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가 또다시 내홍에 휩싸였다. 2014년 길환영 전 사장 퇴진으로 귀결된 총파업 이후 가장 극심한 내부 갈등이다. 보도국 내부 게시판은 연일 익명의 가면을 쓴 비난과 비아냥, 인신공격의 싸움터가 되었다. 간부와 평기자, 서로 다른 노조의 조합원, 선배와 후배 등 기자 집단을 구획해 온 모든 경계에는 서로 다른 불신과 분노의 정서가 쌓여 돌이킬 수 없는 생채기를 남기고 있다.
이 모든 갈등은 전국언론노조KBS본부(이하 새노조)의 공정방송추진위 간사였던 정홍규 기자와 KBS기자협회 공정방송국장인 김준범 기자를 KBS 사측이 징계위에 회부하면서 시작됐다. 두 기자가 각각 특정 아이템을 취재 중이던 기자들에게 직접 연락해 취재 경위와 내용을 물음으로써 심각한 심리적 부담을 초래하고 결과적으로 취재 행위 자체를 방해했다는 것이 그 사유다. 이에 대해 새노조는 공정성을 결여한 리포트에 대해 문제제기 할 수 있는 노조의 권리와 책임을 명시한 단체협약을, 기자협회는 공정방송 감시 활동을 보장한 편성규약을 들며 징계의 부당함을 주장했다. 반면 사측은 노조와 협회가 각각의 정치적 의도를 관철하기 위해 부서장이 아닌 어린 연차의 기자들을 사실상 압박했다며, 단체협약이나 편성규약을 넘어선 부당한 개입이라고 일축했다.
징계를 둘러싼 공방의 과정이 의례적인 노사 갈등을 넘어 보도국 전반의 분열을 초래하게 된 원인은 일차적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징계 사유에 있다. KBS 기자의 취재와 제작은 그 절차와 진행 상황이 실시간으로 모든 구성원들에게 공유될 뿐 아니라 직간접적인 평가의 대상이 된다. 그 과정에서 다소 불편한 논쟁을 감수해야 할 때도 있지만, 그것이 보다 완성도 높은 뉴스를 만들기 위한 불가피한 ‘산통’이라는 것은 가장 근본적이고 원초적인 상식이다. 그리고 이 수평적인 논쟁을 통해 후배들은 보도국 내부의 축적된 지혜를 배우고 선배들은 참신한 발상을 수혈하는 상부상조의 전통이야말로 기자 사회의 건전성을 담보하는 미덕이었다.
노조나 협회가 취재기자에게 직접 문제제기를 했다고 한 들 그것을 부당한 압력으로 규정하고 제재하려는 것은 이 오랜 전통을 정면으로 부인하는 것과 다름없다. 기자는 이미 안팎의 압력에 매일 노출돼 있으며 그 부담을 취재와 제작해 스스로 반영하며 발전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보도국장이나 부서장이 취재기자에게 리포트의 세부적인 사항까지 간섭하며 수정과 삭제도 서슴지 않는 것을 부당한 압력이라 보지 않는 것도 같은 이치다.
갈등의 또 다른 원인은 보도국 수뇌부의 독선적인 태도에 있다. KBS 보도국장과 주간단은 최근 기자협회장이 편집회의에 참석해 전날의 뉴스에 대해 평기자들을 대표해 의견을 제시하는 것을 문제 삼으며 발언권 자체를 박탈했다. 수뇌부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는 지적은 아예 듣지 않겠다는 처사이다. 이번 징계 역시 노조와 협회가 행사해 왔던 문제제기 절차의 정당성을 부인하고 있다는 점에서 같은 메시지로 읽힐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심각한 것은 사측이 평기자 간의 갈등을 부추기고 있다는 점이다. 이 명료한 사안에 대해 엉뚱하게도 노조와 기협의 정파성을 주요한 방어 수단으로 활용함으로써 대다수 기자들을 정치 논리에 함몰된 집단으로 매도하는 자승자박을 자행하고 있다. 그렇지 않아도 2개의 노조가 일상적으로 갈등하고 있는 KBS 내부에서, 사측의 이같은 정치적 편가르기는 소모적인 내분을 부추길 뿐이다. 그리고 이 심각한 내분으로 초래될 KBS 뉴스의 질적 하락은 결국 고스란히 사측의 부담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 징계 절차를 반드시 중단해야 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