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대변인'으로 전락한 언론

[우리의 주장] 편집위원회

최근 중앙언론사 한 곳이 국방부 정책을 홍보하는 대가로 1억원을 받고 기사를 써준 것으로 드러나 파문이 일고 있다. 이 언론이 국방부 홍보대행사와 맺은 약정서를 보면 충격적이다. 월 1회 이상 종합면에 7회에 걸쳐 1500자 내외 ‘면 톱’으로 싣는 것으로 꽤 구체적이다. 이 언론이 지면에 썼던 기사들은 ‘지지율 15% 오른 박 대통령, 군복 대신 카키색 재킷’ ‘군, 메르스 때 환자 이송 전시계획 따랐다’ ‘문경 군인체육대회, 국제대회 본보기 됐다’ 등으로 국방부 홍보기사가 대부분이다.


기자협회보가 새정치민주연합 배재정 의원실로부터 받은 ‘정부부처 언론홍보 예산집행 현황’을 보면, 국방부뿐 아니라 농림부와 병무청, 방위사업청 등 상당수 정부 부처가 홍보대행사를 끼고 수백만원에서 수천만원을 언론사에 주고 기사를 제공받는 것으로 드러났다. 정부의 정책 홍보가 광고 중심에서 기사홍보로 옮겨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실제 정부는 정책 홍보와 관련해 민간 홍보대행사들을 대상으로 입찰을 한 뒤 용역을 맡기는 일명 ‘턴키 홍보 용역’을 확대하고 있다.


갈등이 첨예한 노동분야에서 정부가 노동시장 구조개선에 대한 우호적 여론을 만들기 위해 돈으로 기사를 사는 행태는 특히 노골적이다. 정부의 노동유연성 제고와 호봉제 임금체계 개편 등 정부의 정책방향과 일치하는 글들이 버젓이 기사 형태로 나오고 있다. ‘노동시장 개혁 틀 나왔다’ ‘노동시장, 글로벌 스탠더드로’ 등의 제목으로 보도됐는데, 기사라기보다 정부 홍보 광고에 가깝다. 하지만 기사 어디에도 협찬이나 후원 표시는 찾아볼 수 없다. 독자들에게 객관적인 기사인양 속이고 있다.


더구나 돈을 받고 작성된 국방부와 고용노동부 기사들은 하나같이 정부 입장을 대변하는 사람들만을 취재원으로 삼아 편향시비를 부르고 있다. 인용된 통계나 자료 등도 마찬가지다. 홍보대행사의 ‘지지기반 확대와 부정적 여론 최소화’라는 방침에 따르듯, 언론사들이 ‘정부의 입’ 노릇을 충실히 하고 있다. 정부 정책을 감시하고 비판해야 할 언론이 홍보비를 받고 정책을 홍보하는 ‘대변인’ 역할을 하고 있다.


이런 홍보행태가 기업들이 블로거에게 돈을 주고 홍보성 글을 쓰도록 한 것과 무슨 차이가 있는가. 앞으로는 기업의 불법과 비리엔 엄한 잣대를 들이대고 비판기사를 쓰며, 뒤로는 돈을 받아서 기사를 쓰는 이중성을 갖고 있는 한, 숱하게 듣고 있는 ‘기레기’라는 비난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기업의 블로거 홍보비’에 대한 법원의 판결은 그래서 곱씹어볼만하다. “블로거들에게 돈을 주고 홍보성 글을 쓰게 하면서 돈거래가 있었다는 사실을 밝히지 않은 것은 소비자를 속인 행위다.”


객관성과 공정성을 담보해야 할 언론이 정부에 유리한 입장만을 돈을 받고 일방적으로 보도한 것은 언론윤리 측면에서도 쉽게 넘길 사안이 아니다. 신문윤리강령 제4조는 “우리 언론인은 사실의 전모를 정확하게, 객관적으로, 공정하게 보도할 것을 다짐한다”고 적시하고 있다. 언론이 ‘사회의 공기’나 ‘권력의 4부’로 불리는 까닭은 비판과 감시의 기능을 수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언론이 돈에 종속되면, 그때부터 언론은 제역할을 수행할 수 없다. 언론의 공영성은 거추장스러운 장식품에 불과할 뿐이다.


아무리 언론의 현실이 고달프고 힘들더라도 최소한의 자존심마저 팔면서 존재해야 하는지 의문이다. 5공때 ‘보도지침’으로 언론에 재갈을 물린 정부가 이젠 돈으로 길들이려고 하고 있는데도, 저항할 힘조차 상실한 언론의 현실이 참담하다. 더 추락할 곳이 있는가. 더 이상 부끄럽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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