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럼 장사'에 동원되는 기자들

[우리의 주장] 편집위원회

기자(記者)의 사전적 정의는 ‘기록하는 자’다. 풀어 쓰면 ‘신문·잡지·방송 등에 실을 기사를 취재하여 쓰거나 편집하는 사람’(국립국어원 정의)이다. 그러나 최근 언론사의 행태를 보면 ‘기자’에 ‘자사 행사의 인사 초청을 담당하고 모객 행위를 하는 사람’이라는 새로운 정의가 추가된 듯 하여 착잡하다. 주요 언론사를 포함한 다수 신문 매체의 최근 1면을 보면 문제점이 드러난다. 지난 20일과 21일 주요 일간지 3개사의 1면은 모두 자사 주최 포럼의 외빈들이 원탁에 앉아 박수를 치거나 나란히 서서 기념사진을 찍는 모습이었다. 1면거리 뉴스가 국내외 모두에서 차고 넘치는 상황에서 수십 명의 VIP들이 박수를 치는 사진이 과연 뉴스 가치가 있는지 의문이다. 


주요 일간지는 그래도 사정이 나은 편이다. 경영 사정이 상대적으로 열악한 매체일수록 포럼·세미나 등의 행사 주최에 사활을 건다. 포럼을 통해 한반도의 미래를 걱정하거나 창조경제의 나아갈 길을 모색한다는 취지도 물론 있겠으나 사실은 협찬을 통한 수익이 목적이다. 일부 기업 홍보 담당자들 사이에서 ‘포럼 장사’라고 불리는 행태가 만연하고 있다는 것은 언론계의 위기가 심화됐다는 반증이라 더욱 착잡하다. 본보가 지난 13일자(제1751호) 머리기사로 다뤘듯 언론 산업은 지난 10년간 마이너스 성장을 거듭했다. 


10년치 실질 매출액 성장률이 플러스를 기록한 매체들 중에는 굵직한 행사로 소위 ‘대박’을 터뜨린 곳이 여럿 눈에 띈다. 이들 매체들이 높은 성장률을 기록한 배경에 대한 의혹이 끊이지 않는 게 아픈 현실이다. 본보가 지난해 6월부터 올해 5월까지 7개 언론사의 행사 개최수를 조사한 결과, 한 달 평균 15개의 행사가 열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1년에 약 50개의 행사를 하는 매체도 있었으며 어느 언론사는 ‘OO머니쇼’라는 점잖지 못한 이름의 행사로 기업에게 협찬을 요구한다고 한다. 


문제는 이런 행태가 언론계의 제 살 깎아먹기로 귀결된다는 점이다. 기업은 바보가 아니다. 협찬금은 각 매체에 할당된 광고비에서 지출되는 것이 대부분이다. 특정사에만 광고를 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기업이 아예 해당 언론사와 미리 조율해 협찬의 형태로 지원을 하는 변칙 행위도 늘어났다. 이런 정황은 국제적 망신도 안겨줬다. 각 행사의 연사들의 급에 따라 사세가 결정되는 듯한 모양새가 연출되면서 국제 연사 시장에서 한국은 ‘호갱님’이 된 지 오래다. 은퇴한 저명인사들의 국제 행사 참석만 관리해주는 에이전시가 최근 생겨나고 있는데 이들의 VIP 리스트엔 한국 언론사들이 수위를 차지하고 있다는 말이 들려온다. 


기자들은 섭외와 협찬 등 행사의 굴레에서 허덕이고 있다. 기자들이 기자실에 앉아 자사 주최 행사에 담당 출입처 고위급 인사를 초청하기 위해 전화를 돌리는 장면도 자주 목격된다. 출입처의 누가 자사 행사에 참석하는지에 따라 그 기자의 역량이 평가되는 경우도 적지 않기 때문이다. 기자의 사기 저하는 불 보듯 뻔한 일이다. 게다가 정황은 콘텐츠의 질적 저하로 직결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더 큰 문제다. 이는 곧 언론계의 신뢰도를 떨어뜨리는 악순환으로 이어질 뿐이다. 


자선단체가 아닌 이상 언론사도 수익을 내야 한다. 그러나 품위를 잃지 않으면서 생존하는 방법부터 찾는 게 순서다. 뉴욕타임스가 유료 구독자를 대상으로 프리미엄 서비스를 제공하며 구독률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 좋은 예다. 기자는 기사를 쓰는 자다. 자사 행사를 위해 기업의 눈치를 보고 출입처에 압력을 행사하는 존재가 아니라는 간단하고도 명료한 이 ‘팩트’를 잊어선 안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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