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답하라 1988'과 '김연수의 기레빠시'

[스페셜리스트 | 문학·출판] 어수웅 조선일보 문화부 차장

여고생들의 입에서 그런 원망의 합창을 들으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A여고에서 특강을 한 월요일 밤의 일이었다. 심야자율학습까지 반납한 책 좋아하는 여고생과 학교 도서관 선생님의 요청이었다. 책읽기와 글쓰기가 주제였는데, 자연스럽게 좋아하는 작가와 작품에 대한 화제로 이야기가 흘렀다. 여러 명을 언급했는데, 함성은 기자와 동갑내기인 소설가 김연수의 단편 ‘뉴욕제과점’에서 터져나왔다.


“아, 그놈의 기레빠시!”
자전적 내용을 담고 있는 ‘뉴욕제과점’에는 빵집 아들이었던 소년 김연수의 푸념이 등장한다. 당시 소년들의 판타지였던 빵집 막내로 태어났지만, 막내아들이 먹을 빵까지 팔아 악착같이 돈을 만들어야 했던 모친의 생각은 달랐다. 유일하게 허용됐던 것은 일본어로 ‘기레빠시.’ 각진 빵틀로 자르면 귀퉁이 조금 떨어지던 카스텔라 부스러기 말이다. 성분이야 카스텔라 그대로지만, 아무리 그래도 하루이틀이지. 나중에는 키우는 개조차 외면했다는 기레빠시. 하지만 소문은 역전(驛前) 뉴욕제과에서는 키우는 개조차 매일 빵을 먹는다고 났다. 가난했지만 따뜻했던 시절에 대한 낭만적 우화였다.


40대에게는 추억을 자극하는 이 우화를, 2015년의 10대 여고생들이 불평한 까닭은 단순했다. 국어 시험문제였고, 알지도 못하는 국적불명 외국어 때문에 시험을 망쳤다는 것이다. 국어선생님 세대의 공감과 달리, 이 소녀들은 기레빠시를 먹어본 적도, 구경해 본적도 없는 것이다.


요즘 ‘응답하라 1988’로 대표되는 80년대 대중문화의 호출이 있다.
배바지에 청재킷을 즐겨 입는 여고생이 수학여행 장기자랑 경연을 위해 소방차의 ‘어젯밤 이야기’를 연습하는 밤. TV는 장기자랑 1등 상품이었던 국산워크맨 ‘마이마이’를 클로즈업한다. ‘응답하라 1988’ 뿐만이 아니다. 걸그룹 에이핑크는 청조끼와 청치마 차림으로 1984년 인기를 끌었던 나미의 ‘빙글빙글’을 열창한다. 트렌드에 예민한 백화점은 당연히 비즈니스로 연결하고, 신세계백화점은 최근 열흘 동안 실시한 고객감사 대제전의 부제를 ‘Back to 1980s, 그 시절을 추억합니다’로 달았다. 80년대 백화점 전단에서 쓰던 로고와 서체, 디자인을 그대로 살렸음은 물론이다.


20대 젊은 후배들은 80년대를 이렇게 요약하고 있었다. 부럽다고. 연평균 경제성장률 10%라는 믿을 수 없는 호시절. 대한민국 최초의 3년 연속 경상수지 흑자. 소득과 일자리가 모두 늘어나던 경이로운 시절.
저성장, 저소비, 높은 실업률로 대표되는 요즘의 젊은 세대가 보기에는 당연히 부러울 수도 있을 것이다.


대중문화를 소비하는 주력세대는 어느 시점에건 대부분 10~20대인 경우가 일반적. 하지만 80년대 학번인 기자가 기억하는 80년대가, 후배들이 생각하는 것만큼 아름다웠던 것은 아니다.


해결이 요원해 보였던 억압적 정치권력, 대의(大義)를 위해 개인은 감수해야 한다는 체념, 좀 더 절박(?)하게는, 학교 캠퍼스에서는 연애조차도 불가하다고 생각했던 강박적 분위기.


물론 100대0의 진실은 없다. 두 세대 모두에게 부분의 진실이 존재할 것이다. 뉴욕제과 카스텔라 부스러기에서 시작한 푸념이 너무 멀리까지 와버렸다.


문화부 기자로서, 세대 갈등과 격차를 무화시키는 경구로 오늘의 푸념을 맺으려 한다. 뉴욕 맨해튼 북서쪽에 있는 미국문학예술아카데미(AAAL)의 웅장한 청동문에는 다음과 같은 문구가 새겨져 있다. ‘모든 것은 지나간다. 오직 예술만이 지치지 않고 우리와 함께 머문다. 예술의 문을 통해 우리는 행복한 신전(神殿)으로 들어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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