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독자는 '무엇'이 아닌 '왜'에 돈을 낸다"

[혁신 미디어 비즈니스 모델을 찾아서] (2)네덜란드 블렌들

신문·잡지 한데 모은 플랫폼으로 사용자 개별 맞춤 뉴스 제공
유료회원 70%가 35세 이하…인터뷰·분석기사 많이 읽혀
원하는 기사만 읽고 비용지불…개별 기사 평균 가격 250원
내용 불만족 땐 구독료 돌려줘, 가십·낚시기사 환불 비율 높아


트래픽 유입을 통한 광고수입은 점점 줄어들고, 유료모델인 ‘페이월(paywall)’에 대한 거부감도 높아지는 환경에서 어떻게 하면 온라인에서 수익을 올릴 수 있을까. 네덜란드 스타트업 ‘블렌들(Blendle)’은 이런 고민 끝에 만들어졌다.


Belndle.com에 들어가면 네덜란드에서 발행하는 거의 모든 언론사의 뉴스를 읽을 수 있다. 사용자는 자신이 원하는 기사만 골라 읽고, 기사 한 건당 평균 0.2유로(약 250원)의 푼돈을 낸다. 기사가 맘에 들지 않으면 환불도 가능하다.


20대 후반의 전직기자인 알렉산더 클뢰핑과 마르텐 블라케스테인이 지난해 4월 네덜란드에서 본격 서비스를 시작한 블렌들은 새로운 형식의 뉴스 플랫폼이다. 네덜란드 주요 일간지나 잡지의 뉴스를 한 데 모아서 웹과 모바일, 태블릿으로 보여준다.


현재 네덜란드 언론사 80곳이 입점해 있고 지난 9월에는 독일에서 서비스를 시작했다. 전체회원수는 45만명, 유료회원은 9만명 수준이다. 특히 유료회원의 3분의2가량이 35세 이하의 젊은층이다.


“우리는 뉴스를 읽지 않던 새로운 독자층을 찾았다. 그들은 생애 처음으로 비용을 지불하고 뉴스를 보고 있다.” 지난달 12일 네덜란드 중부 위트레흐트에 위치한 블렌들 본사에서 만난 듀코 반 랜스콧 국제사업팀장은 말했다.


블렌들 본사는 위트레흐트 중앙역에서 도보로 10여분 거리인 미디어 플라자 건물에 있다. 우주선 입구처럼 보이는 둥근 문을 통과하자 길게 뻗어 있는 공간이 눈에 들어왔다. 양쪽으로 사무실이 있고, 한 가운데 꽤 넓은 카페가 자리하고 있었다. 직원들은 카페에 앉아 음료를 마시며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다 흩어졌다.


블렌들 본사에는 기자 15명 등 모두 75명이 일하고 있다. 기자들은 네덜란드 주요 언론사 출신들로 블렌들에 입점한 모든 매체의 기사를 읽고 좋은 기사를 찾아서 페이지에 올린다. 블렌들 페이지에는 기자 출신 큐레이터들이 추천한 기사로 꾸려진 별도 섹션이 있다. 큐레이터가 추천한 기사가 많이 읽히는 까닭에 가끔 제휴 언론사들이 왜 우리 기사는 추천하지 않느냐는 항의성 메일을 보내온다고 한다.


블렌들은 소액결제 시스템을 갖춘 뉴스 플랫폼이다. 사용자들이 수천 건의 기사 가운데 자신이 원하는 뉴스만 골라 읽고, 그에 대해 일정금액을 지불한다. 특정 신문사에 월정액을 내고 유료회원으로 가입해 놓고 뉴스를 읽지 않는 기존 시스템을 개선했다고 블렌들 측은 밝혔다.


사용자는 블렌들 사이트에서 기사를 건별로 구입한다. 기사에는 광고가 없다. 가격은 건당 0.15유로(약 190원)에서 0.3유로(약 380원), 장문의 기획기사는 0.8유로(약 1000원)다. 개별 기사 요금은 각 언론사가 정하고, 수입의 70%를 가져간다. 나머지 30%는 블렌들에 돌아간다.


블렌들은 사용자의 관심사에 맞게 최적화된 뉴스를 제공한다. 회원으로 가입할 때 읽고 싶은 매체와 선호하는 주제를 선택하도록 하는데 사이트에 들어가면 자신의 관심사에 기반을 둔 맞춤형 뉴스가 뜬다. 기자 출신 큐레이터나 친구들이 추천한 기사,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각 분야 여론 주도층이 어떤 뉴스를 즐겨 읽는지도 볼 수 있다.


회원 가입도 간단하다. 이름을 입력하고, e-메일이나 페이스북 주소를 연동하면 곧바로 사용이 가능하다. 사이트는 암호 입력 등 별다른 절차 없이 자동으로 열린다. 사용자는 사이트에서 매체와 기사 제목, 가격, 몇 줄 요약을 읽고 흥미가 있으면 클릭한다. 그러면 전체 기사가 나타나고 사용자의 전자계좌에서 구독료가 치러진다. 페이스북과 트위터, e-메일 등을 통한 기사 공유도 가능하다.


블렌들은 처음 사용자에게 2.5유로(약 3200원)를 무료로 준다. 사이트 이용을 독려하기 위해 큐레이터가 추천한 6~7개의 기사를 날마다 e-메일 뉴스레터로도 제공한다. 큐레이터는 전날 밤 모든 신문을 읽고, 흥미 있는 기사를 찾아 사용자들에게 추천한다. 뉴스는 웹보다는 스마트폰과 태블릿에서 주로 소비된다.


랜스콧 팀장은 “블렌들 사용자는 선물로 받은 2.5유로를 다 쓰면 자신의 전자계좌에 돈을 충전해야 한다”면서 “통상 돈을 내야 하는 웹사이트의 경우 유료회원 전환 비율이 5%에 불과한데 블렌들은 1년 만에 전체회원의 20%가 유료로 전환했다”고 말했다.


결제도 간편하다. 무료로 받은 2.5유로를 소진한 사용자가 기사를 클릭하면 결제하라는 메시지가 뜬다. 5·10·20·50유로 가운데 하나를 선택한 뒤 신용카드 등으로 결제하면 전자계좌에 돈이 충전된다. 유료 사용자의 절반가량은 전자계좌에 1유로 이하가 남으면 자동으로 충전되는 방식을 쓰고 있다.


블렌들 서비스의 또 다른 특징은 환불이다. 사용자들은 구입한 기사가 흡족하지 않을 경우 환불을 요청할 수 있다. 기사가 맘에 들지 않는 이유를 적으면 곧바로 블렌들 계좌로 이미 지불한 구독료가 입금된다. 대개 가십 잡지 기사나 선정적인 제목이 달린 낚시기사가 환불 대상이며, 환불 비율은 평균 5% 미만이라고 한다.


그러면 블렌들 사용자들은 어떤 기사를 많이 읽을까. 인터뷰나 사건의 이면을 심층적으로 다룬 분석기사, 오피니언 등이 블렌들에서 많이 읽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용자들은 ‘무엇’에 돈을 쓰지 않고 ‘왜’에 돈을 쓰고 싶어 한다고 블렌들 측은 밝혔다.


블렌들 공동 창업자인 알렉산더 클뢰핑은 지난 3월 자사 사이트에 올린 ‘One website. All newspapers and magazines’에서 “블렌들에서는 낚시기사가 통하지 않는다”면서 “사용자들은 그들의 돈을 가치를 찾을 수 있는 콘텐츠에 지불한다. 우리는 다음 세대들이 신문과 잡지에서 가장 좋은 기사를 찾아 읽게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블렌들은 네덜란드에서 안착한 여세를 몰아 지난 9월말 독일에 진출했다. 디벨트, 쥐트도이체자이퉁, 슈피겔 등 주요 매체를 비롯해 120개 독일 언론사가 파트너 계약을 체결했다. 독일어로 서비스하는 스위스 신문 노이에 취르허 자이퉁, 월스트리트저널과 이코노미스트 등 영어권 매체들도 블렌들 플랫폼에 참여했다.


블렌들은 독일어권인 스위스와 오스트리아 등을 거쳐 미국 등으로 시장을 넓힐 계획이다. 세계 시장 진출을 위한 실탄도 충분하다. 미국 뉴욕타임스와 유럽 최대 미디어그룹 독일 악셀 슈프링거는 지난해 11월 블렌들에 300만유로(약 37억원)를 투자했다.


언론사에게 블렌들은 새로운 독자, 특히 젊은층을 끌어들일 수 있는 플랫폼으로서 매력이 있다. 블렌들은 뉴스 건별 판매 시스템을 앞세워 종이신문과 디지털판을 구독하지 않은 젊은 독자를 뉴스 소비자로 끌어들이고 있다.


마티아스 되프너 악셀 슈프링거 최고경영자는 지난해 9월 블렌들에 대한 투자 계획을 밝히면서 이런 성명을 냈다. “우리는 독자들이 좋은 저널리즘에 비용을 지불할 수 있다는 걸 확신시키고 싶다. 난 블렌들이 쉽게 사용할 만한 하면서도 고품질의 유료 저널리즘을 향한 플랫폼을 만들고 있다는 점에 기쁘다. 블렌들은 어리고 인터넷에 익숙한 독자를 이끌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


물론 블렌들을 경계하는 시선도 있다. 블렌들이 지난해 4월 서비스를 시작했을 때 독자 감소를 우려한 언론사의 반발이 있었고, 심지어 몇몇 언론사는 구독을 취소하는 독자들에게 블렌들 때문인지 묻는 설문조사를 하기도 했다.


랜스콧 팀장은 “블렌들에는 구글이나 야후에 지천으로 깔려 있는 공짜뉴스에서 찾을 수 없는 깊이 있고, 퀄리티 높은 기사가 많다”면서 “우리는 기존 언론사들이 광고 의존도를 줄이고 좋은 저널리즘을 창출할 수 있는 기회의 플랫폼”이라고 말했다.

위트레흐트=김성후 기자 kshoo@journalist.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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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자는 하지 않고 디지털 혁신만 강요해선 안돼”
마크 도우즈 암스테르담대학 교수


“경영진은 디지털 혁신만 강요하지 말고 저널리스트와 적극 소통해야 한다.” 마크 도우즈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대학교 미디어학과 교수는 “뉴스미디어는 끊임없이 변화해야 하고, 변화의 선두에 경영진이 있어야 한다”며 이같이 말했다. 지난달 13일 암스테르담 대학에서 도우즈 교수를 만났다.


-네덜란드 언론의 디지털 전략은.
“올해 네덜란드 대부분 뉴스미디어가 디지털 퍼스트를 내세웠다. 일간지 NRC는 새로운 웹사이트를 론칭했고, 또 다른 신문 복스크란트는 뉴스룸 중앙에 온라인 부서를 두는 식으로 뉴스룸 구조를 재조직했다. 하지만 그들의 전략은 성공하지 못했다. 뉴스미디어는 디지털 시대에 맞춰 준비가 되었다고 밝혔지만 종이신문 발간, TV 뉴스쇼 등 익숙한 것들만 붙들고 있다.”


-디지털 전략이 성공하지 못한 이유는.
“오랜 시간 같은 방법으로 일하던 조직 문화가 첫 번째 이유다. TV, 라디오, 종이신문 등 뉴스미디어는 기존 영향력을 유지하길 원한다. 기득권에 안주하려는 조직 문화는 디지털퍼스트를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 사실 디지털퍼스트도 늦었다고 볼 수 있다. 온라인 접속자수의 절반 이상은 모바일에서 나온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인터넷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언론사가 많다. 두 번째는 네덜란드 미디어 마켓이 비교적 안정적이고 경쟁이 치열하지 않다는 점이다. 그래서 뉴스미디어는 변화 필요성을 절감하지 못한다. 하지만 시장은 달라지고 있다. 네덜란드에는 블렌들과 같은 신생 미디어기업이 70여개가 있다. 기존 뉴스미디어가 해야 할 일을 신생 기업이 대신하고 있다.”


-광고와 구독이라는 전통적 수익모델은 유지될까.
“네덜란드에서도 광고와 구독은 매년 줄어들고 있다. 완전히 붕괴되지 않겠지만 이런 흐름이 앞으로 지속된다면 (전통적 수익모델이) 사라질 것이라고 예상하는 사람들도 있다. 온라인에서 광고와 구독 수익은 더디게 늘어난다. 수익은 많지 않고 새로운 뉴스 형태에 투자할 자본은 없고 이런 과도기적 상황이 뉴스미디어를 어렵게 하고 있다.”


-디지털에서 수익모델은 불확실한데.
“수익모델은 아주 확실하다. 다양하다고 말할 수 있다. 온라인에서는 수익모델이 조금씩 흩어져 있고, 항상 변한다. 페이월이나 소액결제, 프리미엄 서비스나 가끔은 이벤트를 통해 수익을 올릴 수 있다. 그래서 뉴스미디어는 창의적이고 유동적이면서 매번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페이스북의 ‘인스턴트 아티클스’, 트위터의 ‘프로젝트 라이트닝’ 등에서 보듯 소셜미디어는 인터페이스와 비디오 스트리밍 프로토콜 등을 통해 변화하고 있다. 이들은 뉴스 영역을 확대하면서 점점 저널리즘 공간으로 바뀌고 있다.”


-저널리스트는 무엇을 해야 하나.
“저널리스트는 디지털을 이해하고 무언가를 하고 싶어 한다. 하지만 경영진은 아무런 지원 없이 저널리스트에게 변화만 강요한다. 저널리스트의 근무 환경은 열악해지고 있다. 정리해고에 일자리를 잃고, 많은 저널리스트가 프리랜서로 전락하고 있다. 이런 상황은 더 심각해질 것이다. 저널리스트 단체나 노조가 저널리스트를 도와야 한다.”

암스테르담=김성후 기자 kshoo@journalist.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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