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4일은 유신독재 시절 동아일보 기자들이 자유언론실천선언을 발표하면서 언론자유를 위한 투쟁에 나선 지 41주년이 되는 날이었다. 긴 세월 동안 기꺼이 ‘거리의 기자’가 됐던 백발의 선배들은 이날 “패배주의와 무기력을 떨치고 자유언론을 살리기 위한 싸움에 나설 것”을 후배들에게 호소했다. 또 “박근혜 정부의 친위대에 장악된 공영방송이 공정방송과 정반대의 길을 가고 있다”고도 했다.
노기자들의 절규가 있은 다음날인 25일 박근혜 대통령은 공석인 청와대 대변인에 정연국 전 MBC 시사제작국장을 임명했다. 정 전 국장은 MBC의 대표적인 시사 토론프로그램인 ‘100분 토론’을 진행하다 하루아침에 청와대 대변인이 됐다.
지난 20일 그가 마지막으로 진행한 토론 프로그램의 주제가 ‘대통령 방미 이후 한반도 정세’에 관한 것이었다고 하니 과연 그 토론이 공정했을까 의문이다. 그 전 주에는 ‘역사교과서 국정화, 남은 과제’라는 주제의 토론을 진행했다. 이때쯤 그는 언론인 정연국이 아니라 대변인 정연국을 마음속으로 준비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시사제작국장은 ‘100분 토론’뿐 아니라 ‘시사매거진 2580’과 ‘PD수첩’ 등 MBC 시사프로그램을 모두 책임지는 자리이다. 책임자의 갑작스런 청와대행으로 당장 ‘시사매거진 2580’과 ‘PD수첩’의 정치적 중립성 여부가 도마에 오르게 됐다.
그는 2014년 지방선거에선 MBC 선거방송기획단장을 맡았다고 한다. 한해 전 선거방송 책임자가 총선을 앞두고 청와대로 옮겼다면 MBC총선 선거방송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이러고도 정연국 대변인이 MBC나 언론계에 사과를 했다는 얘기는 들리지 않는다.
총선출마를 위해 사임한 민경욱 전 대변인도 KBS 문화부장 시절 당일 아침 편집회의에 참석하고 오후에 청와대 대변인으로 직행해 많은 논란을 일으켰다.
정치권력에 대한 감시와 견제는 언론의 가장 큰 역할 중 하나이다. 오전에 언론인에서 오후엔 정치인으로 둔갑한다면 정치권력에 대한 감시가 제대로 되겠는가. 정연국 전 국장의 변신은 언론인 재직 시절 권력의 눈에 띄기 위해 친정부적 보도를 했다거나,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무슨 거래를 한 것 아니냐는 의심을 살 수도 있다.
현직 언론인이 정치권으로 자리를 옮기려면 한 동안 언론계를 떠나 있어야 한다는 건 굳이 말이 필요 없는 상식이다. KBS는 뉴스 앵커의 경우 방송중단 6개월 이내에 정치활동을 금지한다고 사규에 정해져 있다. MBC에 이런 규정이 있는 지 알 수 없지만 박근혜 대통령은 결과적으로 사규도 지키지 않고 상식도 없는 인사를 ‘청와대의 입’으로 임명한 셈이다.
앵커와 토론 진행자 등 현직 방송언론인을 청와대 인력공급처쯤으로 생각하는 대통령의 천박한 언론관이 반영된 결과이다. 관직으로 언론인을 유혹하는 노골적인 ‘언론 길들이기’라고 할 수 있다. 언론인을 종처럼 부리는 권력과 권력지향적인 언론인들이 어울려 만든 한심한 현실이다.
어쨌든 정연국 대변인은 기자에게 지시하는 국장에서 기자에게 설명하고 양해를 구하는 처지가 됐다. 이제 그는 전체 기자사회와의 관계 개선이 무엇보다 중요하게 됐다. 이를 위해선 해직기자 복직이 무엇보다 우선돼야 한다.
정연국 대변인은 2012년 MBC 파업당시 이른바 ‘권재홍 허리우드 액션’ 보도를 주도함으로써 대량 해고사태의 단초를 제공했다. 언론계에 자신이 남긴 가장 큰 과오는 스스로 풀기 바란다. 해직기자 복직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는 언론계와 적대적 관계가 계속될 수밖에 없고 대변인 정연국도 성공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