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린치핀과 항공모함’
무슨 뜬금없는 소리냐고 할 지 모른다. 린치핀(linchpin)은 마차나 수레, 자동차의 바퀴가 빠지지 않도록 축에 꽂는 핀이다. 항공모함은 말그대로 바다에 떠 있는 군사비행장이다. 언뜻 소나무와 기차처럼 별 관계없는 단어 조합이다.
하지만 이 두 단어는 북한의 4차 핵실험이 벌어지기 전까지 한국의 외교안보 정책이 얼마나 안이했는지를 보여주는 키워드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2012년 12월 박근혜 대통령의 당선을 축하하는 성명에서 “한·미 동맹은 한국과 미국뿐만 아니라 태평양 전체 안보의 린치핀”이라고 강조했다. 반면 비슷한 시기 아베 신조 일본 총리에게 보낸 축하 성명에선 미·일동맹을 코너스톤(Cornerstone)에 비유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근혜 정부 초기 외교부 관료들은 기자들에게 린치핀이 “바퀴(미국의 동아시아 정책)가 제대로 기능을 하려면 없어서는 안될 핵심적 존재를 가리킨다”며 주춧돌이라는 뜻의 코너스톤보다 더 중요한 역할을 표현한다고 설명했다. 한·미동맹이 미·일동맹보다 우위에 있거나 적어도 대등해졌다는 것이다. 박 대통령의 활발한 외교 노력으로 한·미동맹이 “역대 최상의 상태”에 있으며 린치핀이라는 표현이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는 주장도 했다.
그러나 최근 동북아에서 벌어지고 있는 외교안보 사건들만 놓고 보면 린치핀이 코너스톤보다 서열이 높다는 자부심은 그저 우리의 착각이거나 희망적 사고(wishful thinking)에 지나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북한의 4차 핵실험이 발생하자 오바마 대통령이 제일 먼저 전화를 건 상대는 박 대통령이 아니라 아베 총리였다. 미국이 북핵 문제를 상의하는 제1순위가 한국 아니라 일본이었던 셈이다. 뿐만이 아니다. 미국은 한국 등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 확보와 재무장을 환영해왔다. 지난해 12월 28일 한·일 양국이 위안부 문제에 대해 어설픈 외교적 봉합을 시도한 배경에도 미국의 입김이 작용했다는 분석이 적지 않다.
린치핀과 달리 항공모함은 박근혜 정부의 한·중 관계를 설명할 때 등장한 용어다. 박근혜 정권은 출범이후 대중국 외교에 상당한 공을 들였다. 중국과의 관계 개선을 대북정책의 지렛대로 삼겠다는 구상에서다. 2013년 초 북한의 3차 핵실험 때 중국이 생각만큼 북한에게 강경 조치를 취하지 않았을 때 외교부 고위당국자는 기자들에게 “우리의 외교적 노력으로 중국의 대북 정책에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것은 확실하다”며 “다만 항공모함이 방향을 틀 때 한번에 확 틀 수 없는 것처럼 시간이 걸릴 뿐이다”고 말했다. 거대 중국의 한반도 정책 변화는 시작됐고 조금만 지켜보면 중국이 북핵 문제 등에 나름의 역할을 해줄 것이라는 희망이 담긴 이야기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북한의 4차 핵실험 직후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박 대통령의 다급한 전화를 아예 받지도 않았다. 중국 외교부는 국제사회의 강력한 대북 제재 요구에도 여전히 ‘냉정과 절제’만을 강조하고 있다. 오히려 위안부 문제 타결과 북핵 문제를 계기로 한·미·일 안보공조가 강화되고 있는 것에 더 큰 거부감을 표출하고 있다. 중국이라는 항공모함이 과연 우리가 원하는 방향으로 기수를 돌린 것인지 근본적인 회의감이 들지 않을 수 없다.
한국이 지금 동북아에서 일고 있는 외교안보 격랑을 헤쳐 나가기 위해선 번지르한 외교적 수사에 취해 있어서는 안된다. 외교 당국자들의 냉철한 현실 인식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한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