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기자협회장의 편집회의 의견 개진을 “편집권 침해”라며 보도국 간부들이 집단 성명을 낸 가운데 이를 두고 KBS 내부가 비판의 목소리로 들끓고 있다. 사내 게시판을 통해 구성원들의 비판이 잇따르던 중 간부단 성명에 이름을 올렸던 부장급 간부가 사과문을 올리고 평기자로 물러나는 일도 발생했다. 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새노조)는 이번 사태를 고대영 사장이 밝혀온 편성규약 개정의 신호탄으로 보고 비판의 수위를 높이고 있다.
정지환 보도국장 등 보도국 간부 18명은 지난 17일 편집회의 중 이병도 기자협회장의 발언은 “의견 제기가 아니라 압력이었고, 그런 만큼 명백한 편집권 침해”라는 논지의 집단 성명을 사내 게시판에 공개했다. 앞서 새노조가 보도국 간부들의 이 같은 주장을 비판하고 나선 데 따른 반박 성명이었다.
새노조는 이날 성명에서 지난 16일 아침 편집회의에서 이병도 협회장이 “세월호 청문회 마지막 날인 만큼 마무리하는 보도를 하는 게 어떤가”라는 의견을 제시했고, 이에 대해 정지환 국장이 “아이템에 대한 기자협회장의 발언은 부장들에게 압박으로 비춰질 수 있고, 따라서 편집권 침해”라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고 밝힌 바 있다.
보도국 간부들의 집단 성명이 게시된 17일 이후 KBS 사내 게시판은 구성원들의 성토의 목소리로 채워졌다. 이들은 자신들의 실명을 걸고 “방송법이 보장하는 편집권은 편집회의에 참석하는 간부 10여명의 전유물이라는 건가”, “세월호 청문회 관련 리포트를 9시 뉴스에서 한 번도 하지 않은 것이 잘된 편집권 행사였다고 주장하는 건가” 등의 발언을 통해 분노와 안타까움을 표했다.
손관수 방송기자연합회장은 21일 게시글에서 “편성규약에 의해 엄연한 ‘부장단 회의의 한 구성원’인 기자협회장의 발언에 그런 모욕적인 딱지를 붙이는 것은 평기자의 대표를 무시하고 ‘너희들은 입닫으라’하는 이율배반적이고, 위압적이고 권위주의적인 것으로 공정방송 노력에 어깃장을 놓는 태도”라고 꼬집었다.
이 같은 분위기 속에서 간부단 집단 성명에 이름을 올렸던 임장원 경인방송센터장이 지난 21일 보도정보시스템에 사과문을 올리고 간부 자리에서 물러나는 일도 발생했다. ‘기자협회장의 발언을 압력으로 느끼지 않았음에도 서명에 참여한 것이 부끄럽다. 부끄러움을 안고 부서장 역할을 수행하기는 어려울 것 같아 보도본부장에게 거취에 대한 생각을 밝혔다’는 내용의 사과문을 올린 그는 22일 같은 부서 소속 평기자로 발령이 났다.
새노조는 17, 18, 22일 잇따른 성명을 통해 ‘편집권 침해’라는 사측의 주장을 비판하며 “‘편성규약’ 무력화 시도를 즉각 중단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번 사태가 고대영 사장이 사측 주도의 편성규약 개정을 공언해 온 데 따른 무력화 시도의 일환이라는 판단에서다.
새노조는 “KBS편성규약은 ‘취재 및 제작 실무자는 편성, 보도, 제작상의 의사결정에 대해 의견을 제시할 수 잇고, 그 결정과정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하는 권리를 갖는다’고 규정하고 있다. 편집권이든 편성권이든 뭐가 됐든 그에 대한 권한을 보도국 간부들이 독점하는 게 아니라는 것”이라며 “(고대영 사장은) 일부 부장들을 앞세워 방송편성규약을 무력화하려는 잔재주를 더 이상 부리지 말기 바란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