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해외 바이어들을 만날 때면 고개를 들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해외 출장이 잦은 한 기업인이 들려준 얘기다. ‘검찰의 기업 사정’이나 ‘성완종 리스트 파문’에 대해 종종 물어오기 때문이란다. 해외 업체는 여기에 연루된 기업과는 거래를 피하기 위해 묻는다지만, 질문을 받는 한국 기업인으로선 치부를 들킨 듯한 기분을 느끼는 것은 단순한 자괴감의 발로만은 아니다.
한국 주식시장은 ‘코리아 디스카운트(Korea Discount)’라는 낙인을 갖고 있다. 한국 기업들의 시장 가치가 다른 나라 기업 가치에 비해 저평가되는 현상을 일컫는 말이다. 실제 삼성전자, 현대차 등 이른바 간판급 국내 기업들의 주가는 외국 경쟁사에 비해 낮다. 국내 증시 시가총액 1위 종목인 삼성전자의 12개월 선행 주가수익비율(PER)은 9.9배. 대표적인 경쟁사인 애플(14.5배)에 크게 못 미치는 수준이다. 현대차나 기아차도 매한가지다. 현대차와 기아차 PER은 각각 5.7배, 6.2배. 외국 경쟁업체인 도요타(10.6배), 다임러(10.3배), 포드(9.7배) 등을 밑돈다. 국내 벤처신화로 꼽히는 네이버는 29.1배로 상대적으로 높지만 이마저도 미국의 페이스북(40.0배)과 비교하면 턱없이 낮은 상태다.
정부는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원인으로 남북대치에 따른 지정학적 리스크와 함께 한국 기업의 낮은 배당수익률을 지목한다. 이런 진단에 따라 최경환 경제팀은 배당 확대 정책을 밀어붙이고 있다. 기업에 대해 배당을 높이라고 공공연히 ‘압박’한다. 국민연금이 정책의 호위무사로 나섰다. 배당이 적은 기업의 ‘블랙리스트’를 만들고 주주총회에서 배당 확대를 적극 요구하기로 했다. 국민연금이 5% 이상 지분을 가진 유가증권·코스닥 종목은 273개에 달한다.
하지만 코리아 디스카운트는 기업 배당을 늘린다고 해소될 문제가 아니다.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진짜 원인은 과소배당이 아니라 한국 기업 환경의 불투명성에 있기 때문이다. 해외 투자자들이 가장 꺼리는 것은 ‘불투명성’이다. 후진적 기업 환경을 가진 나라나 내부에 불확실성을 안고 있는 기업엔 절대 투자하지 않는다는 게 이들의 불문율이다. “복잡한 기업에서는 한 문제가 해결되자마자 또 다른 문제가 드러난다. 부엌에 바퀴벌레가 한 마리만 있진 않기 때문”(워런 버핏)이다.
국제투명성기구(TI)의 ‘2014년 국가별 부패인식지수(CPI)’ 조사에서 한국은 175개 대상국 중 43위를 차지했다. 2008년 이후 6년 연속 하락과 정체를 지속하는 상황이다. 기업 투명성 지표는 더 심하다. 지난해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원(IMD)이 평가한 한국 기업의 회계 투명성 지수는 60개국 중 58위로 최하위 수준이었다. 세계경제포럼(WEF)에서 평가한 한국 기업의 회계 투명성 지수는 148개국 중 91위. 중국 80위보다도 낮은 게 현실이다.
외국인들이 한국 정부와 기업의 부패정도와 투명성에 대해 이처럼 인색한 평가를 내놓는 것은 때 되면 터져나오는 ‘정치권과 기업의 유착 스캔들’ 때문이다. 포스코와 같은 세계적인 기업 계열사가 비자금 횡령 조사를 받고, 중견기업인 경남기업 회장이 죽음과 함께 뇌물 리스트를 터뜨리는 상황에서 좋은 평가를 기대하는 것 자체가 욕심일 것이다.
한국의 IMF 위기 때 ‘정실 자본주의’는 위기의 숨은 주범으로 지탄을 받았다. 하지만 성완종 파문은 한국의 정실 자본주의가 변한 게 없음을 보여주고 있다. 지난 20년 가까이 코리아 디스카운트가 완화되지 않는 진짜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