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최고경영자(CEO) 부부는 지난 1일 세상에 통 큰 약속을 했다. 이들 부부가 보유하고 있는 페이스북 주식 중 99%를 기부하겠다는 약속이었다. 며칠 전 태어난 딸 맥스를 위한 선물이었다.
시가로 따지면 450억 달러, 무려 52조원에 달하는 액수다. 북한은 물론 리비아, 가나 등 웬만한 아시아·아프리카 빈국의 한해 GDP(국내총생산)를 뛰어넘는 규모다. 통상적인 재단 설립 대신 유한책임회사(LLC)를 만들겠다는 기부 방식엔 논란이 있지만 규모 만큼은 세상을 놀라게 하기에 충분했다.
저커버그는 결정적인 순간 냉철한 판단을 내리는 것으로 유명한 사업가다. 그가 페이스북을 창업한 건 인류와 사회에 공헌하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그런 그가 출산의 기쁨에 들떠 50조원이 넘는 돈을 사회에 쾌척했다고 보는 것은 단편적인 생각이다. 미래를 읽는 냉철한 사업가의 딸에 대한 깊은 고민을 평가 절하하는 것이다.
“딸이 자라날 세상이 지금보다는 나은 곳이길 바래서.” 그가 밝힌 기부 이유다. 페이스북에 올린 ‘딸에게 보내는 공개편지’에서 구체적인 속내를 읽을 수 있다. “‘인류의 잠재력 향상’과 ‘다음 세대 아이들의 평등(equality)’에 기여하기 위해서.”
그에게 딸의 행복한 미래를 위협하는 가장 큰 문제는 ‘불평등’(inequality)이다. ‘불평등의 해소’야 말로 그와 같은 길을 먼저 걸은 ‘오마하의 현인’ 워런 버핏 버크셔해서웨이 회장과 빌 게이츠의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의 공통된 기부 목적이기도 하다.
이들은 더 나아가 부자들로부터 더 많은 세금을 거두라고 요구한다. 버핏이 “나같은 부자에게 세금을 더 많이 거둬야 한다”며 소위 ‘버핏세 도입’을 주장하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빌 게이츠는 2006년 미국 정부가 부자 감세를 시도하자 “부자는 세금을 더 많이 내도 가난한 사람들보다 잘산다”며 맞섰다.
크레디트스위스의 ‘2015 세계자산보고서’에 따르면 세계 인구의 1%가 전 세계 총자산의 절반 이상(50.4%)을 차지하고 있다. 버핏과 게이츠, 저커버그는 한결같이 부의 불균형이 심화되면 인류 사회가 건전한 연속성을 갖기 어렵다는 판단을 하고 있다. 2011년 가을 미국을 뒤흔들었던 ‘월스트리트 점령 운동’은 그 조짐이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조사 결과 소득의 불균형은 경제성장에도 심각한 타격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영국은 1990~2010년 소득 불균형으로 경제성장률이 9%포인트 가까이 낮아졌으며 미국의 경우 같은 기간 경제성장률 중 7%포인트를 깎아먹었다고 분석했다. OECD는 “소득 불균형의 증대가 강력하고 유지 가능한 성장을 촉진하는데 치명적 장애가 되고 있다”고 경고했다. 이런 관점에서 의식있는 미국 거부들의 기부 행렬은 사회의 안정성 위에 지속적인 성장을 유지해 그들의 기득권을 이어가기 위한 ‘고육지책’으로 볼 수 있다.
미국 미시간대 경제학자 벳시 스티븐슨과 저스틴 울퍼 교수는 미국인 45만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를 바탕으로 흥미로운 연구 결과를 내놓았다. 연간 소득이 연 7만5000달러(약 8800만원)를 넘으면 돈이 많아질수록 행복한 감정이 늘어나지는 않는다는 분석이었다. 미국 거부들은 행복 증진에 도움이 안되는 천문학적 돈을 물려주는 대신 자녀의 복리를 앗아갈 수 있는 위협을 줄여 행복한 삶을 지켜주고 싶은 것이다. 우리나라 거부들은 어떠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