다.
선거 당일 상황을 알 수 없어 점심 약속까지 일부러 잡지 않았지만, 창간 준비 논의는 결국 점심식사 자리까지 이어졌다.



온·오프 기사마감, 시간과의 전쟁
오후 일정은 투표 마감시간이 다가올수록 더욱 숨 가쁘게 돌아갈 수밖에 없다. 선거 결과가 밤 10시쯤 윤곽이 드러날 것으로 예상되지만 종이신문에 들어갈 지면기사 ‘강판’ 마지노선은 밤 9시다. 방송사 출구조사도 없을 뿐더러 박빙의 승부가 예상된 선거여서 기자의 ‘촉’이 필요한 시점.


“선거 결과가 밤늦게 나오는데 신문 강판이 밤 9시 정도로 좀 빠른 편입니다. 결과가 나오지 않은 상태에서 기사를 마무리해야 하기 때문에 어려움이 많을 것 같습니다.”


‘1분1초’가 아쉽지만 이럴 때일수록 머리만 바빠지기보다는 ‘바쁠수록 돌아가라’는 말이 있듯이 취재원을 직접 만나보는 게 ‘왕도’. 


오후 2시 새누리당 원내대변인 이종훈 의원(성남시 분당 갑)을 만나 재보선 이후 정국과 내년 총선 전망 등에 대해 의견을 들어본다.
기자실 자리에 앉기 무섭게 이번엔 같은 당 수석대변인인 김영우 의원실(경기도 포천시 연천군)에서도 시간이 괜찮다는 답변이 왔다. 또 다시 왕복 30분이 걸리는 번거로움을 마다하지 않고 의원회관으로 향했다.


전화 취재 등 보강 취재를 바탕으로 4·29재보선보다 공무원연금개혁 등 현안들을 잘 풀어가는 것이 여당 입장에선 중요할 수밖에 없다는 판단이 섰다.
선거 결과를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재보선 이후 여야 관계와 공무원연금개혁 문제 등에 미칠 파장을 진단한 기사로 이날 지면 기사를 마감할 계획이다.
지면엔 재보선 결과가 들어가지 못하지만 온라인용 기사 마감을 위해 장기전에 대비해야 할 시점.


오후 5시40분, 각자 흩어져 있는 것보다 팀원들이 한 자리에 있는 게 낫다는 판단에서 베이스캠프로 소집시켰다.
진 팀장은 사무실로 들어가는 내내 한시도 스마트폰에서 눈을 떼지 않는다. 후배들에게 취재 지시 등을 내려야 하기 때문이다.


“요즘은 SNS 메신저를 통해 실시간으로 취재 지시를 내리고 체크도 해야 하기 때문에 걸어갈 때도 스마트폰에서 눈을 뗄 수가 없습니다.”


그래도 취재원과 기자들 사이에서 ‘더 300’에 대한 호평을 듣는 게 가장 큰 보람이다. 요즘은 영향력이 커지면서 벤치마킹하는 신문사들도 늘었고 기사를 그대로 도용하는 경우도 부쩍 증가했다. 실제 무상급식 지원 중단으로 논란이 됐던 홍준표 경남지사의 미국 출장 중 골프 논란도 ‘더 300’에서 첫 보도했다.


“정책 기사 위주로 기사를 쓰기 때문에 뉴스통신사에서 생산하는 똑같은 기사는 쓰지 않습니다. 홍준표 경남지사가 미국 출장 중 골프를 쳤다는 논란도 2~3곳에 제보했던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를 기사화한 곳은 ‘더 300’ 밖에 없었습니다.”


후배들이 고생해 생산한 기사를 그대로 베껴가는 현실은 안타깝지만 바꿔 생각하면 그만큼 언론계에서 제 역할을 하고 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더 300’이 출범한 취지와 필요성에 대해 국회의원들도 잘 알기 때문에 오히려 쉽게 취재에 응합니다. 정책 기사의 중요성을 인식해 아침에 ‘더 300’을 먼저 챙겨본다는 국회의원들도 많이 늘었습니다.”

민심 위반한 정치·언론 외면 받아
저녁 7시부턴 피 말리는 ‘시간과의 전쟁’이다. 종이신문 마감시간인 저녁 9시를 넘겨선 안 되기 때문이다. 머투는 다른 신문사에서 종이신문을 찍기 때문에 주요 종합일간지보다 ‘데드라인’에 여유가 없다.
하지만 진짜 전쟁은 종이신문 마감 이후부터다. 종이신문 마감 이상으로 독자들과 실시간으로 소통할 수 있는 모바일·인터넷 기사가 중요해졌기 때문이다. 


“평소에 약속이 없으면 저녁 9시쯤 퇴근하는데 재보선 결과에 대한 기사를 써야 해 오늘은 자정을 넘겨야 할 것 같습니다.”


진 팀장을 비롯해 기자 7명은 ‘문재인, 오늘 10시 재보선 패배 입장 발표’란 기사를 마지막으로 이튿날 새벽 1시가 돼서야 ‘짧은 하루’를 정리할 수 있었다.
이번 재보선은 ‘점쟁이 선거’라는 말을 또 한번 실감할 수 있는 장이었다. 새정치민주연합이 당초 전망과 달리 전통 텃밭인 광주 서을과 서울 관악을에서 각각 무소속 후보와 새누리당 후보에 참패했다.


“예측과 다른 결과가 나왔는데 재보선이라는 한계 때문인 것 같습니다. 유권자들이 새정치민주연합에 분열을 막지 못한 원죄를 물은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여당도 부패 의혹 해소와 개혁을 소홀히 하면 내년 총선에서 어떤 결과가 나올지 모른다는 교훈을 알려준 선거였던 것 같습니다.”


국민들은 언제든지 ‘민심’을 위반한 정치에 등 돌릴 수 있다는 게 ‘만고의 진리’다. 언론 역시 이런 진리를 거스를 수 없다.


‘더 300’은 남들과 ‘다른 길’을 택했지만 그 길이 정치발전에 토대가 될 것이란 믿음과 의무를 가지고 내일을 열 것이다. 그게 곧 국민을 편하게 하는 길이고 언론이 해야 할 역할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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