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이월드 : 흔적

[스페셜리스트 | 문화] 심연희 KBS 기자

어느 날 라디오에서 흘러나온 글렌굴드의 골든베르그 변주곡은 한동안 잊고 있던 기억을 떠오르게 했다. 20여 년 전 우리 집엔 무려 100장이 넘는 클래식 전집이 한꺼번에 들어오는 ‘사건’이 있었다. 새롭게 일을 시작한 엄마 친구가 장기할부로 떠맡기면서 엉겁결에 들어온 것이다. 나는 교과서에 등장하는 웅장하고 화려한 교향곡보다는 독주에 끌렸고, 유독 글렌굴드의 피아노 음반에 손이 갔다. 피아노 소리 저 어디선가 흐느낌이 들려 귀신 소리인지 환청인지 싶고, 특히 밤에 혼자 들을 때면 살짝 무섭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던 음반, 이른바 ‘굴드표 허밍’ 때문에 더욱 인상 깊었다. 그리고 클래식 전집은 날 예술과 관객의 가교 역할을 하는 문화부 기자를 꿈꾸도록 이끌었다. 그래서 ‘짐만 될 뿐’이라는 타박에도, ‘애착이 아니라 집착’이라는 핀잔에도 버릴 수가 없었다. 오랜만에 전집을 담아둔 상자를 뒤져 글렌굴드를 꺼냈다. 먼지를 닦아내고 케이스를 열어 속지를 펼쳐보니 곳곳에 밑줄까지 그어져 있다. 무언가 애썼던, 반가운 흔적. 클래식 전집은 현재의 나까지 행복하게 해주는 ‘추억의 물건’으로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최근엔 모처럼 아이와 음악회에 갔다. 서울대 박종화 교수가 동요를 클래식으로 변주했다. “엄마가 섬 그늘에…” 속으로 가만히 따라 부르자 그 한 소절이 잠자던 기억을 소환한다. 일하는 엄마로서 고단하고 서러웠던 지난 7년으로. ‘섬 집 아기’는 보채는 아이를 가장 빨리 재울 수 있는 자장가 1순위였다. ‘엄마는 갈매기 소리에 설레 다 못 찬 굴 바구니 이고 모랫길을 뛰어온다’라는 구절을 부를 때면 가슴이 먹먹해지며 목이 메곤 했다. 어느덧 가슴팍까지 훌쩍 자라 공연장에 의젓하게 앉아 있는 아들의 손을 꼭 잡으며 ‘다 못 찬 바구니를 이고’ 동동거리던 그때를 떠올렸다. 그리고 당시 나의 흔적을 모두 담아 놨던 ‘싸이월드’를 오랜만에 찾아 봐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요즘 누가 싸이를 해?” 소통의 즐거움뿐 아니라 기록 창고로도 유용했지만 싸이월드는 인적이 뜸해지면서 오래 방치한 집처럼 멀어져 갔다. 잊어버린 비밀번호를 기억해 내느라 애먹어가며 몇 년 만에 접속해 보니, 그 시절 고민과 기쁨을 담은 글, 사진이 잔뜩 쌓여 있다. 그런데 싸이월드는 곧 일촌평과 방명록 등 일부 기능을 중단한다며 어서 ‘백업’을 받으라고 한다. 시대의 변화에 맞게 ‘환골탈태’를 한단다. 언젠가는 없어지리라 예상은 했지만 막상 닥치니 섭섭함을 넘어 깊은 상실감이 치밀어 올랐다. 비록 온라인이지만 왠지 이곳만은 영원하리라 믿고 싶었나 보다. 아이가 혼자 뒤집고, 처음 두발 딛고 일어선 날, 휘청휘청 걸어오던 날, 처음 ‘엄마’라 부르던 가슴 벅찬 순간. 그 반짝임들을 한데 모아두고 가끔 보물처럼 꺼내보며 늙어가고, 훗날 우리가 곁에 없어도 아이가 이 보물들을 보며 미소 짓고 추억하길 바랐던 건 욕심이었던가.


사실, 흐르는 세월 앞에 영원한 건 없다. 수많은 예술이 그토록 헤어짐과 상실, 그리고 그리움을 노래한 까닭이다. 마치 손에 쥔 모래처럼 날마다 무언가를 잃어버리는 듯 인생은 소멸을 반복하는 것 같지만 그렇다고 절대 아무것도 남지 않는 건 아니다. 아프지만 깨달음과 성찰을 통해 지혜를 얻고 성장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인간으로 설 수 있는 힘은 바로 간직하고픈 기억을 가슴에 담고 애틋하게 여길 수 있는데서 나오는 게 아닐까. 그저 추억이라고 부르기엔 조금 모자란 듯한, 고이 간직하고 싶은 흔적이 있다면 우리의 삶은 더욱 소중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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