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 사전검열 노리는 캐머런 정부

[글로벌 리포트 | 영국] 김지현 골드스미스 런던대 문화연구 박사과정

재집권에 성공한 데이비드 캐머런(David Cameron) 현 총리가 이끄는 새 내각이 파격적인 방송 규제안을 추진 중이라는 사실이 알려져 영국 방송가가 시끄럽다. 


지난달 21일 일간지 ‘가디언’이 사지드 자비드(Sajid Javid) 산업부 장관이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에게 보낸 서한을 단독으로 입수해 방송통신 규제기관인 오프콤(Ofcom)이 방송 내용을 방송 전에 모니터링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는 사실을 폭로하면서 이에 대한 논쟁이 정치권에서 방송가에까지 확산되고 있다. 


‘가디언’에 따르면 작성일이 3월12일이라고 표기돼 있는 문서에서 자비드 장관은 총리 측에 테레사 메이(Theresa May) 내무부 장관이 장관들에게 오프콤이 방송 전에 프로그램에 극단주의 내용이 담겨져 있는지를 모니터링하자고 제안한 것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전달했다. 


당시 문화부 장관을 지내고 있었던 사지드 자비드 신임 산업부 장관은 이러한 내용의 방송 규제안이 미래에 추진된다면 “영국 방송의 규제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꿀 것”이라고 지적하는 한편, ‘사전 검열’로 세간에 알려질 경우엔 “정부가 충분한 정당화 없이 ‘표현의 자유’에 참견하는 것으로 비춰질 공산이 있다”며 그 위험성을 경고하기도 했다. 


테레사 메이 장관이 내각의 다른 구성원마저 반대하는 ‘과격한’ 방송 규제안을 추진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가디언’에 따르면 이번 제안의 배경에는 영국 내에서 이슬람 극단주의의 확산을 원천적으로 차단하려는 보수당의 대테러 정책이 있다. 


이전 내각에서 활동할 때부터 테레사 메이 장관은 “보다 강력한 영국을 위해서”라는 이유를 들어 극단주의자들이 자신의 견해를 방송을 통해 공공에 전파하여 젊은이들을 극단주의로 몰고 가지 않도록 영국 정부가 강력하게 규제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하지만 그녀가 그 구체적인 방안으로서 정부기관인 오프콤의 권한을 ‘전례 없이’ 확대해 방송에 대한 사전 검열을 할 수 있도록 입법화를 시도하고 있었다는 점은 이번 가디언의 보도를 통해 알려지게 됐다. 


이러한 폭로에 방송가는 예민하게 반응하지 않을 수 없다. 방송 산업의 유력 인사들은 일제히 내무부 장관의 구상이 “전적으로 터무니없고”, “정당화하기 어렵다”고 강한 어조로 비판했다. 


먼저 BBC의 편집국장 출신인 로저 모지(Roger Mosey)가 어떤 것이 극단주의인지 판단하는 것은 때때로 어려울 수 있는데 이를 정치인의 판단으로 하는 것은 ‘최선일 수 없다’고 반대 입장을 표명했다. 


오프콤의 임원을 지냈던 스티븐 위틀(Stephen Wittle)마저도 이러한 규제는 커뮤니케이션법(the Communciations Act)과 인권법(the Human Rights Act)이 보장하는 표현의 자유를 해치는 “시대를 역행하는 구상”이라고 신랄하게 비판하였다. 


현실에서 극단주의의 메세지가 전달되는 주요 통로가 방송이 아닌 소셜 미디어라는 점도 새로운 규제안 도입과 관련, 반대파 입장에 힘을 실어준다. 


실제 영국 내에서 급진주의나 과격주의 종파의 증오 연설이나 편파적 발언의 대부분은 이라크나 시리아, 이집트 등에 거점을 두고 온라인의 소셜 미디어를 통해서 전파되고 있다. 


영국 내에서 오프콤이 이러한 국경 밖 소셜 미디어 활동까지 차단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힘들다. 이러한 이유로 다이앤 코일(Diane Coyle) 전 BBC 트러스트의 부회장 역시 “오프콤이 방송사 재료들을 사전 검열해야한다는 발상 자체가 원칙적으로 틀렸다”고 반대 의견을 내놓은 바 있다. 


하지만 방송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는 ‘반-극단주의’를 표방한 새로운 방송규제안의 도입을 지지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그는 5월22일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테레사 메이 장관의 아이디어는 “극도로 합리적”이라고 편을 드는 한편, “오프콤은 미디어를 통해서 극단적인 메세지들이 방송되지 않도록 보장하는 역할을 갖는다”며 오프콤의 권한 확대에도 지지하는 입장임을 우회적으로 밝혔다. 


‘빈대 미워 집에 불 놓는다’고 했던가. 급진주의의 목소리가 방송을 탈까 걱정돼 방송 전체를 사전에 검열하겠다는 캐머런 내각의 ‘과격한’ 발상이 현실화되면 언론의 자유는 어떤 방식으로든 침해될 소지가 높아 보인다. 그것이야말로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심각한 위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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