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새해 접어들면서 언론사들이 디지털 저널리즘 혁신을 향해 본격적으로 시동을 걸고 있다. 경향신문은 지면 중심의 제작회의를 탈피해 온라인 기사를 중심으로 발제, 출고하는 시스템을 시범 도입했다. 중앙일보는 주간 및 월간 시사매거진 취재조직을 통합하는 조직개편을 포함해 지난해 마련한 디지털 혁신안을 실행 중이다. ‘한겨레21’은 카카오쇼핑몰에 입점해 유료독자를 늘리는 실험에 나섰다. 클릭수 만으로는 언론사의 생존을 담보할 만한 수익을 거둘 수 없다는 판단 하에 돌파구 찾기에 나선 것이다. 어느 때보다 깊은 위기감에서 시작된 혁신인 만큼, 이번에는 구체적 성과로 이어질지 언론계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더불어 이번 혁신을 바라보는 회의적 시선도 상당하다. 언론사들의 그간 ‘디지털 혁신’ 실험이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선발 주자들이 실패한 이유는 대체로 뚜렷했다.
첫째, 조직혁신은 저널리즘 혁신이 아니다. 매일 찍어내는 지면, 매일 송출하는 방송에 현재의 언론사 조직들은 최적화돼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이 관성 내지는 습관에 익숙해져있다. 콘텐츠 생산부문의 조직도를 ‘디지털’ 이름을 붙여서 재설정한다고 혁신이 이뤄지는 것은 아니다. 새로운 콘텐츠를 생산해내기 위해서는 조직 자체에 디지털 ‘문화’가 자리잡아야 한다. 현장 기자들의 의견이 의제설정에 유연하게 반영되고, 새로운 유형의 기사 실험이 거부감 없이 이뤄질 수 있는 환경이 조성돼야 한다. 클릭수라는 성적이나 검색어 순위, 출고기사의 건수로 기자들을 닦달만 해서는 안된다. 가시적 단기성과 중심으로 디지털을 다그치면 기자들은 이내 지치기 마련이고, 제작 시스템은 다시 예전으로 퇴행하게 된다. 이 경험이 누적되면 조직 구성원들이 더 이상 ‘혁신’의 가능성을 믿지 않게 된다.
둘째, ‘보여주기’식 혁신을 경계해야 한다. 근사하게 언론사 웹사이트를 개편하거나 ‘가상현실’(VR) 뉴스를 도입하면 트래픽이 증가할 것이라는 기대는 미신에 가깝다. 대중이 뉴스 콘텐츠를 소비하는 이유는 그것이 ‘뉴스’이기 때문이다. 함량 미달의 뉴스를 화려하게 치장하더라도 소비자의 눈을 속이기는 쉽지 않다. 국내 언론사끼리의 보여주기식 경쟁은 전체 디지털 지형으로 볼 때 ‘도토리 키재기’나 마찬가지다. 유민영 에이케이스 대표는 “1970~80년대 언론검열의 시대와 이후 계속된 출입처 중심의 취재관행 속에서 취약해진 언론계의 콘텐츠 생산력이 2000년대 인터넷 시대가 시작되면서 극명하게 드러나고 있다”고 평가한다. 단순히 ‘네이버’로 대표되는 포털 서비스의 독점적 콘텐츠 유통구조만 탓할 일이 아니다.
셋째, 남 눈치를 그만 봐야 한다. 현재 언론계의 디지털 혁신은 누구도 성공모델을 수립하지 못했다. 워싱턴포스트를 비롯한 미국의 언론사나 디벨트같은 유럽 언론사의 혁신 사례는 한국에 곧장 적용하기 어렵다. 언론 시장의 구조가 다르고 무엇보다 혁신의 대상인 조직과 문화가 크게 다르기 때문이다. 디지털에서 발생하는 수익만으로 먹고 살기엔 한국 언론사의 규모는 대체로 비대하다. 이같은 문제에 대체로 공감하면서도 진짜 ‘혁신’이 아직 나오지 않은 이유는 아직까지는 ‘먹고 살만한’ 수준의 수익이 보장되기 때문이다. 혁신의 리스크 비용을 떠안고 물에 뛰어들 ‘첫 번째 펭귄’이 되길 주저하고 있다.
언론사가 스스로 혁신에 실패한다면 시장을 주도하고 있는 정보통신(IT) 기업들의 ‘파괴적 혁신’은 더 무겁게 언론계를 짓누를 것이다. 작은 혁신에 도취될 일도 아니고, 당장의 성과가 보이지 않는다고 냉소할 일도 아니다. 디지털 혁신은 마라톤처럼 길고 지루하고 고통스러운 작업이기 때문이다. 새해, 모두의 건투를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