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범죄와 관련된 기사는 매일 오전 열리는 편집국 회의에서 가장 채택되기 쉬운 주제다. 그동안 성범죄 처벌에 관대했다는 전국민적 반성은 현재진행형이다. ‘조회수’로 이어지는 공분(公憤)을 확보하기도 수월하다. 기사의 방향은 미리 정해져 있다. 형량이 상대적으로 낮아 보이면 법원을 비판하면 되고, 형량이 적당하다 판단되면 범죄자를 ‘죽일 놈’으로 만들면 된다. 앞의 경우에는 ‘솜방망이 판결’, 뒤에는 ‘인면수심 성범죄자’라는 제목이 달릴 것이다.
언론이 ‘조회수’를 먹고 살듯이 ‘표’를 먹고 사는 국회의원들의 인식구조도 크게 다르지 않다. 공분을 담아 법을 만든다. 특히 파렴치한 아동 강간범들의 이름이 언론에 오르내리던 2000년대 후반부터 성범죄 관련법의 형량은 ‘특례법’이라는 이름을 달고 높아져 왔다. 죄의 종류와 경중은 불문인 경우가 많았다. 입법자도 언론도 ‘반성의 세심함’에 대해서는 이야기하지 않았다. 이제 성폭행 범죄자는 어지간한 살인범보다 높은 형량을 받고 있다.
지난 2월 성범죄자 신상정보 등록과 관련된 기사발제가 편집회의를 통과하지 못한 것도 이런 분위기 때문이었다.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45조 1항은 유죄확정 판결을 받은 모든 성범죄자가 20년간 자신의 신상정보를 관할 경찰서에 등록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벌금형이 선고될 경미한 성추행범에게도 예외는 없었다. 20년 동안 매년 경찰서에 들러 전면과 좌우 사진을 찍고 와야 했다.
법정에 선 피고인들은 다른 처벌은 달게 받겠다면서 신상등록만 면하게 해달라고 아우성이었다. 그런 피고인들을 마주한 검사·판사도 난감하긴 마찬가지였다. 저녁 자리에서 만난 서울중앙지법의 한 판사는 “본래 형량보다 부가적으로 따라오는 처분이 더 강한 상황”이라고 하소연하기도 했다. 고심 끝에 아예 기소를 유예해 버리는 검사, 선고를 유예하는 판사도 있었다. 정도를 따지지 않는 부가처분 때문에 응당 받아야 할 죗값마저 선고할 수 없는 상황이 발생한 셈이다.
돌이켜 보면 2년 전 전자발찌 소급적용이 논란이 됐을 때도 비슷했다. 위헌논란으로 헌법재판소에서 2년 넘게 심리가 이뤄지면서 애초 소급적용 기간이었던 3년을 훌쩍 넘긴 청구 대상자들도 생겨났다. 3년 이상을 아무런 죄를 저지르지 않고 개과천선해 살고 있는 사람들도 죄다 법정에 불려 나와야 했다. 재판부는 그동안의 생활태도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재범의 위험성이 없는 대상자에 대한 전자발찌 소급적용 청구를 죄다 기각했다. 역시 기사에는 ‘솜방망이 처벌’이라는 비난성 댓글로 도배가 됐다. 당시 재판장은 기자에게 “고맙다”고 했지만 표정은 못내 씁쓸했다.
검찰과 법원은 매번 공분을 자아내는 성범죄가 발생할 때마다 또 어떤 특례법 조항이 신설될지 예의주시하고 있다. 대검의 한 간부검사는 “특히 성범죄 관련법은 논란이 될 때마다 여론에 따라 개정작업이 이뤄진다”며 “누더기도 이런 누더기법이 없다”고 했다.
편집회의에서 ‘기각’됐던 성범죄자 신상정보 등록규정은 결국 지난 7월 헌법불합치 결론이 났다. 헌법재판소는 애초 5년이었던 신상등록 기간이 10년으로, 다시 20년으로 늘어나는 과정에서 재범방지에 어떤 효과가 있는지 아무런 실증적 연구가 뒷받침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이에 따라 2016년 12월31일까지 신상등록 기간은 죄의 경중에 따라 세분화될 것이다. 과연 그때까지 대중의 분노를 담아내는 데만 급급했던 언론은 그 이면의 세심함에 대해서도 고민하게 될 것인가. 아직 딸 가진 선배들과 얼굴을 맞대고 이런 고민을 나누기는 여전히 어렵게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