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가난한데 왜 쿠바인은 다들 행복한 표정인가?” 6개월 전 단기 특파원으로 처음 쿠바에 온다고 했을 때 주변에서 많이 들었던 질문이다. 대중 매체로 접하는 쿠바인의 이미지는 밝고 낙천적이다. 실제 쿠바는 멋과 풍류가 넘치는 곳이다. 뜨거운 태양 아래 누구나 럼(rum)과 시가(cigar)를 즐기며 어디서나 살사를 추고 골목마다 재즈 음악이 울려퍼진다.
반년 간 직접 느낀 쿠바인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택시 간판을 단 1950~60년대 고철 덩어리가 여전히 도로에 굴러다니고, 수백년된 스페인 식민지 건물들은 폭격을 맞은 중동 분쟁 현장의 폐허처럼 방치돼 있다. 하지만 그 안에 사는 쿠바인은 항상 웃는 얼굴이었고 친절했으며 사교적이었다.
남과의 비교가 불가능한 사회 시스템이 하나의 이유가 아닐까 생각했다. 북한과 마찬가지로 쿠바는 인터넷을 통제해왔다. ‘21세기의 질병’이라 부르기도 했다. 최근 들어 일반인의 인터넷 접속을 점차 허용하고 있지만 아직 보급률은 5% 수준이다. 철저한 아날로그 사회다.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 같은 SNS의 공해가 없다. 스마트폰에 올라온 자기 과시용 사진들을 들여다보며 서로를 비교하고 불필요한 에너지 낭비를 하고 싶어도 못한다.
그 시간에 쿠바인은 바다에 나가 스킨십을 하고 춤을 춘다. 인터넷이 안되니 딱히 할 일이 없기 때문이지만 외국인 관광객들은 그런 모습에서 사람사는 정(情)을 발견하고 쿠바를 아름답다 느낀다. 쿠바를 찾은 여행작가와 세계일주 여행자 등 한국인 30~40대 남성 4명이서 몇 시간씩 이야기꽃을 피운 적이 있다. 시도 때도 없이 울리는 카카오톡이 없기 때문에 가능했다. 누구도 스마트폰을 꺼내지 않았다. 오로지 상대방 이야기에만 집중했다.
사회주의 국가인 쿠바에서 국민들은 외견상 평등하다. 비록 입에 풀칠하는 양이지만 전국민 배급제는 여전히 작동 중이다. 굶어 죽는 사람은 없다. 거리에는 노숙자도 거의 없다. 비록 실력있는 의사들은 죄다 해외로 외화벌이를 나갔지만 의료비가 공짜다. 교육비도 무료다. 노동자 평균 월급이 30쿡(약 3만6000원) 수준이지만 이 돈으로도 쿠바인이 그럭저럭 생계를 꾸려가는 이유다. 앞집, 뒷집, 옆집 모두 비슷한 환경에서 비슷한 수준으로 살아간다. 외부 시각에는 비참해 보여도, 남과의 비교로부터 오는 쓸데없는 스트레스에서는 자유롭다. 그래서인지 쿠바인은 행복해 보이는 게 아닐까 생각했다.
쿠바 혁명 정부의 프로파간다처럼 정말 사회주의가 성공했기 때문인 건지 개인적으로 당황스러웠다. 그렇다면 쿠바보다 철저히 인터넷을 통제해 외부 세계와 아예 고립돼 있고 여전히 인민 평등의 사회주의를 주창하는 북한의 주민 역시 행복해 보여야 하지만 현실은 다르지 않은가.
자본주의는 부(富)를 불평등하게 나눴지만 사회주의는 가난을 평등하게 분배했다. 쿠바인도 이를 모르는 건 아니다. 그래서 매년 수만 명이 목숨을 걸고 미국 밀입국에 나선다. 10만원짜리 아디다스 운동화를 사기 위해 석 달치 월급을 모아야 하는 쿠바 젊은이도 “이 나라의 부자는 카스트로 형제뿐”이라며 푸념한다.
하지만 적어도 6개월간 만나본 많은 쿠바인은 조국이 조금씩 나아지리라는 희망을 이야기했다. 탈출구 없는 경제난 속에 쿠바는 적성국 미국과 손을 잡았다. 더디지만 자본주의식 개혁·개방도 진행 중이다. 2018년에는 라울 카스트로 현 국가평의회 의장마저 물러난다. 1959년 공산혁명 이후 60년 만에 카스트로 형제 세습이 끝나고 처음으로 새 인물이 정권을 잡게 된다. 거대한 변화가 다가오고 있다. 이를 제일 잘 알고 있는 건 누구보다 쿠바인들이었다.
이에 반해 3대 세습 김정은의 핵(核) 장난만 지켜봐야 하는 북한 주민에게는 어떠한 희망이 있을까. 중국, 러시아와 함께 북한의 3대 동맹국이지만 쿠바는 북한과 다른 길을 가고 있다. 공산국가, 사회주의, 권력세습. 비슷한 점이 많았던 두 나라였지만 앞으로 양쪽 국민들의 처지는 확연히 달라질 것이다. 쿠바인도 이제 ‘코레아(Corea)’하면 ‘노르테(norte·북)’ 대신 ‘수르(sur·남)’를 말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