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이 지났다. 아무 것도 달라지지 않았다. 누군가에겐 어제 같은 일이 누군가에겐 철지난 일이 됐을 뿐이다. ‘세월호’는 그렇게 희미해지고 있다. 그래서 정은주 한겨레신문 기자에게 물었다. 정 기자는 최근 인사발령 전까지 ‘한겨레21’의 기자로 2년 간 세월호 취재에 매달려왔다. 그중 1년은 세월호만 붙들었다. 이는 ‘한겨레21’의 지난 1년간 세월호 탐사보도와 ‘세월호, 그날의 기록’ 단행본에 고스란히 담겨 빛을 보게 됐다. 정 기자는 지난 9일 기자협회보와 인터뷰에서 이를 “미완성의 발자취”라고 평가했다. 아직 동료 기자들이 해야 될 일이 많이 남았다고 했다.
정 기자가 이 프로젝트를 맡은 것은 지난해 3월이었다. 그는 망설였다고 했다.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았다고 했다. 3년 넘게 경제·사회팀장으로 지내온 그는 ‘한겨레21’을 떠날 생각을 하던 차 ‘6개월간 세월호만 맡고 잔류하는 건 어떻냐’는 제안을 받았다. 이렇게 시작된 고난은 예정 기간을 훌쩍 넘겨 1년 간 이어졌다. 왜 그렇게 매달렸냐고 물었다. 그는 “나한테 왔으니까. 오면 해야 하니까. 피할 수 없고, 도망갈 순 없으니까”라고 답했다.
지난하다는 말로는 부족한 생활의 연속이었다. 애초 ‘한겨레21’의 단독기획으로 계획된 프로젝트는 도저히 기자 한 명이 감당할 수 있는 양이 아니었다. 자료는 입수했지만 “버릴 수도 없고, 낳을 수도 없는” 상황. 이때 손을 내민 곳이 재단법인 ‘진실의 힘’이었다. 정 기자는 박다영·박현진 씨, 박수빈 변호사 등 진실의 힘이 구성한 ‘세월호 기록팀’과 함께 입법, 행정, 사법부가 생산한 자료 3테라바이트(TB), 재판기록 15만 쪽을 분석했다. 회사와 ‘진실의 힘’ 양쪽을 오가며 일주일에 2~3일만 집에 들어가는 생활을 이어갔다. 이들은 초동 구조에 실패한 혐의로 기소된 해경 123정장 김경일의 판결에 영향을 미치는 등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의 진상규명에 일조했다.
1년간 한 사안에만 매달리는 기자. 이런 결단을 내린 언론사. 흔치 않다. 실제 이토록 오랜 기간 지속적으로 세월호를 조명한 언론사는 ‘한겨레21’밖에 없었다. 정 기자는 안수찬 편집장의 ‘결단’과 ‘한겨레21’ 선후배들의 전폭적인 지지가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라고 했다. 그는 “본인(안 편집장)의 관심사가 언론의 역할이고, 그래서 흔들리지 않는 사람”이라며 “내부에서 전폭적으로 지지해줬다. 탐사보도 시작 후 기사 쓴 양이 그 전의 절반이하일 텐데 그걸 다 후배들이 안아줬다. 모든 걸”이라고 덧붙였다.
큰 진실의 일부 조각을 맞춰본 정 기자는 세월호가 지금 여기에서 어떤 의미로 남았다고 생각할까. 그가 보는 세월호 참사의 근본적인 원인은 “한국의 관료주의”다. “무엇보다도 우선하는 게 보고다. 보고를 받은 다음 하는 일은 보고를 하는 거다. 보고를 하면서 자기는 면피한다. 누구도 지휘를 하지 않는다. 그러다가 사건이 끝나버린다.” 그는 세월호 참사보다 더 큰 비극은 이 참사를 제대로 규명하고 원인을 파악하지 못한 것이라고 단언했다. 이로 인해 우리 공동체 내의 어떤 합의는 붕괴돼 버렸다. 정 기자는 “(비슷한 사고가 났을 때) 굉장히 위험한데도 이제 승객들은 선내 귄위 있는 자의 머물라는 말을 절대로 듣지 않고 탈출하게 됐다. 현장 출동한 경비정만 처벌을 받았다는 점에서 ‘엔진을 고장내든 어쨌든’ 해경 전체에 출동하지 말라는 메시지를 남겼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런 사고가 다시 일어나면 더 비참할 것”이라고 전했다.
다시 문제는 언론이다. 정 기자는 이번 작업을 마친 소감을 말하며 “왜 이 기록이 내게 왔을까, 정말 더 많은 유능한 기자들이 있는데, 이 기록의 운명이 안쓰러웠다”고 했다. 또 이 기록은 “유가족과 시민들 사이에 놓인 ‘징검다리’ 정도의 의미”라고 평가했다. 후속작업을 한다면 사건현장을 다룬 현재에서 나아가 진실이 드러나는 걸 은폐시킨 부분들, 여기 담긴 거대하고 큰 구조적인 문제들을 깊이 파헤쳐보고 싶다고 했다. 정 기자는 지난 1년간의 탐사보도를 닫는 ‘한겨레21’ 기사에, “최선을 다 했지만, 이 책만으로는 새로운 손전등을 하나 더 보태는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며 “수십 개, 수백 개의 손전등으로 배 전체를 환하게, 또렷하게 비출 수 있다면, 그때는 우리가 본 것을 진실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라고 썼다. “손전등을 더 많이 들었으면 좋겠다. 그건 우리 몫이지 않나. 같이 들었으면 좋겠다.” 정 기자의 당부다.