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가 최근 사내 인트라넷 보안 강화와 더불어 정보보호서약서를 제출하게 하는 등 직원들에 대한 관리·감독을 강화하고 있다. 내부 기자들은 “정상적인 소통을 막고 언론인들의 입에 재갈을 물리는 조치”라며 반발하고 있다.
MBC는 지난달 26일 직원들을 상대로 ‘재직기간 동안 회사와 관련된 모든 정보를 엄격하게 비밀로 보호하며 타 회사 또는 제3자에게 제공하거나 누설하지 않을 것’이라는 내용의 ‘정보보호서약서’를 이달 말까지 제출하라고 지시했다. 8개 조항으로 이뤄진 서약서에는 “필요한 경우 회사정보시스템, 회사에서 사용하는 이메일, 사내그룹웨어 메일, 메신저 등의 통신기록 및 내용 등에 대한 점검·검색·감사 실시에 동의 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사측이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얼마든지 직원들의 메일·메신저 등을 들여다 볼 수 있는 것으로, 프라이버시권이나 정보권을 침해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의 언론위원장 이강혁 변호사는 “보안사고에 연루된 대상자가 아닌 경우까지 별도의 구체적·상황적 요건도 없이 ‘필요한 경우’ 접근할 수 있게 해, 언론활동 자유는 물론 통신의 자유, 사생활의 자유 등을 침해할 여지가 크다”고 밝혔다.
또 두번째에 명시된 ‘회사로부터 승인받지 않은 일체의 외부 전산장비(PC·전산기기·저장매체)를 회사 내에 무단으로 반입해 설치 및 사용하면 안 된다’는 조항도 위법의 소지가 있다는 지적이다. 이 변호사는 “직원들이 회사의 통제로부터 자유로운 일체의 통신 등을 할 수 없게 된다는 점에서 위헌·위법성이 분명하다”고 했다. MBC의 한 기자도 “내부 구성원들의 입을 틀어막고 마음대로 MBC를 움켜쥐려는 수작”이라며 “개인 장비가 취재에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게 요즘의 언론 환경인데 비현실적인 조치”라고 비판했다.
일각에서는 MBC가 정보보호서약서를 들고 나온 것은 ‘직원들에 대한 감시를 합법적으로 하겠다’는 뜻으로 해석한다. MBC는 지난 1월 장준성 전 민실위 간사에 대해 보도국 다른 사원의 아이디로 보도정보시스템 내용을 야당에 유출시켰단 이유로 정직을 내렸다. 당시 사측은 뚜렷한 증거 자료를 내놓지 못했다. 내부에서는 “사측이 불법 해킹을 통해 유출 정황을 잡은 것 같다”는 얘기가 나돌았다.
MBC는 지난 2012년 6월에도 ‘트로이컷’ 프로그램을 배포해 보안강화를 시도했다. 사측은 “자체 조사에서 ‘보안시스템이 미흡한 상태’라는 결과가 나와 해킹차단 기능이 우수한 보안제품을 선정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노조원들은 “트로이컷이 해킹을 방지하는 역할 뿐만 아니라, 직원들의 사생활을 들여다볼 수 있는 기능까지 들어있다”며 거세게 반발했다.
실제로 트로이컷엔 컴퓨터 사용자가 웹메일·메신저 등을 통해 주고받은 자료나 대화 내용부터, 이동저장장치 등에 저장된 목록까지 중앙관제서버에서 볼 수 있도록 하는 ‘로깅’ 기능이 포함돼 있었다. 회사나 출입처뿐만 아니라 집에서 개인용도로 사용하는 PC에도 자동으로 트로이컷이 깔렸다.
당시 트로이컷 사태는 노사 간 소송을 불러일으켰다. 재판부는 ‘사전에 직원들의 동의를 구하지 않은 점, 정보보호서약서나 동의서를 받지 않은 점’ 등을 들며 노조 측의 손을 일부 들어줬다. 결국 트로이컷 프로그램은 시범 운영 3개월 만에 중단됐다. 노조는 “이번 정보보호서약서는 이러한 걸림돌을 없애 합법적으로 감시하겠다는 의도로 볼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최근 MBC의 보안 강화 움직임은 이뿐만이 아니다. 기사를 올리는 보도정보시스템과 사내 인트라넷 게시판을 면밀히 모니터하는 등 전방위적인 보안 강화에 나섰다. 사측은 올 초부터 사내 게시판에 올라온 글을 누가 조회했는지 혹은 누가 인쇄했는지 알 수 있는 프로그램을 도입했다. 인쇄물 위에는 프린트한 사람의 부서와 이름이 기재되고, 아래에는 ‘MBC의 동의 없이 수정, 변경 및 복사할 수 없습니다’라는 경고문이 실려 있다. MBC의 한 기자는 “컴퓨터를 업데이트할 때마다 보안 장치가 설치되고 사내 게시판을 보려고 해도 이상한 게 깔려, 이미 몇 개월 전부터 아예 들어가지 않는다”라며 “스마트폰 캡처도 괜한 빌미가 될까 두려워 조심스러운 건 마찬가지”라고 했다.
또 치안 강화를 이유로 내부 CCTV 화질을 높였는데, 이마저도 ‘직원 감시용’이란 지적이 나온다. 현재 MBC의 모든 사무실엔 1대 이상의 CCTV가 설치돼 있다. 보도국엔 여러 대가 있다. MBC의 한 기자는 “보이지 않는 누군가가 감시를 하고 있는 느낌”이라며 “화장실 가는 것도 부담스러운 상황”이라고 했다.
전국언론노조 MBC본부는 이번 정보보호서명 건과 관련해 “일단 직원들에게 서명을 보류하라고 했다”며 향후 대응책을 고심 중이다. MBC본부는 “기술 보호가 생명인 IT업체도 최소한의 제재를 기본으로 하는 등 그 어느 회사도 이런 서명을 강요하고 있지 않다”며 “특히 다른 언론사에서 알면 펄쩍 뛸 일”이라고 비판했다.
사측은 이와 관련해 “이미 입사할 때 서면으로 받아온 서약서를 이번에 온라인으로 바꾼 것일 뿐”이라며 “회사의 주요자산을 지키고 콘텐츠 유출 방지를 위한 일반적인 조치”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