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사는 지금 '플랫폼'에 주목

중앙, 디지털인력 대거 충원
지상파-CJ 합작플랫폼 추진
자체 유통망 확대 사활 걸어

“콘텐츠 공급자로 남을 것인가, 플랫폼 비즈니스로 갈 것인가.” 스마트폰과 SNS가 열어젖힌 새로운 미디어환경에서 언론사들은 선택의 기로에 있다. 콘텐츠 공급만으로 독점화된 포털 시장을 뚫을 방도가 없고, 자체 유통망을 갖추려면 수백억 원의 투자비를 감당할 엄두가 서지 않는다. 업계에서는 포털과 SNS에 치중된 현 온라인 뉴스 시장에서 ‘자체 유통망’을 유일한 돌파구로 보고 있다.


한 방송사의 온라인 기자는 “그동안 언론사들은 네이버나 다음, 페이스북 등 IT 플랫폼들의 기세에 눌려 울며 겨자먹기로 콘텐츠를 헐값에 제공해왔다”며 “자체 플랫폼이 확산되면 독과점 체제를 깨고 포털에 당당히 협상을 요구할 수 있다. 실질적인 추가 수익을 노릴 수 있는 전략”이라고 설명했다. 수익 악화 일로를 걷고 있는 언론 환경 속에서 ‘이대로만 있으면 자멸한다’는 위기의식이 언론사 전반에 퍼지며 자체 돌파구를 마련하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업계에서는 최근 중앙일보가 디지털 인력을 대거 채용하겠다는 계획을 밝힌 것도 이런 방향의 일환으로 보고 있다. 중앙일보 관계자에 따르면 이석우 조인스 대표는 지난 2일 직원들을 대상으로 디지털 사업 계획을 발표하면서 “향후 1~2년 내 데이터분석 전문가 등 50여명의 기술 개발 인력을 채용하겠다”며 “클릭수에 치중하고 있는 현 온라인 시장에서 벗어나 ‘브랜드 로얄티’를 높이는 방안을 모색하겠다”고 밝혔다. 내부에서는 자체 플랫폼 개발과 콘텐츠 생산에 최소 100억원 이상의 사업비가 들어갈 것으로 보고 있다.


중앙일보의 한 기자는 “돈을 좀 쓰더라도 콘텐츠 공급자로만 남지는 않겠다는 선언으로 보고 있다”며 “거액의 투자비와 리스크 등에 대한 우려는 있지만 그만큼 디지털 시장을 선점하려는 의지가 크다”고 설명했다. 이 대표가 포부를 밝힌 지 이틀 만에 중앙일보는 디지털부문(개발, 디자인, 사업, 운영, 기획) 경력공채 공지를 내놨다. 이 대표는 기자협회보와의 통화에서 “공채 인원을 정해두지 않기로 했다. 훌륭한 인재가 온 만큼 뽑을 것”이라면서도 “(플랫폼 개발에 대해서는) 아직 구체적인 방안은 없다”고 했다.


지상파 3사와 CJ 등 방송사도 합동 태스크포스(TF)팀을 결성해 자체플랫폼 개발을 논의하고 있다. 당초 TF에서는 종편의 참여도 고려됐지만 제외됐다. 업계 관계자는 “지난해 말 MBC, SBS, CJ 3개사의 주도로 각 방송사들이 모여 콘텐츠를 한꺼번에 볼 수 있는 곳을 만들어보자고 협의했다”고 밝혔다. 통신사나 포털, 케이블TV 등에 휘둘리지 않겠다는 게 요지인데 아직 협상 중이라 가시적인 실행 계획은 나오지 않은 상태.


MBC의 한 기자는 “지상파는 이미 5년 전부터 ‘TV시장은 끝이 났다’고 보고 디지털 시장 먹거리를 찾아나섰다”며 “케이블TV, IPTV가 독점을 하고 있는 방송콘텐츠 유통 시장에서 방송사 합작 플랫폼은 판도를 상당히 바꿔놓을 수 있다. 성공하면 한국판 ‘넷플릭스(스마트TV, 태블릿, 스마트폰, PC 등에서 영화와 TV프로그램 콘텐츠를 제공하는 플랫폼)’가 탄생하는 격”이라고 기대했다. 다만 협상이 타결되려면 서로에 대한 신뢰가 우선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그는 “누군가 네이버에서 ‘돈 더 줄게 거기서 나와서 우리랑 하자’해서 이탈하면 다 끝”이라며 “신뢰를 잃지 않고 밀어붙이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자체 플랫폼을 계획하고 있는 언론사들은 데이터 분석에 더욱 열을 올리고 있다. 다각도로 분석된 데이터는 자체 플랫폼을 구축하는 데 주요한 지표로 활용된다. 그간 PV, UV 등 클릭수 위주로 기사 선택과 배치를 해왔다면 앞으로는 체류 시간과 재방문율 등 다각도의 지표 분석이 이뤄질 예정이다. 중앙일보의 한 기자는 “선호하는 기사를 늘리고 불필요한 기사를 걸러내 충성 독자와 여론영향력을 넓히겠단 의도”라며 “포털과 SNS는 젊은 층이 주 타겟인 만큼 보수와 진보 등을 아우르는 콘텐츠를 생산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업계에서는 자체 플랫폼이 활성화되면 콘텐츠의 질적 승부로 돌아올 수밖에 없다고 입을 모은다. 결국엔 재미있고 유익한 콘텐츠가 꾸준히 돈을 벌어들일 수 있기 때문이다. 고연령층이 많고 폐쇄적인 조직 구조인 언론사에서 피키캐스트나 허핑턴포스트 등과 같은 톡톡 튀는 콘텐츠가 나오기란 쉽지 않다. 그래서 전문콘텐츠 제작자와 개발자를 외부에서 영입하는 방식으로 이뤄지는데 이마저도 조율이 어렵다. 업계 관계자는 “미국 버즈피드 만큼 잘하려면 그만큼 개발자들이 많아야 하는데 국내 이름난 개발자들은 10명 안팎에 불과하다. 이들은 언론사들이 삼고초려를 한다 해도 처우가 좋은 다른 산업에 밀리기 때문에 오려고 하지 않는다”고 했다.


정호훈 한국영상대 광고영상디자인학과 교수는 “대부분 개발자들이나 전문 기획자들은 내부 기자들과 소통 과정을 거쳐야 하는 언론사를 부담스러워하기 마련”이라며 “언론사들이 저널리즘의 본질은 지키면서도 개발과 콘텐츠에 대한 인식 전환 등에 앞장설 필요가 있다”고 전했다. 한 방송사의 기자는 “개발자와 기획자의 조율 과정에 성공한 허핑턴포스트는 배너광고와 네이티브 광고 등으로 연 10억 원 정도의 안정적인 흑자를 보이고 있다”며 “공급에 주력할지, 플랫폼으로 나아갈지 아니면 공급과 플랫폼을 동시에 안고 갈지 등에 대한 개발자와 언론사의 진지한 논의가 필요한 시기”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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