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가 메르스 보도와 관련해 신문사 편집국장에게 모욕적인 전화를 하고, 광고를 통한 언론 길들이기를 했다는 의혹이 드러나 언론계의 분노를 사고 있다. 지난 16일 김성우 청와대 홍보수석이 박현동 국민일보 편집국장에게 강력히 항의하는 전화를 했다고 한다. 박근혜 대통령의 서울대병원 방문 기사와 관련해 김 수석이 “그게 기사가 되느냐”고 따졌다는 것이다.
이미 출고된 기사에 대해 ‘기사가 되냐’고 지적하는 말은 기자 고유의 업무와 편집권에 대한 도전으로 언론사 내부에서조차 극히 자제하는 표현인데 취재원으로부터 편집국장이 이런 말을 듣는 것은 모욕적일 수밖에 없다. 기사에 사실관계가 잘못된 부분이 있으면 이를 해명하고 수정하도록 협의하면 될 일이다.
하지만 청와대는 “기사 판단은 기자와 언론사의 몫”이라는 국민일보의 답변에 정부광고 배제로 보복하고 나섰다. 홍보수석이 전화를 하고 사흘 만에 정부가 메르스 관련 공익광고를 모든 종합일간지와 경제지에 실으면서 국민일보만 누락한 것이다. 모든 언론사에 같은 광고를 집행하는 속칭 원턴(one turn) 방식 광고에서 한 신문사만 빠지는 것은 극히 이례적인 일이다. ‘앞으로 국민일보에 정부광고를 안 주겠다’는 위협으로 느껴질 수 있는 대목이다. ‘협조하지 않으면 어떤 언론사도 정부광고를 받을 수 없을 것’이란 전체 언론에 대한 청와대의 메시지로도 해석될 수 있다.
개인기업이야 특정 언론사에 광고를 줄 수도, 안 줄 수도 있지만 정부광고는 모두 국민세금으로 집행하는 것이다. 특정 언론을 배제하려면 그 이유도 명확해야 한다. 특히 이번 정부광고는 ‘메르스, 최고의 백신은 함께 이겨낼 수 있다는 믿음입니다’라는 문구대로 국민의 인내와 동참을 호소하는 광고였다. 국민일보 독자들은 메르스 극복에 동참하지 않아도 된다는 뜻인가.
청와대는 메르스 위기가 고조되던 시기 대통령의 동대문상가 방문 소식을 브리핑하면서 시민들이 환호했다는 자화자찬으로 빈축을 샀고, 가뭄으로 바짝 마른 논에 대통령이 물쏘기를 하는 모습을 연출해 실소를 불렀다. 청와대 홍보라인은 메르스와 가뭄이라는 국가적 위기 상황에 언론을 통한 대통령 PR에만 몰두한다는 비난을 자초했다.
박근혜 정부의 언론관은 이미 올해 초 당시 이완구 국무총리 후보자가 여실히 보여줬다. 이 후보자는 ‘언론사 출연진을 마음대로 교체하고, 언론사 인사에 개입했다’고 기자들에게 자랑스럽게 얘기했다. 언론탄압이 자랑거리가 되는 게 현 정부의 수준이다. ‘기자를 본인도 모르게 죽일 수 있다’는 총리와 ‘편집국장 대신 기사 판단을 하겠다’는 홍보수석. 언론을 정권의 전리품으로 생각한다는 점에서 일관성마저 느껴진다.
메르스로 인한 불안과 불신이 극에 달했던 지난 12일엔 경찰이 생뚱맞게 손석희 JTBC 사장을 소환하기도 했다. 정부 각 부분이 메르스 대신 언론을 잡고 있는 것이다. ‘언론 길들이기’가 대통령의 뜻이 아니라면 박근혜 대통령은 즉시 국민일보에 사과하고, 문제가 된 김성우 홍보수석을 질책해야 한다. 언론사에 ‘갑질’이나 하며, 적대관계를 만드는 홍보수석이 대통령에게 무슨 도움이 된단 말인가.
원래 아무 일도 안했지만 더욱 격렬하게 아무 일 안하는 거대 야당도 제 역할을 찾기 바란다. 유례없는 가뭄과 메르스에 언론자유까지 위협받으며 국민의 생존권과 기본권이 유린받고 있지만 무능하고 무도한 권력에 대한 견제는 찾아볼 수 없다. 국민은 야당에 정권을 주진 않았지만 권력을 감시할 힘은 충분히 줬다. 선거도 얼마 남지 않았다. 최소한의 밥값은 해야 하지 않겠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