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줄의 팩트 찾아 현장을 달리자

[우리의 주장] 편집위원회

‘혼용무도(昏庸無道)’. 나라가 암흑에 뒤덮인 것처럼 온통 어지러웠던 2015년이 지나고 새해가 밝았다. 붉은 원숭이의 해라는 병신(丙申)년이다. ‘복 많이 받으시라’는 새해 인사마저 인색해진 요즘 우리 기자사회는 원숭이 같은 활력을 되찾을 수 있을 것인가.


연말을 맞아 한 미디어매체에서 공영방송 PD들을 불러 방송현실에 대한 좌담회를 했는데 PD들이 복면을 쓰고 진행했다고 한다. 사상 초유의 복면좌담회. PD가 방송을 얘기하는데 테러리스트 같은 복장을 해야 될 정도인 우리의 언론 현실이 그대로 담겨 있다.


이명박 정부 때부터 시작된 언론인 해직 사태는 해결되기는커녕 최근 더욱 확대됐다. ‘언론인 해고는 무효’이고 ‘공정보도를 위한 투쟁은 정당하다’는 법원 판결이 계속 나왔지만 모두 무시됐다. YTN과 MBC의 기존 해고자들뿐 아니라 2015년엔 대전일보와 연합뉴스, KBS의 언론인들이 어처구니없는 이유로 잇따라 해고됐다. ‘웹툰을 그렸다’ ‘근무태도가 불량했다’ ‘게시판에 불편한 글을 올렸다’는 게 해고사유였다고 한다.


상대적으로 고용이 안정돼 있던 공영언론사에서도 해고사태가 속출하자 언론인들은 극도로 위축됐다. 언론인이 입을 다물면서 언론계에 공론의 장이 사라졌다. ‘자기검열의 내면화’가 심각한 지경에 올랐고, 결국 복면을 써야만 말을 할 수 있는 지경에 놓이게 됐다. 다사다난(多事多難)하지 않은 때가 언제 있었겠냐만 2015년은 혼용무도라는 말이 적절할 정도로 캄캄한 한 해였다.


2016년은 작년보다 더 암담해 보인다. 이른바 ‘노동개혁’은 언론계에 정리해고 바람을 몰고 올 수 있고, 임금피크제는 고참기자들의 봉급을 반토막 낼 수 있다. 기사 작성 로봇의 도입은 ‘기자의 일’이 무엇인지 근본적인 질문을 던질 수도 있다. 디지털 드라이브는 기자의 노동 강도를 더욱 세게 할 것이다.


그럼에도 새해에는 희망을 이야기해야 한다. 희망은 오늘을 견디는 힘의 원천이자 내일을 바꿀 추진력이다. 희망마저 포기하면 미래는 더욱 어두워질 뿐이다.


기자협회보가 세밑 거리에서 만난 많은 시민들은 그래도 아직까지 기자에 대한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있었다. 그들의 기대가 남아 있는 한 희망은 있다. 진정한 뉴스의 주인인 시민들의 기대대로 바꾸면 된다.


먼저 우리 저널리즘의 가치를 하루빨리 복원해야 한다. 이와 함께 위축된 언론자유를 되찾아야 한다. 언론자유가 축소돼 자기검열에 빠지고, 저널리즘이 후퇴해 시민들로부터 조롱받는 언론 후퇴의 악순환 고리를 끊어야 한다. 아프리카 내전 국가 수준으로 떨어진 언론자유 수준을 회복하지 않고는 한국 언론에 미래는 없다.


언론의 질을 높이는 ‘자유’의 문제와 언론인의 생계가 걸린 ‘노동’의 문제에 매체를 떠나 연대해야 한다. 자유언론과 기자의 삶의 질 향상에 지역과 서울, 신문과 방송, 보수언론과 진보언론의 차이가 있을 수 없다. 한국기자협회를 비롯한 언론인 단체들이 통 크게 함께 바꿔 나가는 장을 만들어야 한다. 저널리스트 각자가 언론현장에서 용기를 내야하는 것은 물론이다.


‘혼용무도’를 2015년 올해의 한자성어로 골랐던 교수신문이 새해 희망의 문구로 ‘곶 됴쿄 여름 하나니’를 선정했다고 한다. 용비어천가의 ‘꽃이 만발하고 열매가 풍성하다’는 말처럼 힘차게 번영하는 한 해를 소망한 것이다. 우리 언론계도 ‘곶’과 ‘여름’이 풍성한 한 해가 되기를 기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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