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시자 언론, 스스로를 감시대상으로 강등?

[언론 다시보기] 변상욱 CBS 대기자

최근 유엔자유권규약위원회가 스위스 제네바에서 개최됐다. 자유권규약위원회(이하 규약위원회)는 해당국의 인권상황에 대해 사전에 보고서를 제출받고 이후 심의에 들어간다. 우리나라는 9년 만에 받는 심의다. 법무부 차관을 수석대표로 해 법무부·고용노동부·방송통신위원회·경찰청 등 11개 정부기관 총 40명으로 대표단이 참석했다. 우리 측 수석대표가 행한 모두발언은 아래와 같다.


“대한민국은 언론과 소셜미디어를 통해 인권이 침해당하지 않도록 지속적으로 감시를 확대하고 있습니다. 정부 정책결정 과정에서 시민의 참여도 높아지고 있습니다. 국회에서도 입법심의를 엄격히 하며 그 절차가 국민의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습니다. 정부는 균형 있는 인권정책을 수립해 시행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 모두발언 내용에 얼마나 동의하는지는 접어두기로 한다. 다만 규약위원회에 사전 제출된 정부의 보고서는 몹시 부실했다. 세월호 참사 이후 철저히 통제된 집회시위, 그 과정에서 벌어진 폭행과 모욕은 보고서에 담기지 않았다. 또 법무부가 통합진보당 해산을 헌법재판소에 청구하고 헌법재판소 결정에 따라 진보정당이 한 순간에 사라진 사실도 보고서에서 누락됐다.


이런 쟁점사항은 민간기구나 시민사회단체들이 별도의 의견서를 제출함으로써 인권 및 자유권 침해 쟁점으로 규약위원회에 접수되었다. 이에 따라 규약위원회는 올 봄에 열린 113차 세션에서 우리 정부에 28개 항목의 쟁점목록을 제시했고 여기에 진보당 해산과 집회시위의 제한, 과잉진압 등이 담김으로써 이번 심사에서 정부가 답변을 내놓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런 과정에 대한 보도는 우리 언론에서 찾아볼 수 없다.


규약위원회의 심의 진행 내용을 전하는 보도마저도 엉터리이다. 천편일률적으로 정부의 보도자료만을 베끼고 있다.


“사형제 폐지는 국민합의가 이뤄지지 않고 있는 사안이다. 국가보안법·양심적 병역거부도 안보불안과 불평등 문제로 국민적 저항이 크다. 대법원과 헌법재판소도 같은 결정이다. 통합진보당은 북한식 사회주의를 추구하며 폭력적이고 민주 기본질서를 훼손했으니 해산이 정당하다고 헌법재판소가 결정한 것이다.”


그밖에 언론이 전한 규약위원회의 심의 관련 보도는 ‘시위를 가로 막은 차벽은 시민의 안전을 위해서’이고, ‘세월호 집회와 관련해서는 경찰 80여명이 부상당했다’ 등 정부대표단의 변명을 친절히 되풀이하고 있을 뿐이다. 모두 국민 여론과 사법부에 책임을 미루며 한국의 자유와 인권은 정부의 최선을 다한 노력 속에 최대한 보장되고 있다는 정부의 해명 그대로이다.


나름 균형을 잡거나 비판적으로 전한 보도기사를 찾고자 검색해 보니 아래의 3개 언론사 보도가 전부였다.
“유엔규약위 통진당 해산 등 심의-정부 대표 답변 회피” “한국 규약이행 의지 보이지 못해”(이상 ‘뉴스 1’)
“악화되는 한국의 인권에 우려 표명”(민중의 소리)
“인권은 여론으로 정할 문제가 아냐”(내일신문)


물론 이 4건의 기사 외에 찾지 못한 비판적 보도가 더 있다 해도 몇 개를 넘지는 않을 것이다. 이미 정부 보도자료를 인용해 심의가 긍정적으로 진행된 듯 보도한 절대 다수의 언론사가 비판적 보도를 별도의 기사로 처리했을 리는 없으니까.


우리가 적어 내려간 대다수의 기사들은 진실에서 멀고, 국민 또한 진실로부터 멀리 떼어놓고 있다. 유엔자유권규약위원회가 감시해야 할 대상이 인권을 침해하는 이 나라의 권력과 법제 외에도 관제에 길들여진 우리들이라면 우리의 이름은 과연 저널리스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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