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가 지난 4월 극우성향 인터넷 커뮤니티인 ‘일간베스트저장소’(일베) 회원 출신의 수습기자를 임용하면서 파문이 일었다. 한겨레는 최근 수습기자 채용서 ‘2주간 현장 실습’ 평가제를 도입한다고 밝히면서 내부에서조차 ‘반인권적 제도’라는 비판이 일고 있다.
언론사 인력 충원의 근간이 되고 있는 수습기자 채용을 둘러싼 논란이 또다시 불거지고 있다. 서류전형, 종합 교양 및 논술, 실무평가, 면접 등으로 이뤄진 채용 방식을 통해 언론사가 원하는 인재를 선발할 수 있느냐의 지적이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기 때문이다.
서울신문(1963년)에 이어 한국일보(1964년)가 수습공채를 통해 기자를 선발하면서 대부분 언론사들이 지금과 같은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이전엔 글 꽤나 쓰는 사람들을 특채하는 방식으로 인력 충원이 이뤄졌다. 하지만 ‘외압’이 들어오고 기자 선발에 공정성을 기하기 어려워지면서 당시로써 혁신적인 수습공채 제도가 도입됐다.
하지만 반세기 넘도록 제도가 유지되면서 저널리즘 발전을 저해한다는 지적까지 나오고 있다.
1980년대 중반 민주화 열풍을 타고 많은 언론사들이 생겨났지만 언론사 문턱은 더욱 높아졌다. 경쟁률이 치솟다보니 인성 등 종합적인 면을 검증하기 더욱 어려워졌고 자연스럽게 명문대 출신 중심의 채용이 이뤄지게 됐다.
문제는 우수한 입사 성적이 ‘자질 있는 저널리스트’를 보장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반면 한 번 입사하면 정년까지 보장되다 보니 ‘기수 문화’와 같은 병폐가 생겼다.
한 방송사 출신 언론사 임원은 “공채 출신 중심의 기수 문화는 상명하복식 문화를 만들어 내 능력보다는 연공서열이 우선되는 폐해를 낳았다”며 “언론도 디지털 시대에 맞게 채용방식을 바꿔야 한다”고 지적했다.
현행 종합교양, 논술, 실무평가, 면접 등으로 구성된 시험 방식을 통한 채용이 최선의 방법일까.
여전히 논란이 분분하면서도 제도의 틀이 유지되는 것은 대안 찾기가 그만큼 어렵다는 방증이다. 그럼에도 수습공채와 별개로 경력공채 확대, 인턴기자제 도입 등 다양한 채용방식이 확대되거나 도입돼야 한다는 게 언론 관계자들의 중론이다.
내부에 신선한 경쟁 바람을 불어 넣기 위해 외부 경력공채를 활성화하는 한편 자사 출신 인턴 기자들에 대한 채용 쿼터를 넓혀야 한다는 것.
이를 위해 경력 5~10년차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는 경력기자 공채에 대한 문호를 확대하고 채용을 전제로 한 인턴기자제를 활성화해야 한다고 언론계 관계자들은 내다봤다. 실제 조선일보는 지난해부터 자사 출신 인턴기자와 그렇지 않은 지원자를 따로 경쟁을 통해 뽑는 ‘투트랙’ 방식을 채택했다.
언론인 출신인 김정섭 성신여대 교수는 “인턴 제도를 활성화하되 선발 과정에서 불거질 수 있는 공정성 시비로부터 자유롭기 위해 선발 기준 등을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고 밝혔다.
또 수습공채 필기시험 과목에 대한 분별력을 높여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과거 필수과목이었던 영어시험이 토익 등 공인영어시험으로 대체했듯이 종합교양도 유사한 방식으로 바꾸고 대신 지원자의 논리나 생각 등을 엿볼 수 있는 논술 시험이 강화돼야 한다는 것.
1주일 이상 현장실습 평가의 경우 언론지망생에게 또 다른 ‘족쇄’가 될 수 있기 때문에 단기간에 실시되는 게 바람직하다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국민일보, YTN 역시 유사 제도를 운영했다 폐지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언론사 지망생인 김모씨는 “언론사에 입사한 후 적성에 맞지 않아 도중에 그만두는 사례가 많다”며 “동아·조선처럼 방학 동안 기자 경험을 쌓는 기회를 주고 그 중 잘하는 인턴을 채용하는 방식이 좋은 것 같다”고 말했다.
더 큰 문제는 뽑고 난 이후 수습 교육 등 사후관리다. 수습기자제를 ‘교육’이 빠진 제도라고 일컫는데 체계적인 교육 대신 선배가 지시를 내리는 방식으로 이뤄지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부터 내려온 도제식 교육이라고 하지만 사실상 지시와 복종만 존재하다 보니 수습기자들의 불만이 클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 직면하는 것은 언론사 내 인력 부족 탓이 가장 크다. 수습기자를 가르칠 교육 전담 기자가 없고, 지면 메우기도 벅찬 현업부서에 맡겨지다 보니 체계적인 수습교육은 언감생심이다.
수습 기간 동안 이뤄지는 ‘살인적인 업무’강도 역시 또 다른 논란거리다. 실제 지난 5월말 수습을 마친 경향신문 기자들은 노보를 통해 부실한 부서교육과 인권 및 노동권 등의 문제를 제기하기도 했다. 이같은 문제는 한 언론사에만 국한되는 사안이 아니다.
한 경제지 2년차 기자는 “6개월 수습교육 기간 동안 체계적인 교육시스템이 미비했던 게 가장 아쉽다”며 “기사쓰기를 비롯해 취재원을 다루는 방법 등을 배우고 싶었지만 개개인에게 맡겨지다 보니 모든 것을 직접 몸으로 부딪쳐야 하는 상황이 많았다”고 말했다.
미국의 경우 기자들은 대학에서 저널리즘을 전공하거나 저널리즘 스쿨 등에서 교육을 받은 뒤 지역의 소규모 언론사부터 경력을 쌓으면서 중앙 무대로 옮겨가는 게 일반적이다. 일본은 우리와 유사한 채용과정이지만 대부분 신입기자들은 4~5년 지방 근무를 해야 하고, 이 중 뛰어난 기자만 도쿄 본사에서 근무할 수 있다.
이규연 JTBC 탐사기획국장은 “수습기간 살인적인 노동 강도에 대해선 반대하지만 그럼에도 수습교육이 필요한 이유는 회사나 직업에 대한 적성이 맞는지 검증 기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라며 “다만 수습기간 동안 기초적인 글쓰기 교육을 시키는데 이런 교육은 학교나 외부기관 등에서 이뤄지는 게 바람직하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