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통신심의위원회(방통심의위)가 KBS 9시뉴스에 중징계를 내렸다. KBS가 지난 6월24일 보도한 ‘이승만 정부가 한국전쟁 발발 직후 일본에 망명을 신청했었다’는 뉴스가 공정성과 객관성을 위반했다며 ‘주의’ 조치를 내린 것이다. KBS는 일본 정부의 문서와 미국의 문건을 확인해 보도했지만 날짜가 확정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법정제재를 받은 것이다.
논란이 되는 보도 사안은 언론중재위원회와 법원에서 치열한 논쟁과 사실 확인, 법리분석이 따르도록 되어 있다. 방송사 인허가에 관련된 제재는 언론중재위와 사법부에서 보도에 문제가 있었다는 확정 판결이 나온 뒤에 해도 늦지 않다. 하지만 방통심의위는 ‘방송심의소위’와 ‘전체회의’를 통해 발 빠르게 징계를 결정했다. 뉴스의 공정성은 쇼나 드라마 프로그램의 외설성 여부처럼 쉽게 판단할 문제가 아니다. KBS 뉴스가 ‘공정성’과 ‘객관성’을 훼손했다는 방통심의위의 심의가 ‘공정성’과 ‘객관성’을 유지했는지는 무엇으로 증명할 것인가.
실제로 최근 방통심의위의 징계가 방송사로부터 행정소송을 당해 패소하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특히 천안함의 의문을 방송한 KBS ‘추적 60분’과 축산정책의 문제점을 지적한 CBS ‘김미화의 여러분’은 대법원의 확정판결을 받고 방심위 처분이 취소됐다. 대법판결까지 KBS는 4년, CBS는 2년4개월이 걸렸다. 방송제작진은 대법까지 가는 재판으로 소송에 시달려야 했지만 패소한 방통심의위는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았다고 한다.
방통심의위가 징계를 내린 뒤 행정소송을 당하는 방송은 대부분 정부 여권과 대통령을 불편하게 하는 내용이라는 분석이다. 결국 방통심의위가 청와대를 의식해 정치심의를 하고 있다는 얘기다.
방통심의위는 방송 프로그램에 자의적 징계를 남발한 데 이어 일반인들의 인터넷 의사표현도 통제하려 하고 있다. 피해 당사자의 신고 없이도 방심위가 직권으로 인터넷 게시글이 명예훼손에 해당하는지 심의하고 관련 게시물을 차단, 삭제할 수 있도록 심의규정을 바꾸려고 하는 것이다. 명예가 훼손됐는지 여부를 피해 당사자가 아니라 방심위가 판단하겠다니 방심위는 당사자의 생각까지도 읽을 수 있는 신이라도 되는 것인가. 명예훼손에 대한 사법부 판결이 내려지면 행정기관인 방심위는 이를 집행하면 될 일이다. 3권 분립의 헌법체계를 흔드는 방심위의 오만과 월권에 대해 수백 명의 법률가들이 강력 비판하는 실명 성명을 내놓았다.
UN 등 국제기구에선 수년 전부터 방통심의위의 인터넷 심의가 표현의 자유를 위협한다며 중단해 줄 것을 요구해 오고 있다. 방통심의위가 대한민국의 국격을 떨어뜨리고 있는 것이다.
방통심의위는 여당 추천 위원 6명, 야당 추천 위원 3명으로 구성되어 있다. 근본적으로 여당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구조이다. 이 같은 조직에서 방송, 통신, 인터넷을 심의하는 것은 언론의 자유, 표현의 자유라는 헌법적 가치를 흔들 수 있다. 심의위원을 정치권에서 추천한다는 자체도 이해할 수 없지만 여당이 압도적 다수를 추천한다는 것은 방송심의조차 정권의 전리품으로 보는 제도라고 할 수 있다. 집권당이야말로 언론과 시민의 가장 큰 감시대상이지 않은가.
굳이 정치권에서 선출하고 싶다면 여야 동수로 6명 정도를 추천하고, 나머지 3명은 기자협회, PD협회 등 현업인 단체에서 존경할만한 방송인 언론인들을 추천하도록 해야 최소한의 공정성과 전문성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방통심의위는 정부 간섭을 배제하도록 심의위원 구성을 바꾸고 방송과 인터넷 심의를 자율에 맡겨야 한다. 공정성과 객관성을 의심받는 건 방송통신심의위원회 그 자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