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BC 뉴스의 경제 편집자인 로버트 페스턴(Robert Peston)이 지난 7일 ITV의 정치 편집자로 이직한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지난 몇 주간 호사가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리던 BBC와 ITV의 ‘셀러브리티(유명) 저널리스트 잡기’ 경쟁에서 후자가 이긴 셈이다.
페스턴은 영국 주택대출회사인 노던록의 파산을 비롯해 경제 분야에서 수많은 특종을 올리며 국내에도 잘 알려진 인물이다. 2009년에는 로얄 텔레비전 소사이어티가 주최한 저널리즘 시상식에서 ‘올해의 전문기자’상과 ‘올해의 텔레비전 저널리스트’상을 동시에 수상했다. BBC의 경제 뉴스가 세계적으로 신뢰도를 쌓는데 일등공신 역할을 해온 것이다.
그런 그의 갑작스런 이직 소식은 영국 방송가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스타 기자’의 이직은 비일비재한 일이지만, 이번 이직은 저녁 뉴스를 두고 치열하게 경쟁을 벌여온 공영방송사와 상업방송사 간에 이뤄졌다는 점에서 비상한 관심을 끌었다. BBC 경영진 입장에서는 하필 BBC 뉴스가 ITV 뉴스와의 경쟁에서 밀려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그가 떠나는 것이 야속할 뿐이다. 페스턴이 경제 편집인으로 출연해 온 ‘뉴스나이트’의 시청률은 지난해보다 3%가량 떨어졌다.
데일리 메일과 가디언 등 일간지들의 보도에 따르면 ITV는 페스턴에게 수십만 파운드의 연봉 인상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민이 내는 수신료로 운영되는 BBC로서는 꿈도 꾸기 힘든 액수다. 제임스 하딩(James Harding) BBC 뉴스 본부장이 6만 파운드까지 연봉을 올려줄 수 있다고 설득했지만 ITV의 제안처럼 매력적일리 없다.
일각에서는 페스턴이 단순히 돈 때문에 이직하지는 않았을 것이라며 이번 스캔들을 다른 시각에서 분석한다. 페스턴은 올해 초 공석이 된 BBC 뉴스의 정치 편집인 자리에 지원했지만 여성 진행자인 로라 쿠엔스버그(Laura Kuenssberg)에게 밀려난 바 있다. 이 탓에 페스턴이 BBC 경영진에게 반발심을 갖고 이직을 결심했을 가능성도 있다. 실제로 페스턴의 주변 지인들은 몇몇 일간지들에 최근 들어 페스턴이 BBC에서 저평가되고 있다고 불평한 사실을 언급했다.
10월 초부터 ITV가 페스턴과 접촉하고 있다는 소식이 연일 헤드라인을 장식하자, BBC의 경영진은 페스턴이 원하는 자리로 옮겨주겠다고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BBC의 대표적인 시사 프로그램인 ‘뉴스나이트’의 정치 편집인 직까지 제안했다는 게 후문이다.
급기야 가디언은 지난 2일 토니 홀(Tony Hall) BBC 사장까지 설득작업에 나선 사실을 보도했다.
BBC는 수신료를 주요 재원으로 하는 특성상 고액의 연봉 협상 과정을 공개하는 것을 금기시해왔다. 지난 해 경영진의 고액 퇴직금 문제로 곤욕을 치른 BBC에 이번 스캔들은 골칫거리가 되고 있다.
ITV가 마침내 지난 7일, 회사의 공식 트위터를 통해 페스턴의 입사를 공표하면서 페스턴의 이직은 기정사실이 됐다. 이후 그가 떠난 자리에 남겨진 동료들은 불편한 심경을 공개적으로 토로하고 있다. 한 동료는 생방송 중에 “돈이 이직의 큰 이유라면 내 장기라도 팔겠다. BBC가 줄 수 있는 돈에 보탬이 된다면”이라는 뼈있는 농담을 던졌다.
분명한 사실은 이번 페스턴의 이직으로 영국 방송뉴스의 두 축을 이루고 있는 BBC와 ITV의 뉴스캐스트 구성 변화가 불가피하게 됐다는 것이다. ITV는 페스턴에게 저녁 뉴스 프로그램의 정치 편집자 직과 일요일 아침 프로그램의 진행자 직을 맡기겠다고 밝힌 상태다. 페스턴이 BBC에서 하던 프로그램들과 모두 같은 시간대에 방송되는 프로그램들이다.
과연 시청자들은 지난 10년 동안 BBC뉴스의 ‘얼굴’이었던 페스턴을 ITV뉴스에서도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 셀러브리티 저널리스트를 기용하는 이유는 매체의 인지도를 쉽게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청자들이 뉴스와 뉴스 진행자를 동일시 생각하는 사고가 고착화된 상태라면, 둘 사이를 분리할 경우 둘 다의 신뢰도가 추락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