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VS 엘리엇, 거대한 전쟁의 '서막'

[스페셜리스트 | 금융] 유병연 한국경제신문 차장

‘헤지펀드 역사상 가장 똑똑하고(smartest) 거친(toughest) 펀드매니저.’


엘리엇매니지먼트를 이끄는 폴 싱어 회장에 대한 국제 자본시장의 평가다. 이런 폴 싱어 회장이 삼성의 아킬레스건을 물었다. 지난 3월부터 삼성물산 주식을 비밀리에 매집한 뒤 지난달 말 삼성물산이 제일모직과의 합병안을 발표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합병 비율이 불공정하다”며 경영참여를 선언한 것이다.


일각에선 엘리엇이 ‘단기 먹튀’를 노리고 합병에 반대에 나섰다는 분석을 내놓기도 한다. 하지만 이는 폴 싱어 회장이 왜 헤지펀드 업계에서 가장 거칠다는 평가를 받는지를 간과한 채 엘리엇을 그저 그런 헤지펀드 중 하나로 평가 절하한 결과다.


엘리엇이 평범하지 않다는 사실은 화려한 전적이 보여준다. 기업이든 국가든, 상대를 가리지 않고 공격해 승전보를 울려댔다. 엘리엇은 1996년 부도가 났던 페루 채권을 헐값에 산 뒤 이자를 합쳐 5800만달러를 지급하라는 소송을 뉴욕 법원에 내 승소, 전액을 받아냈다. 20001년 아르헨티나를 기술적 디폴트에 빠뜨린 것도 엘리엇이었다.


경제위기에 빠진 아르헨티나가 국제 채권단과 채무의 70%를 탕감하는 채무 구조조정 합의안을 만들었으나, 엘리엇은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액면가 13억3000만 달러 짜리 국채를 불과 4800만 달러에 매입한 뒤 미국 법원에 소송을 걸어 채무 조정안을 무력화시켰다. 엘리엇은 2004년 삼성물산과 경영권 분쟁을 벌여 약 380억원의 차익을 챙겨 나간 영국계 헤르메스 펀드와는 소위 ‘클래스’가 다르다는 평가다.


칼럼니스트인 윌리엄 페섹은 블룸버그 컬럼을 통해 한국에 이렇게 조언(?)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재벌을 상대하기에 너무 바쁘거나 어렵다고 느껴진다면 폴 싱어와 같은 시장 선동자에게 그 역할을 대신토록 하는 것도 방법이다.” 엘리엇이 재벌개혁의 선봉에 섰으니 정권이 못한다면 해외 자본에 맡기라는 것이다.


이처럼 엘리엇이 재벌 개혁과 소액주주 이익 보호로 포장하고 있지만 진짜 민낯은 자신만의 이익을 추구하는 투기자본에 다름 아니라는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동시에 이런 엘리엇에게 공격의 빌미를 준 책임은 그동안 지배구조 개혁에 미진했던 정부 및 기업에 있다는 비난도 피하기 어렵다.


7월17일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을 위한 임시 주총을 놓고 벌이는 삼성과 엘리엇 간 표 대결은 향후 예고된 치열한 전쟁의 ‘서막’일 뿐이다. 재벌과 해외자본 간 이번 건곤일척의 승부는 ‘전면전’이자 ‘장기전’이 될 것 같다. 엘리엇은 임원 선임과 보유주식 매각 등을 요구하며 기존 전략대로 삼성을 미국 등 해외 법정으로 끌고 나가 본격적인 싸움을 벌일 것이다. 거기가 그들의 홈그라운드이기 때문이다.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의 캐스팅보트는 국민연금이 쥐고 있다. 국민연금은 삼성물산 지분 10.15%를 보유한 1대 주주다. 국민연금이 합병에 ‘찬성’한다면 삼성이, ‘반대’나 ‘기권’을 한다면 엘리엇이 이길 공산이 크다. 국민연금은 각계 추천을 받은 외부 전문가들로 구성된 의결권행사전문위원회를 열어 찬반 여부를 결정할 전망이다.


재벌과 해외자본의 싸움인 만큼 국익 관점에서 판단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이참에 해외 자본의 힘을 빌려서라도 재벌의 지배구조를 개혁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원하든, 원하지 않든 의결권행사위원회의 이번 결정이 한국의 산업과 자본시장 역사에 중요한 이정표를 세우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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