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배경찰서의 도서관 습격사건이라고 들어보셨는지. 최근 A도서관에서 들은 ‘웃픈’ 이야기다. 말 그대로 방배경찰서 기동대에서 A도서관으로 출동한 일이 있었다고 한다. 열람실 같은 자리로 매일 ‘개근’하다시피 하는 할아버지와 청년의 자리싸움이 주먹다짐까지 확대됐다는 것이다. 항상 앉는 자리라며 방심한 할아버지가 필통만 하나 덜렁 올려놓고 외출한 사이, 그 자리에 젊은이가 와서 앉았다는 것. 내 자리다, 도서관에 개인 자리가 어디 있느냐, 시비가 붙어 버렸다.
관련 이야기를 기사로 썼더니 역시 세대별로 반응이 달랐다. 중장년 세대는 아무래도 같은 세대 편을, 젊은 세대는 역시 젊은 세대 편을 많이 들었다.
물론 이 ‘방배서 습격사건’은 없으면 좋았을 안타까운 사례다. 하지만 여기서 주목할 지점은 ‘매일 개근’에 있다. 요즘 도서관의 ‘떠오르는 핵심 고객’은 중장년인 것 같다. 국립중앙도서관에 통계를 요청했다. 두 가지 특징이 선명했다. 하나는 10년 전에 비해 60대 이상 비율이 200% 늘었다는 점, 또 하나는 할아버지만 가득하고 할머니는 가뭄에 콩 나듯 한다는 점이다. 남녀 비율이 거의 99:1이었다.
2006년 국립중앙도서관 방문자 통계에서 60대 이상의 비율은 12.44%, 지난해인 2014년은 21.72%. 거의 두 배다. ‘100세 시대’임을 고려한다 하더라도 60대 이상의 중앙도서관 이용인구가 폭증한 것은 주목할만한 일이다. 하지만 더 놀라운 대목은 남녀 비율에 있었다. 2006년의 60대 이상 중 남성 비율은 98.71%, 여성 비율은 1.29%. 2014년에는 60대 이상 중에서 남성 95.71%, 여성 4.29%였다. 할머니 비율도 증가한 건 사실이지만 아직까지는 역부족이었다. 도대체 할아버지만 도서관을 좋아하는 걸까. 아니면 할머니들은 다른 즐거운 일들이 더 많은 걸까.
‘99:1’에 대한 해석도 남녀별로 조금 달랐다. 남성 소설가인 정소성 단국대 명예교수는 “도서관과는 달리 관광버스나 식당에는 남자보다 여자, 할아버지 보다는 할머니가 훨씬 많은 것 같다”면서 “아무래도 삶의 주된 역할과 관련 있는 게 아니겠느냐”고 했다. 도서관 출입에 대한 자부가 엿보이는 해석이다. 관심 영역도 남성 중장년은 인문학이나 동양 고전 강좌를 많이 듣는다는 게 도서관 측 설명이었다.
반면 할머니들의 풍성한 사교성과 할아버지의 사회성 부족에 대한 반박도 있었다. 한 여성 소설가는 “할아버지는 공적 삶의 은퇴 후에 시작되는 사적 여백을 감당하기 힘들어하는 것 같다”면서 “할머니들은 함께 갈 곳이 너무 많다”고 했다. 또 손주의 육아와 살림에 바쁜 현실을 반영한 수치라는 지적도 있다.
물론 ‘99:1’은 국립중앙도서관에서 나타나는 극단적 수치일 수도 있다. 하지만 지역 도서관이라고 해서 크게 다르지는 않았다. 자주 다니는 집 근처 도서관인 서대문 이진아 도서관의 이정수 관장이 해 준 이야기도 비슷하다. 커뮤니티 문화에 익숙하지 않은 할아버지는 조용히 혼자서 자기 책을 보거나 전자정보도서관에서 컴퓨터를 이용하는 반면, 할머니들은 ‘동화쓰기’나 ‘자서전 쓰기 프로그램’ 등 여러 사람과 같이 어울리는 강좌를 많이 선택하더라는 것이다.
도서관의 할아버지 할머니 비율 격차가 확 줄었으면 좋겠다는 소망이 있다. 좀 더 많은 할머니들이 도서관을 찾는다면 대부분 하나의 표정으로 일관하는 할아버지들의 안면 근육도 좀 더 부드러워질 것이다. 방배서의 도서관 습격사건이 다시는 재발하지 않기를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