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 '세계인터넷대회'를 개최한 이유

[글로벌 리포트 | 중국] 박일근 한국일보 베이징특파원

중국 상하이(上海)시에서 남동쪽으로 130㎞ 가량 떨어진 우전(烏鎭)은 대표적인 수향 마을 관광지다. 작은 물길이 집집마다 연결된 이 전통 마을의 역사는 1300여년이나 된다. 교통도 불편한 이 시골에 지난 16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과 맘눈 후사인 파키스탄 대통령,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총리 등 8개 나라 지도자를 비롯 120여개국 2000여명의 귀빈이 모였다.


마윈(알리바바) 레이쥔(샤오미) 마화텅(텐센트) 양위안칭(레노버) 회장 등 중국 정보기술(IT) 거물들도 모두 참석했다. 중국이 지난해에 이어 두 번째로 ‘세계인터넷대회’를 개최했기 때문이다. 3일간 이어진 행사에선 인터넷의 미래에 대한 논의와 함께 중국산 무인 자동차와 파노라마 가상 촬영 플랫폼 등 혁신 IT 제품들도 대거 선보였다.


중국이 강남의 한 외딴 마을을 ‘세계인터넷대회’의 영구 개최지로 정한 것은 이제 중국이 인터넷 세상도 접수하겠다는 뜻을 드러낸 것이다. 물론 중국의 이러한 태도에 대한 회의적 시각과 비판도 적잖다. 인터넷은 개방과 공유가 기본 철학이다.


그러나 중국은 그 어느 국가보다 인터넷 폐쇄와 차단으로 악명이 높은 나라다. 중국에선 여전히 뉴욕타임스와 블룸버그통신 등에 접속할 수 없다. 페이스북과 유튜브도 막혀 있다. 우리나라의 카카오톡도 걸핏하면 끊기기 일쑤다. 톈안먼(天安門) 민주화 운동 등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안은 ‘관련 법규에 따라’ 검색할 수 없다. 최고 지도부와 관련된 부정적 기사는 언제든지 삭제된다. 수도 베이징(北京)도 인터넷 속도는 아직 10Mbps가 일반적이다. 이런 나라에서 세계인터넷대회를 열고 새로운 인터넷 질서를 논의하겠다고 하니 미국의 대표적 IT 기업들이 참석하지 않은 것도 이상할 게 없다.


그러나 중국은 이러한 결점도 힘의 논리로 밀어붙일 기세다. 중국 입장에선 인터넷 인구가 가장 많은 나라가 인터넷 세상의 중심이 되는 게 당연하단 생각을 할 수도 있다. 중국의 인터넷 인구는 무려 7억명에 달한다. 현재 휴대폰 사용자가 12억명인 만큼 인터넷이 되는 휴대폰 보급이 더욱 확대되면 이 인구는 더 늘어날 수 밖에 없다. 중국판 카카오톡인 웨이신(微信)과 중국판 트위터인 웨이보(微博) 이용자도 각각 6억명에 가깝다.


인해전술만 있는 건 아니다. 중국의 인터넷 금융은 이미 세계 최고 수준이다. 10위안(약 1800원)짜리 국수 한 그릇을 먹어도 계산은 스마트폰을 열고 즈푸바오(支付寶ㆍ알리페이)로 결제하는 게 오늘의 중국이다. 비밀번호 여섯 자리만 누르면 더 이상의 인증 절차 필요 없이 옆 사람에게 송금할 수 있고, 어젯밤 인터넷 쇼핑몰에서 주문한 물건을 오늘 아침 문 앞에서 받을 수 있을 정도로 중국의 인터넷 비즈니스는 발달돼 있다. 이젠 택시나 승용차도 스마트폰 앱으로 부르는 경우가 더 많다.


사실 중국공산당은 일당 독재 사회주의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인터넷을 철저하게 ‘관리’해야 하는 상황이다. 인터넷 세계를 ‘안전’하고 ‘바람직한 방향’으로 유지하기 위한 규범의 제정이 누구보다 필요한 게 중국이다. 실제로 시 주석은 개막식에 참석, 인터넷 국제 규칙과 반(反)테러 공약의 제정을 주문했다. 중국 주도의 인터넷 규범을 통해 인터넷을 계속 통제하고자 하는 게 중국의 의도다.


이런 중국의 모습은 ‘초고속인터넷 강국’인 한국은 무엇을 하고 있는지 돌아보게 한다. 사실 몇 년 전만 해도 우린 인터넷에서 중국과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앞서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갈라파고스 규제 속에 중국에게마저 추월 당한 뒤 뒤처지는 형국이다. 단순히 양에서 밀리는 게 아니라 질에서도 상대가 안 된다. 중국은 몇 년 새 징둥닷컴(전자상거래), 디디추싱(택시검색), 셰청(여행포털) 등 새로운 인터넷 기업이 우후죽순 나온 반면 우린 그런 예를 찾기가 힘들다. 중국은 나아가 전통 제조업에 인터넷 기술을 융합한 ‘인터넷+(플러스)’라는 새로운 산업 전략까지 추진하며 경제의 새로운 활력을 찾고 있다.


악명 높은 인터넷 통제국 중국조차 세계인터넷대회를 열며 인터넷에서 미래를 찾고 있다. 초고속인터넷 강국 한국이 만약 전주 한옥마을이나 안동 하회마을에서 국제인터넷대회를 연다면 몇 나라 정상이나 올까. 분발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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