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피운 배우자 이혼재판, 대법원에 쏠린 눈

[스페셜리스트 | 법조] 박민제 중앙일보 기자

조선 19대 임금 숙종이 요즘 세상에 살았더라면 장희빈과 결혼하겠다고 인현왕후와 헤어질 수 있었을까요. 아마도 가정법원에 이혼소송을 낼 수는 있겠지만 기각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유는 우리 대법원이 채택하고 있는 ‘유책주의’ 판례 때문입니다. 유책주의는 이혼할 때 상대방의 책임을 따져 묻는 재판상 이혼의 한 방식입니다. 부부 간에 지켜야 할 동거·부양·정조의 의무가 있고 이를 어길 경우에만 재판을 통해 이혼할 수 있게 허용하는 것이죠.


우리 민법 840조에는 재판상 이혼 원인을 6가지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배우자에게 부정행위가 있었을 때, 악의로 다른 한쪽을 유기했을 때, 배우자의 생사가 3년 이상 분명하지 않은 때, 그 밖에 혼인을 계속하기 어려운 중대한 사유가 있을 때 등등 입니다. 중요한 것은 이 같은 유책사유가 있는 쪽은 잘못이 없는 배우자를 상대로 이혼을 청구할 수 없다는 점입니다. 쉽게 말해 바람피운 배우자가 이혼소송을 낼 경우 허용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유책주의의 반대는 파탄주의입니다. 누가 잘못을 저질렀건 따지지 않고 결혼생활 자체가 이미 회복할 수 없을 정도로 파탄난 경우라면 이혼을 허용하자는 방식입니다. 


유책주의가 목표하는 지점은 분명합니다. 상대적으로 약자인 쪽이 부당한 대우를 받고 쫓겨나는 것을 막고자 하는 ‘보호막’의 성격이 강했습니다. 경제력이 있는 남자가 바람을 피우고 이혼을 요구하는 축출(逐出) 이혼을 예방하기 위한 취지라고 보면 큰 무리가 없을 듯 합니다. 숙종과 인현왕후도 그런 사례겠죠. 대법원은 1965년 첩을 둔 남편이 본부인을 상대로 낸 이혼 소송에서 ‘첩을 얻은 잘못이 있는 남편의 이혼청구를 받아들일 수는 없다’며 첫 유책주의 판결을 선고했습니다. 이후 ‘상대방이 정당한 사유 없이 오기 또는 보복적 감정으로 이혼청구에 응하지 않고 있다’고 볼 사정이 있는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원칙적으로 유책주의 입장을 50년째 유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최근 2~3년새 하급심 법원을 중심으로 이 같은 판례의 입장에 반하는 판결들이 속속 나왔습니다. 시대가 변하면서 점점 유책주의가 보호하는 장점은 희미해졌고 유책주의로 인한 부작용은 부각됐기 때문입니다. 이혼소송에서 남녀관계가 과거에 비해 상대적으로 평등해졌고 재산분할제도의 도입으로 경제활동을 하지 않은 배우자가 겪는 어려움도 상당부분 해결됐습니다. 그러다 보니 서로 더 이상 같이 살고 싶어하지 않은 상태인 ‘무늬만 부부’에게 계속 부부로 살 것을 강요하는 게 부당해 보이는 결과가 생긴 것이죠. 대법원이 오는 26일 유책주의 파탄주의 적용 사건에 대해 공개변론을 여는 것도 이 같은 이유에서입니다. 


원고는 1976년 결혼해 슬하에 3명의 자녀를 뒀지만 1998년 혼외자를 낳고 2000년 무렵부터 15년간 다른 여성과 동거하고 있는 남성입니다. 같이 살진 않았어도 본처가 낳은 아이들의 학비를 내고 생활비를 꾸준히 보내줬습니다. 2011년 병을 얻은 이 남성은 법원에 이혼소송을 냈습니다. 1,2심은 원고가 유책배우자라는 이유로 이혼청구를 기각했습니다. 


최근 몇년간 가족관계를 둘러싼 법원의 판례는 많은 변화를 겪고 있습니다. 2013년 대법원에서 부부 사이에도 강간죄가 성립한다고 판결한 데 이어 지난해에는 공무원 퇴직연금도 재산분할이 가능하다며 판례를 바꿨습니다. 헌재에서는 올 초 간통죄가 폐지됐습니다. 바뀐 시대를 반영한 새로운 해석들이 속속 나오고 있습니다. 이번 유책주의에 대한 대법원 판단이 관심을 모으고 있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대법원은 과연 어떤 판단을 내릴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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