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는 ‘꿈’을 파는 기업이다. 롯데가 사업 초창기인 1950년대 내놨던 대나무 파이프가 달린 풍선껌은 변변한 장난감이 없던 시절 아이들에게 선망의 대상이었다. 씹은 껌을 대나무 파이프에 붙여 불면 풍선처럼 부풀어 오르는 풍선껌을 사기 위해 아이들은 엄마 손을 끌고 가게에 줄을 섰다.
롯데는 1967년 한국 껌 시장에 후발주자로 들어왔지만 “입속의 연인, 롯데껌~”이란 감성적인 광고 카피를 히트시키며 시장을 장악했다. 껌을 팔아 번 돈으로 지은 초대형 복합레저·엔터테인먼트 시설 롯데월드는 아이들에겐 꿈을, 젊은이들에겐 낭만을, 가족들에겐 추억을 팔고 있다.
이렇게 꿈을 팔아 연매출 83조원을 올리는 재계 5위 거대그룹 롯데가 낯 뜨거운 ‘막장 드라마’를 연출하고 있다. 재계 뿐 아니라 세간을 떠들썩하게 하고 있는 ‘형제의 난’ 때문이다. 이를 통해 드러난 롯데의 민낯은 ’구멍가게‘라는 비난을 받기에 충분하다.
임원을 모아 놓고 법적 절차를 무시한 채 손가락만으로 해임을 시도하는 모습은 소위 ‘손가락 경영’으로 대변되는 황제·밀실경영의 부정적 단면을 그대로 드러냈다.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과 장남인 신동주 전 일본롯데 부회장의 유창한(?) 일본어 실력과 일본 광윤사를 정점으로 한 복잡한 지배구조는 롯데의 ‘국적 논란’까지 낳았다.
롯데의 불투명한 지분구조는 대기업 전체 지배구조에 대한 불신감을 높였다는 평가다. 신 총괄회장의 롯데그룹에 대한 지분율은 0.05%, 친인척 지분을 모두 합쳐봐야 2.41%에 불과하다. 하지만 416개의 순환출자를 비롯한 계열사 출자를 통해 그룹을 지배하고 있다. 이런 구조 속에서 나머지 대부분 지분을 구성하는 소액주주들의 이해나 이익은 실종되고 만다.
미미한 소유지분으로 복잡한 지배구조를 통해 그룹을 지배하는 것은 거의 모든 재벌들에 예외가 없다. 롯데가 유통이나 레저, 호텔, 식품 등 소비재를 주력으로 하는 만큼 이번 롯데 사태에 따른 기업 이미지 실추는 매출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게 뻔하다. 이미 롯데그룹 상장사 주가는 수직 낙하했다. 이로 인한 피해는 롯데 계열사 주주와 직원, 협력업체 종업원들이 고스란히 떠안게 될 것이다.
한술 더 뜨는 것은 정치권이다. 정치권은 롯데 사태를 계기로 재벌을 손보겠다고 공언하고 있다. 정치권 일각에선 “신규 순환출자는 물론 기존 순환출자까지 금지하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일부 정치인들은 “세무조사를 철저히 해서 롯데에 세금 탈루가 있었는지 여부를 분명히 가려야 한다”거나 “올해 말로 만료되는 롯데의 면세점 재허가를 불허해야 한다“는 엄포성 주장도 하고 있다. 검찰과 국세청 등 사정당국이 동원돼 전방위 압박을 가하는 단골 레퍼토리도 어김없이 반복되고 있다.
포퓰리즘이란 독버섯은 감정적인 여론을 먹고 자란다. 롯데 사태가 국민의 관심을 끌자 정치권은 여지없이 포퓰리즘 정책 카드를 우후죽순처럼 꺼내들고 나섰다. 정치권의 이런 움직임에는 내년 4월 총선을 앞두고 롯데 사태를 정략적으로 활용하려는 대중 인기영합주의가 깔려 있다.
롯데 사태가 어떻게 봉합되든 이번 롯데 사태를 기업의 후진적인 지배 구조를 개선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하지만 포퓰리즘에 기반 한 과잉 규제나 전방위 압박은 경계해야 한다. 기업 경영을 손가락으로 하는 게 아닌 것처럼 정치는 주먹으로 윽박질러서 될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기본적으로 기업에 관한 문제는 주주나 이사회가 상법 등에 보장된 권리를 행사해 푸는 게 맞다. 기업의 효율적 행동 원칙과 투자자들의 의사결정 원리를 기반으로 한 통제를 통해 자연스럽게 지배구조가 개선될 수 있도록 룰(rule)을 만드는 게 정부와 정치권의 일이다. 정치권이 흥분해 기업을 향해 주먹을 휘두를 일이 아니다. 정치권도 꿈 깨는 것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