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과 검찰, 국정원이 기자들의 통신자료를 멋대로 수집하고 있어 충격을 주고 있다. 개인정보의 자기결정권 훼손은 물론 언론자유에 대한 심각한 침해가 아닐 수 없다. 기자의 통신자료 수집은 취재원 보호를 생명으로 여기는 언론사의 활동을 위축시키는 행위로 묵과할 수 없는 사건이다.
언론노조가 실태조사한 결과를 보면, 기자와 피디 등 언론종사자 97명의 통신자료 194건이 작년 한 해 수사·정보기관에 제공됐다. 언론인 1명당 평균 2건꼴로 개인정보가 털린 셈이다. 실태조사가 시작인 것을 고려하면 현재 드러난 수치는 빙산의 일각일 수 있다. 더욱 우려되는 것은 언론인 통신자료 수집이 지난해 민중총궐기 집회와 세월호 참사 1주기 이후에 집중됐다는 점이다. 당시는 경찰이 이들 집회를 불법으로 규정하며 집회참가자 색출작업을 벌이던 때였다. 노동계는 물론 국민적 관심이 고조되던 시점에 이뤄진 통신자료 수집은 언론인을 지렛대 삼아 손쉽게 관련자를 잡으려했던 것은 아닌지 의심이 든다.
한겨레 보도는 이런 의혹을 뒷받침한다. 국정원이 연이은 번호의 문서로 한겨레 기자와 민주노총 실무자, 야당 당직자, 세월호 가족 등 모두 28명의 통신자료를 조회했다. 국가보안법 위반 사건 내사과정에서 확인한 것이라고 하지만 비판적 집단에 대한 전방위 사찰 아니냐는 시선이 있다. 특히 한겨레 편집인과 논설위원, 편집기자 등 현장 취재를 하지 않는 기자의 통신자료까지 털려 사찰 목적으로 통신자료를 수집했다는 의혹을 더욱 짙게 하고 있다.
상황이 심각한데도 수사기관과 통신사는 왜 개인정보를 수집했는지 설명하지 않고 있어 이런 우려를 더욱 키우고 있다. 게다가 경찰청장은 “수사기관이 수집한 사유까지 알려주는 것은 수사 밀행성 원칙에 맞지 않는다”며 무차별적인 통신자료 수집을 옹호하는 발언까지 서슴지 않고 있다. 많은 국민들은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의 민간인 사찰과 국정원 선거 개입을 잊지 않고 있다. 국가기관을 믿지 못하게 한 건 바로 음지에서 권력을 휘둘러온 그들이다.
작년에 검찰과 경찰, 국정원, 군이 수집한 통신자료가 1300만건에 달한 것은 수사기관의 정보수집 대상이 기자뿐만 아니라 전방위로 뻗쳐 있다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다. 검찰과 경찰이 지난해 건강보험공단에서 받아간 개인정보가 110만건이었는데, 통신자료에 들어있는 주민번호가 개인정보를 여는 ‘만능열쇠’로 실제 사용되고 있었다. 대한민국은 ‘네가 작년 여름에 한 일을 알고 있다’는 호러영화가 눈앞의 현실인 세상이다.
특히 테러방지법 통과 이후 국가안보를 이유로 통신자료는 물론 개인정보를 들여다볼 여지가 커져 사찰에 대한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지금도 뚜렷한 이유를 말하지 않고 멋대로 개인정보를 훑어가는데, 앞으로 얼마나 더 깊게 사생활을 엿볼지 두렵다. 취재원을 만나 정보를 얻고 기사를 쓰는 기자들은 앞으로 자유롭게 취재를 할 수 있을까. 어디 골방에 들어가 감청이 되는지 먼저 살피고, 취재원을 안심시킨 뒤, 정보보호에 대한 서약서를 써주고 취재할 웃지 못할 상황이 상상에 그치길 바랄 뿐이다.
통신자료는 수사 편의를 위해 맘대로 들여다봐도 되는 정보가 아니다. 개인정보는 국가가 멋대로 원하기만 하면 언제든 남의 집을 제 집 드나들 듯 넘어와 훔쳐가도 되는 물건이 아니다. 국가는 법 집행에 억울한 사람이 없는지 엄밀하게 살펴야 한다. 지금 논란이 되는 통신자료 무더기 수집이 과연 엄밀한 법 집행인지 수사기관은 되물어야 한다. 개인의 기본권 침해를 최소화 하려 했는지 자문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