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보자 대만

[글로벌 리포트 | 중국]박일근 한국일보 베이징특파원

지난달 대만 총통 선거 취재 차 대만을 찾았다. 처음 가 본 대만은 중국과는 전혀 다른 나라였다. 노인이 쓰러져 있어도 거들떠 보지 않는 중국과는 달리 대만 사람들은 낯선 외국인에게도 친절했다. 횡단보도에 파란 신호등이 들어와도 사람보단 차가 우선인 베이징(北京) 생활에 익숙해진 특파원은 보행자를 위해 횡단보도 전에 멈춰 선 자동차를 보고 중국과 대만이 같은 한족(漢族)이라는 게 믿겨지지 않을 정도였다.


중국말을 쓸 뿐 중국보단 오히려 일본에 더 가깝다는 느낌이 든 것은 함께 취재를 간 동료들도 마찬가지였다. 대만 사람들을 ‘중국말을 하는 일본인’이라고 부르는 이유다. 이러한 차이가 엄연한데 중국이 통일하겠다고 덤벼드니 대만인이 느끼는 위기감과 불쾌감도 어느 정도 수긍이 갔다.


이처럼 중국과는 전혀 다른 대만을 우린 너무 잊고 살아 왔다. 최근 대만의 첫 여성 총통으로 차이잉원(蔡英文) 민진당 주석이 당선되고 때 마침 쯔위(周子瑜) 사건마저 터지면서 잠시 대만에 대한 관심이 커지긴 했지만 어느새 다시 잊혀지는 분위기다.


사실 우리는 1992년 중국과의 수교 이후 대만을 일부러 외면해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중국은 ‘하나의 중국’을 내세워 수교시 대만과 단교할 것을 요구했다. 우린 현실적 이익 앞에 오랜 친구였던 대만을 한 순간 등지고 중국과 손을 잡았다. 대만 사람들이 한국을 ‘배신한 첫사랑’에 비유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그러나 무 자르듯 관계를 딱 끊고 대만을 잊었던 우리와 달리 미국과 일본은 대만과 끈끈한 관계를 유지해 왔다. 차이잉원 후보가 차기 총통으로 당선되자 미국 국무부가 곧 바로 환영 입장을 밝히고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이 빌 번스 전 국무부 부장관을 특사로 보낼 수 있었던 것도 이런 배경 아래서다. 일본 외무성도 차이 후보의 당선이 확정되자 마자 환영의 뜻을 전했고, 이튿날엔 오하시 미쓰오(大橋光夫) 일본교류협회장이 직접 차이 당선자를 만나 축하했다.


물론 미국과 일본의 이러한 친 대만 행보는 중국을 염두에 둔 전략적인 포석이다. 반면 미·일의 국력엔 아직 크게 못 미치는 우리로선 자칫 중국에 밉보일 수도 있는 친 대만 행보는 가능한 자제하는 것이 맞을 수도 있다. 그러나 대만의 전략적 가치를 적극 활용하겠다는 미·일의 태도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사실 대만은 미·일 만큼이나 우리에게도 전략적 가치가 큰 나라다. 중국은 남북한을 모두 상대하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만 ‘하나의 중국’에 매몰돼 대만을 일부러 외면하는 게 과연 현명한 지에 대해 재고해 볼 필요가 있다. 특히 최근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THAAD) 문제와 관련, 한·중 관계가 급속도로 냉각되고 있는 상황 등을 감안하면 우리가 대만을 다시 돌아볼 필요는 더 커진다.


최근 대만 남동부에서 발생한 지진은 한국과 대만이 언제든지 이전의 관계로 돌아갈 수 있다는 가능성도 보여줬다. 우리 정부가 타이베이(台北)주재 한국대표부를 통해 구호와 복구에 필요한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는 뜻을 밝히고 대한적십자회를 통해 10만달러(1억2000만원)의 지원금을 보낸 데 대해 대만 외교부는 “충심으로 감사한다”고 밝혔다.


아쉬운 것은 대만에서 공부한 적도 있는 박근혜 대통령이 한국-대만 관계의 새 장을 여는 데 누구보다 좋은 여건을 갖고 있음에도 너무 소극적이라는 데 있다. 박 대통령은 이미 두 번의 기회를 놓쳤다. 먼저 차이잉원 후보가 당선됐을 때 박 대통령이 축하 전화라도 했다면 대만의 혐한 분위기는 크게 감소했을 가능성이 크다. 두 사람은 모두 미혼 여성으로 아시아에서 선거를 통해 최고 지도자에 올랐다는 공통점도 갖고 있다. 두번째 기회는 지진이 났을 때 위로의 뜻을 전할 수도 있었는데 못한 것이다. 혹자는 중국의 눈치를 볼 수 밖에 없는 현실을 무시할 수 없다고 타박할 것이다. 그러나 지진이 났을 땐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조차 “양안(兩岸·중국과 대만)은 물보다 진한 피의 한 가족”이라며 위로의 뜻을 전하고 구호금을 보냈다.


차이 당선자의 취임식에 대표단을 파견하는 등 박 대통령이 대만과 관계를 새롭게 할 수 있는 기회는 다시 올 것이다. 이를 통해 중국이 남북한 균형 외교로 운신의 폭을 넓히듯 우리도 대만의 전략적 가치를 활용할 수 있는 때가 오길 조심스레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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