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파견 특사의 미국 사랑

[글로벌 리포트 | 중국] 박일근 한국일보 베이징특파원

“박근혜 대통령이 처음으로 특사단을 보낸 나라는 미국이 아니라 중국이다.”(2014년 10월)
“우리(한국)에겐 역시 중국보다 미국이다.”(2015년 7월)
첫 문장은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한 중국 매체와 인터뷰 중 한 말이고, 두 번째 문장은 김 대표가 최근 미국에서 한 이야기다.


대부분의 중국인들에게 김 대표는 2013년 1월 박 대통령이 보낸 특사단장으로 기억되고 있다. 실제로 박 대통령은 당선인 자격으로 첫 특사단을 파견하며 미국이 아닌 중국을 택했다. 그리고 당시 김무성 새누리당 중앙선거대책위원회 총괄선대본부장과 심윤조 의원, 조원진 의원, 한석희 연세대 국제대학원 교수(현 상하이 총영사) 등 4명으로 특사단을 구성했다. 특사단은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을 만나 박 대통령의 친서까지 전달했다. 중국 언론들도 한국의 새 대통령이 미국이 아닌 중국에 첫 특사단을 파견한 데 큰 의미를 부여했다.


이랬던 김 대표가 최근 미국에선 “중국보단 미국”이란 속내를 그대로 드러냈다. 개인적 소신이 외교적 파장을 깊이 고려하지 않은 채 실수로 튀어나온 것인지, 친미 우익 세력들을 결집하기 위한 정치인의 의도된 언사였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그러나 김 대표의 말로 인해 이제 한국은 중국이 배신감을 느낀다고 해도 할 말이 없게 됐다. 겉으로는 “미국보다 중국에 더 먼저 왔잖아, 우리 마음 알지?”라고 강조했던 한국의 집권당 대표가 속으론 “중국보다 미국이야”라고 생각하고 있었다는 것을 중국은 알게 됐다. 정치인의 말이야 수시로 바뀌는 게 다반사라 하더라도 한국에 대한 중국인의 신뢰도는 큰 상처를 입었다. 국익보단 개인의 정치적 이익을 더 우선시한 것이 아니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이번 기회에 우리 사회도 ‘중국보단 미국’이란 명제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지난 70년은 분명 중국보다 미국이었다. 우리가 광복을 맞고 독립을 하며 대한민국을 지킬 수 있었던 것은 미국 덕이 컸다. 사실 가장 외교적이어야 할 윤병세 외교부 장관조차 지난 2013년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우리의 외교 상대국 우선 순위를 ‘미국-중국-일본·러시아’로 밝혀 논란이 된 바 있다. 최근 한 여론조사에서도 미국이 더 중요하다는 응답은 50%를 넘은 반면 중국이 더 중요하다는 답변은 40%에 못 미쳤다.


그러나 앞으로도 계속 ‘중국보다 미국’일 지에 대해서는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우리 수출의 25%가 중국이 된 지는 오래 됐다. 한국 경제는 이미 ‘미국보다 중국’인 게 현실이다.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으로 중국인 관광객이 줄자 당장 여행업계는 흔들리고 있다. 우리 증시조차 예전에는 새벽에 끝나는 미국 뉴욕 증시의 영향이 컸지만 지금은 오히려 중국 상하이 증시에 휘둘릴 때가 많다. 그렇게 세상은 변했다.


가장 위험한 것은 세계의 질서가 재편되는 과도기에 성급하게 어느 한 쪽으로 줄을 서는 위험한 선택을 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지금은 미국과 중국이 전 세계에서 패권을 다투는 시대다. 역사에 영원한 제국은 없었다. 재정적자 폭이 날로 늘어나고 달러화를 찍어내기 바쁜 미국의 패권이 언제까지 이어질 지는 알 수 없다. 물론 치명적인 여러 문제들을 갖고 있는 중국도 언젠가 위기를 맞을 수 있다. 그러나 인구 13억6000여만명의 중국은 그 동안 성장해 왔고 앞으로도 이러한 관성이 이어질 공산이 커 보인다.


이런 때 우리로선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균형을 지키며 우리의 몸값을 한껏 올리는 게 최선이다. 중국을 견제해야 하는 미국도, 미국의 봉쇄를 뚫어야만 하는 중국도 한국은 포기할 수 없는 나라다. 명청 교체기와 단순 비교하는 것은 맞지 않겠지만 우리에게 신중한 태도가 요구되는 시기란 점은 분명하다. 미국의 맹방인 영국도 미국을 등진 채 중국이 주도하는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의 창립 회원국으로 손을 드는 세상이다. 사안에 따라서 때로는 ‘미국보다 중국’이, 어떤 경우에는 ‘중국보다 미국’이 우리의 국익에 더 도움이 될 수 있다. 가능한 한 속을 감춰야 할 때 속을 드러내는 것은 어리석고 위험하다. 큰 흐름을 보고 유연한 사고를 해야 하는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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