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혁신, 진화하거나 시작하거나

조직개편·통합CMS 개발 나서
후발 언론 다양한 콘텐츠 실험

미디어 환경이 변화하고 경쟁이 심화되면서 언론사들이 혁신을 통한 생존을 모색하고 있다. 특히 2013년과 2014년 워싱턴포스트와 뉴욕타임스가 종이 신문 중심에서 디지털 중심으로 진화를 시도하면서 많은 국내 언론사들이 위기의식을 느끼고 ‘디지털 퍼스트’ ‘모바일 퍼스트’ 혁신을 꾀하는 중이다.


지난해와 올해 언론사 대표 신년사에서의 핵심 키워드는 단연 디지털·모바일 혁신이었다. 대표들은 디지털 혁명 속에서 어떤 방식으로 혁신을 진행해야 하는지, 콘텐츠 공급자인 언론사가 독자들에게 어떤 뉴스를 공급해야 하는지 고민하는 모습을 보였다.


지난 1일에는 홍선근 머니투데이 회장이 직원들에게 보낸 메일에서 “미디어 환경이 급변하는데 어떻게 또 다른 새로운 길을 가야 할지, 모바일 전환기에 너도 나도 변화와 혁신을 외치고 있는데 우리 미디어는 제대로 하고 있는지 걱정된다”고 밝히기도 했다.


현재 대부분의 언론사들은 나름대로 다양한 디지털·모바일 퍼스트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뉴스룸을 개혁하고, 멀티미디어 뉴스를 생산하기 위해 통합CMS를 구축하는가 하면 인터랙티브 뉴스, 카드뉴스 등 온라인 전용 콘텐츠를 생산하고 좀 더 많은 독자들을 만나기 위해 다양한 플랫폼에 뛰어들고 있다. 이 중에서도 선도적으로 디지털·모바일 혁신 작업을 진행했던 언론사들은 또 다른 스텝을 밟아 나가며 새 활로를 모색하는 중이다. 이들은 준비단계였던 뉴스룸 개혁을 실행하고, 통합CMS 개발을 통해 작업을 효율화하는 한편 질 높은 온라인 콘텐츠를 생산해 무너지는 온라인 저널리즘을 강화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혁신 작업이 긍정적인 결과만을 도출하는 것은 아니다. 혁신 작업이 지면 중심 제작에 치우치면서 기존 관행들과 마찰을 빚는 것은 물론 기술적인 측면에서도 원활한 도입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업무량 증가에 따른 일선 기자들의 불만이 쏟아져 나오고 수익 창출 방안이 보이지 않는다는 지적도 끊이지 않고 있다.


그러나 확실한 대안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인터넷 혁명과 모바일 기술의 출현, 소셜 미디어의 발달 등 최근의 기술 진보는 많은 언론사들을 혁신의 흐름으로 이끌게 한다. 때문에 디지털·모바일 퍼스트 실천 초기 단계에 있는 언론사들은 앞서 나가는 언론사들의 흐름을 예의주시하며 새로운 흐름을 이끌기 위해 준비하고 있다.



“제대로 하고 있나” 의문 들지만 가야만 하는 디지털 혁신


경향·중앙·한국·한겨레 등 디지털 전략 2단계 착수
전문인력 채용 등 투자 인색, 지면중심 제작 관행 그대로


수익모델 창출 과제 여전이달 중순 진행될 한겨레 ‘혁신 3.0’ 2단계안은 본격적인 융합 편집국 구축을 골자로 하고 있다. 구체적으로는 각 부를 해체하고 팀제로 개편해 부장이 아닌 에디터 중심으로 조직을 개편하고, 에디터들이 온·오프라인 콘텐츠의 통합적 기획과 생산을 맡는 소편집장이 된다. 또 오전 9시 디지털 회의를 새롭게 마련하는 등 디지털 편집회의를 강화하는 데 방점을 맞췄다. 이와 더불어 통합CMS도 도입해 현장 기자가 직접 멀티미디어 콘텐츠 제작이 가능하도록 했다. 이봉현 한겨레 미디어전략부국장은 “6월 말 초안을 만든 이후 편집위원 워크샵, 편집국장 간담회, 편집국 설명회를 거쳐 이달 중순 예정된 임원회의에서 2단계안을 확정할 예정”이라며 “지난해에는 디지털·모바일 퍼스트로 가기 위한 준비단계로 디지털 인력을 보강하고 새로운 콘텐츠를 개발했다면 이번 2단계는 CMS 도입을 비롯해 생산과 조직 체계를 전반적으로 손질하는 것이 핵심”이라고 말했다.


온라인 콘텐츠 강화에 주력했던 한국일보도 통합CMS를 연내 도입할 예정이다. 그동안 특정 부서가 온라인 콘텐츠를 개발했다면 이제는 편집국 전체로 콘텐츠 생산을 확대하기 위해서다. 이희정 한국일보 디지털추진단장은 “새로 도입할 CMS에서는 실시간으로 인기 기사 순위가 뜨기 때문에 기자들이 공급자 마인드에서 탈피해 수용자 입장에서 기사를 쓸 수 있다”며 “CMS 도입을 시작으로 신문 중심으로 굳어진 조직 문화를 바꾸는 시도도 할 것”이라고 말했다.


디지털 부문에서 두드러진 활약을 보여 왔던 경향신문은 7월 중순 박래용 편집국장이 “디지털 퍼스트를 더 강화하겠다. 이제까지 미뤄왔던 것들을 하나라도 실천하자”는 주문에 따라 지난달 14일 웹페이지인 ‘향이네’를 출범하고 SNS 등 플랫폼을 강화하고 있다. 또 디지털뉴스팀이 올리는 연합뉴스발 기사를 대폭 줄이고 대부분의 온라인 기사를 편집국 안에서 생산하는 시스템으로 전환했다. 김종목 경향신문 모바일팀장은 “콘텐츠 신뢰도를 높이기 위해 현장기자가 사실관계를 확인하고 온라인에 기사를 올리고 있다”며 “이외에도 취재부서에서 깊이 보기, 정리뉴스 등 온라인 콘텐츠를 생산하고 있다. 온라인 저널리즘이 무너지는 현 상황에서 질 높은 콘텐츠 생산은 중요한 혁신 스텝”이라고 강조했다.


저널리즘이 중요하다는 생각은 중앙일보도 공유하고 있다. 지난달 6일 기자협회 주최로 열린 편집·보도국장 좌담회에서 최훈 중앙일보 편집디지털국장은 “종이신문이 가진 저널리즘의 원칙을 살리면서 디지털 혁신을 해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오는 22일을 맞아 발표 예정인 중앙일보의 ‘혁신보고서’에도 이 같은 내용이 담길 것으로 예상된다. 혁신보고서에는 콘텐츠의 차별화와 함께 기획력 강화, 맞춤형 기사 강화 등 질 높은 콘텐츠를 생산해야 한다는 주문이 담길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혁신 작업이 긍정적인 결과만을 도출하는 것은 아니다. 혁신 작업이 지면 중심의 기존 뉴스룸 문화나 기술과 충돌하는 일이 잦기 때문이다. 지난해 9월 통합CMS를 구축한 파이낸셜뉴스는 올해 6월에야 기자들이 비교적 쓸 수 있는 수준의 CMS를 오픈했다. 임정효 파이낸셜뉴스 편집국장은 “기존의 조판 시스템과 CMS가 충돌하는 지점이 많아 지속적으로 수정 작업을 해왔다”면서 “문제는 기자들이 이를 잘 활용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7~8월 부서별로 1명씩, 총 11명을 선발해 멀티미디어 기사 작성 교육을 시켰고 현재 실험 중이지만 아직도 지면 중심 체제에서 벗어나는 것은 어려운 과제”라고 말했다.


업무량 증가에 따른 일선 기자들의 불만도 쏟아져 나오고 있다. 한 종합일간지 기자는 “각 부서별로 온라인 기사 출고수를 집계해 부서원 수와 비교한다”며 “실질적인 조직개편이나 인력 충원 없이 현장기자들만 쪼는 상황에서는 제대로 된 콘텐츠가 나올 수 없다”고 지적했다. 한겨레 노조도 9일자 노보에서 “회사는 디지털 퍼스트를 실행하겠다면서 정작 디지털 전문 인력의 채용 등 투자에는 인색하다”고 비판했다.


디지털·모바일 퍼스트를 통한 수익 창출 방안이 보이지 않는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는 최초에 디지털 혁신을 추진했던 워싱턴포스트와 뉴욕타임스도 예외가 아니다. 지성욱 서던일리노이대 미디어학과 교수는 한국언론진흥재단이 지난달 28일 발간한 ‘워싱턴포스트, 뉴욕타임스 혁신 그 이후’ 보고서에서 “두 회사의 혁신은 단기적으로 성과를 거두고 있지만 두 기업 모두 디지털 수익의 증가가 종이신문 수익의 감소 부분을 상쇄하지 못하는 상황에 직면해 있다”고 말했다. 엄호동 파이낸셜뉴스 온라인편집부국장도 “디지털·모바일 퍼스트라고 해서 앞이 보이진 않는 것 같다”며 “종이신문을 대체할 수 있는 수익모델이 나오지 않기 때문에 디지털 혁신을 준비하는 것이지, 아직 확실한 대안은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확실한 대안이 없다고 하더라도 인터넷 혁명을 비롯한 최근의 기술 진보는 많은 언론사들을 혁신의 흐름으로 이끌게 한다. 때문에 디지털·모바일 퍼스트를 준비하기 시작한 언론사들은 앞서 나가는 언론사들의 흐름을 예의주시하며 새로운 흐름을 이끌기 위해 준비하고 있다.


지난달 1일 창간 55주년 기념으로 디지털 뉴스 ‘썸’을 런칭한 서울경제는 편집국 기자 5명과 인턴 9명으로 디지털미디어부를 꾸려 디지털 전용 콘텐츠 생산을 시작했다. SNS 등을 통한 새로운 플랫폼을 열고 채널에 맞는 콘텐츠를 제작하는 부서로 탈바꿈한 것이다. 서은영 서울경제 기자는 “후발주자이기 때문에 국내외 여러 매체를 살펴보고 좋은 사례들을 취합해 전략을 짰다”며 “앞으로 많은 실험을 통해 새로운 콘텐츠 유형을 선도하는 역할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세계일보도 올해 3월부터 본격적으로 디지털퍼스트 준비를 진행했다. 온라인에 무게 중심을 두기 위해 세계닷컴과의 통합을 추진했고 지난달 31일 작업을 완료해 9일 합병승인 이사회를 통해 완전히 통합할 예정이다. 또 CMS 구축은 물론 디지털미디어국을 신설해 편집국장과 동급인 디지털미디어국장을 새로 임명했고 그 아래 소셜미디어부를 비롯한 3개 부서를 배치했다. 신규택 세계일보 기획조정실 기획팀장은 “24시간 체제로 뉴스를 내보내는 시스템을 구축하려 한다”며 “종이신문에는 기획기사나 심도 깊은 취재 기사 및 오피니언을, 온라인에는 속보나 모바일 전용 콘텐츠를 강화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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