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년간 사주 고발, 편집국 폐쇄, 법정관리 등 고비를 넘기고 동화기업에 인수합병된 한국일보가 9일 재창간 선포식을 열었다. 61년 역사의 한국일보 재출범은 그저 한 종합일간지의 사주가 바뀌었다는 의미에 그치지 않는다. 청산 위기를 넘기고 한국일보가 정상화되기까지는 한국일보 구성원들의 노력 외에 사회적 지지와 성원이 뒷받침됐다. 그런 만큼 언론의 역할에 대한 책임과 과제를 떠안게 됐다고 할 수 있다.
한국일보 사태는 여러모로 역사에 기록될 만한 이례적이고 기적적인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2년 전 한국일보는 노조로부터 고발당한 전 사주의 용역 동원으로 편집국이 폐쇄되는 파국의 상황을 맞았었다. 언론통제가 극심했던 군사독재정권 때도 볼 수 없었던 언론사에 유례없는 일이다. 하루 아침에 일터에서 내쫓긴 대다수 한국일보 기자들은 매일 아침 신문사 로비에 모여 출근 투쟁을 벌였다. 편파 보도나 권력의 개입 등에 항의하며 기자들이 파업을 벌이던 여느 언론사의 싸움과 달리 “신문을 만들게 해달라”는 게 한국일보 기자들의 요구사항이었다.
그 때 한국일보 기자들은 혼자가 아니었다. 한국기자협회 전 회원사가 한국일보 정상화를 위한 응원의 메시지를 모아 기자협회보에 실었다. 이처럼 모든 회원사가 단일한 목소리를 낼 수 있었던 이슈도 드물었다. 굳게 잠긴 편집국 앞에서 기자들이 농성을 벌이던 현장에는 여야 정치인, 동료 언론인, 시민단체들이 방문했고, 편집국 폐쇄의 부당성을 알리기 위한 한국일보 기자들의 1인 시위에 많은 문인들이 동참했다.
법원의 기업회생 판례에서도 한국일보의 회생은 한 획을 남긴다. 임금근로자가 체불임금을 채권으로 삼아 법정관리를 신청하고 졸업에 성공한 것 자체가 처음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법원이 장재구 전 한국일보 회장의 한국일보 지분을 소각하고 인수합병을 통한 회생 결정을 내린 데에는 그가 저지른 횡령범죄가 주요한 판단 근거가 됐을 테지만, 사주의 경영비리 때문에 오랜 전통의 언론사를 그대로 청산시킬 수는 없다는 고려가 깔려 있었을 것으로 본다. 인수합병도 한 번에 성공하지는 않았다. 1차 인수합병이 실패로 끝난 뒤 두번째 시도에서야 새로운 사주를 찾을 수 있었다.
이 모든 험난한 여정이 성공적 결말을 가져온 데에는 임금삭감 등 한국일보 구성원들의 희생 감수가 물론 바탕이 되었겠지만, 한국일보라는 신문이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하다고 여긴 외부의 지지와 성원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일이다. 언론사들의 과열 경쟁과 정치적 분파주의, 이로 인한 선정적 보도가 넘쳐나는 언론 환경에서 그래도 권력에 영합하지 않고 중도를 표방하며 불편부당의 사시를 내건 신문사 하나쯤 있어야 한다는 믿음이 있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새삼스럽게 ‘사회적 공기(公器)’로서의 언론을 인식할 수 있었던 계기가 한국일보 사태였던 것이다.
이런 점에서 재창간을 선포한 한국일보의 어깨는 무겁다. 법정관리를 성공적으로 졸업한 한국일보는 이제 오랜 채무를 정리하고 경영을 안정화할 발판을 마련했는데 이러한 내적 목표에만 매몰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당시 한국일보 기자들의 싸움을 지지했던 이들은 이제 한국일보가 언론으로서 제 역할을 다하는 신문으로 다시 태어나길 기대하고 있다. 정확한 정보와 공정한 시각을 담은 언론, 약자의 편에서 그들의 목소리를 대변하고 권력을 감시하고 견제하는, 상식을 벗어나지 않는 그런 언론을 필요로 한다. 다시 태어난 한국일보가 이러한 기대에 부응하는 신문이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