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통신위원회가 1일부터 KBS와 방송문화진흥회(MBC 대주주) 이사 공모에 착수했다. KBS 이사회는 여당 7명, 야당 4명 등 11명의 이사를 국회에서 추천받아 방통위(방송통신위원회)가 다시 추천하면 대통령이 임명한다. 추천받은 사람을 다시 추천하는 이상한 방식이다. 방문진(방송문화진흥회)은 여당에서 6명, 야당에서 3명을 추천받아 방통위가 임명하게 된다. 이렇게 뽑힌 KBS 이사와 방문진 이사들이 각각 KBS와 MBC의 사장을 선임한다.
KBS 이사진과 MBC 대주주인 방문진 이사진을 국회의원들이 독점 추천하고 행정부에서 임명한다는 것은 방송의 정치적 중립을 위협하는 관행이다. 특히 여당 추천이사가 압도적 다수인 것은 공영방송을 집권당의 전리품으로 여기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집권여당은 언론의 가장 큰 감시대상 중 하나인데 감시받는 기관에서 방송사 이사를 추천하고 임명한다는 게 이해되지 않는다. 특히 MBC는 정부나 국회의 지분이 단 한 주도 없는 소유구조이다. 출자도 책임도 없이 이사 추천권만 있는 비정상적인 구조이다.
1987년 민주항쟁 이후 1988년 방문진법이 제정될 당시엔 국회의장이 여야 균형을 맞춰 4명을 추천하고, 독립기구인 방송위원회가 6명을 추천하도록 되어 있었다. 하지만 2000년 개정 이후 국회 추천 규정은 법에서 사라졌다. ‘여당 6명 야당 3명’의 법적 근거가 없어졌다는 얘기다. KBS 이사회도 방송법에서 이사의 숫자를 11명으로 규정하고 있을 뿐 어디에도 여야가 추천하라고 하지 않는다.
오히려 2000년 법 개정에서 국회의장 추천을 삭제한 법 취지는 정치적 중립을 위해 방송사 이사 선임에 국회가 개입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국민여론이 반영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그동안 법적 근거도 없이 정치권이 공영방송의 이사를 나눠 먹었고, 그 결과 KBS와 MBC의 공영성과 공정성이 심각한 위협을 받게 됐다.
잘못된 관행이라면 이제라도 정상화해야 한다. 공영방송의 주인은 국민이다. 국회가 아니라 국민이 이사를 뽑아야 한다. 국민이 공영방송 이사 후보를 검증할 최소한의 장치가 있어야 한다. 식민사관에 매몰된 친일학자나, 특정지역을 비하하는 사이트의 글을 퍼 나르는 공영방송 이사는 곤란하지 않겠나.
공영방송 이사는 최소한의 자격 요건을 갖춰야 한다. 방송과 언론에서 상당기간 활동한 언론인과 방송인, 방송 관련 학자, 언론시민사회 임원 등으로 자격 요건을 둘 필요가 있다. 공영방송의 위기를 극복할 실력과 양식을 갖춘 인물이 이사가 되어야 시청자들도 수긍할 것이다. KBS와 MBC의 직원들이 방송의 전문가인 만큼 이들이 존경할만할 인물을 뽑을 수 있도록 제도적 통로도 필요하다. 방송을 잘 보지도 않는다는 사람이 정치권의 낙점으로 어느 날 갑자기 이사가 되는 일이 일반회사라면 상상할 수나 있겠는가.
지난달 24일 20여개 시민사회단체가 모여 ‘공영방송 이사 추천위원회’를 발족했다고 한다. 다소 늦은 감이 있지만 공영방송의 정상화를 이룰 훌륭한 이사 후보를 추천해 주길 바란다. 여야가 밀실에서 이사를 뽑는 관행은 결국 공영방송의 파국을 초래했다. 국회가 굳이 이번에도 이사를 추천하려 한다면 여야동수로 추천하되, 나머지 이사진만이라도 국민의 추천을 받아들이기 바란다.
독립기관인 방송위원회와 달리 사실상 행정기관인 방송통신위원회가 이사를 추천, 임명하는 것도 입법적 미비로 보인다. 국회는 법에 없는 여야 추천권을 욕심낼 게 아니라 정치권력으로부터 독립된 방송 언론 분야의 전문가와 시민사회가 공영방송 이사를 추천하고 검증할 수 있도록 관련 법 개정을 논의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